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잡문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재희 May 10. 2023

힘을 빼는 방법을 모르면 가라앉는다

수영 일기

오월이라고 하기에는 차가운 비가 내리던 토요일 아침이었다. 첫 번째 수영 수업이 있는 날이어서 일찍 집을 나섰다. 왜인지 요즘은 주말에도 늦잠 자는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모처럼 토요일 오전부터 할 일이 있다는 게 싫지 않았다. 물론 깊이 잠들지 못한 밤에서 비가 내리는 아침으로 이어지니 몸이 무겁기는 했지만, 무언가 새로 시작한다는 설렘이 조금은 느껴졌다.


쉬울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수영 배우기는 예상보다 더 만만치 않았다. 칠십 센티미터 풀장에서 호흡법을 익히는 게 첫 번째 과제였다. 몸을 수면과 평행하게 만든 후에 고개만 젖혀서 머리가 물 밖으로 나오면 재빠르게 입으로 숨을 들이마신 후, 물속으로 들어가 삼 초쯤 참은 뒤 코로 숨을 다 뱉어내고 다시 고개를 드는 동작을 반복해야 했다. 나는 고개만 드는 걸 한동안 이해하지 못해 상체를 통째로 들어 올리다가 여러 번 지적을 받았다. 이후로도 첫 수업 내내 선생님께 혼이 났는데 가장 많이 들은 말은 힘을 빼라는 것이었다.


'몸에 힘을 좀 뻬세요! 허리에 그렇게 힘주면 가라앉아요.‘


힘을 과하게 주면 가라앉는다. 돌이켜보면 거의 모든 스포츠의 기초 수준 강습에서 ‘힘을 좀 빼라’는 조언을 들었던 것 같다. 클라이밍도 마찬가지였다. 클라이밍 기초반에서 사람들은 팔에 힘을 빼고 쭉 펴서 편한 자세를 만들 수도 있는 구간에서도, 행여나 떨어질까 봐 팔을 구부리고 과도하게 많은 힘을 쓰는 실수를 흔히 하고는 했다. 그러면 정작 많은 힘을 써야 할 곳에서 남은 힘이 부족해 추락하게 된다. 제대로 쉬는 방법을 몰라 휴식을 주어야 할 타이밍에 힘을 쓰고 버텼기 때문이다.


일요일 아침에도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지치지 않고 내리는 비와 달리, 두 번째 수영 수업에서 나는 쉽게 지쳤다. 호흡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물도 실컷 마셔야 했다. 그리고 여전히 몸에 힘을 뺄 수 없었다. 목, 등, 허리, 허벅지와 종아리까지 온몸에 불필요한 힘이 들어갔다.


에너지를 쓰라는 게 아니라 그저 몸에 힘을 좀 빼기만 하면 되는 건데, 왜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걸까?


요즘은 조금만 방심하면 혼자인 시간은 늘 침전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역시나 힘을 빼는 방법을 몰라서 그런 걸까. 가라앉는 기분을 잊으려고 온몸이 비명을 지를 때까지 암벽을 오르고, 또 수영을 배우기도 하지만 거기서도 결국 힘을 빼는 방법을 몰라서 문제라고 한다. 가벼워지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인 듯하다.




"어째서 그렇게 모든 일을 고지식하게 생각하지? 자, 좀 더 어깨에 힘을 빼라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으니까 그런 식으로 사물을 보게 되는 거야. 어깨에서 힘을 빼면 훨씬 몸이 가벼워지게 돼."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하고 나오코는 놀랄 만큼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


"어깨에 힘을 빼면 몸이 가벼워진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어. 그런 말은 해봤자 아무 도움도 안 된다고. 알겠어? 만약 내가 지금 어깨에 힘을 빼면 나는 산산조각이 나 버린단 말이야. 난 옛날부터 이런 식으로 살아왔고, 지금도 이런 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어. 한 번 힘을 빼면 다신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고, 난 산산조각이 나서 어디론가 날아가버리고 말 거야. 어째서 그런 걸 모르는 거야? 그걸 모르면서 어떻게 나를 돌봐준다고 말할 수 있는 거야?"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20~21p, 문학사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