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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Jun 10. 2020

오래된 골목의 책과 커피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


오래된 골목 안으로 한 걸음 내딛자마자 밀려오는 종이 냄새. 좁은 길 양쪽을 가득 채우고 있는 책들. 맞은편 입구에서 들어오는 빛을 보면 마치 책으로 만든 짧은 터널을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곳. 별다른 개연성도 없이 생각나서 찾아가면 괜스레 마음이 편안해지는 책방골목. 


쾌적한 대형서점에 가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은 이 낡은 골목을 찾고 싶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문득 보수동에 가고 싶어지는 때가 있다. 자취방에서 오 분 거리인 교보문고를 두고 굳이 한 시간 거리의 책방 골목을 찾는 이유는, 디지털 시대에 사라질 물건으로 꼽히는 종이책이 여전히 우리 곁을 지키고 있는 것과 비슷한 것일까.


보수동 책방골목 북 카페 <우리 글방>


나는 유럽을 여행할 때 얼마간 '서점 덕후'로 변신했었다. 유럽의 주요 도시에는 꼭 하나쯤 유명한 서점이 있다. 런던의 노팅힐 서점, 다운트북스. 조앤 K 롤링이 글을 썼다는 포르투의 렐루 서점 등. 그 수많은 서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단연 파리의 셰익스피어앤컴퍼니다. 헤밍웨이가 책을 빌리곤 했었다는 실비아 비치의 고서점이자, <미드나잇 인 파리>를 비롯한 파리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 단골로 등장할 만큼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보수동 책방골목의 '우리 글방'이라는 북카페는 왠지 유럽 여행을 추억하게 만든다. 헤밍웨이가 다녀가지는 않았지만, 엔틱한 분위기만큼은 파리의 고서점 못지않다. 온통 오래된 것들로 가득한 공간. 오래된 책. 오래된 그림. 오래된 피아노. 마침 방문객이 거의 없어 고요하니, 책으로 가득한 공간만이 발현할 수 있는 공간의 기품이 느껴지는 듯하다.


우리 글방 지하에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조용한 서점을 둘러보고 있으니 이중적인 마음이 든다. 첫 번째는 이렇게 좋은 곳들이 더 유명해져서, 셰익스피어앤컴퍼니까지는 아니더라도 다운트북스나 노팅힐 서점 정도만큼은 사랑받는 명소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 유명한 서점들처럼 가게 이름이 크게 새겨진 에코백을 만들면 어떨까? 전 세계 사람들이 '우리 글방', 혹은 '보수동 책방'이라고 적힌 가방을 들고 다니게 되는 상상은 왠지 낯설지만 즐겁기도 하다. 정반대로 이 조용한 책방이 너무 유명해져서 관광객으로 가득 차지 않고, 적당히 한적한 상태를 언제까지나 유지했으면 싶기도 하다. 물론, 기껏해야 한 해에 두어 번 방문하는 여행자가 품기에는 아주 지나친 욕심이다.


보수동 책방골목 한쪽 끝에 있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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