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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제인리 Jan 07. 2024

새의 선물

세상이 시시하던 소녀에게,


부모님 없이 할머니 울타리 내에서 왠지 설익은 과일처럼 살아가는 중학생 진희를 보며 네가 생각났다. 이미 성인인 이모의 연애에 코칭을 해주고, 작은 동네에 일어나는 어른들의 일을 이미 다 이해하며, 너그럽지 않은 세상사에 순진하게 자라나는 청소년이기를 포기한 어린 여자 아이는 스스로만 어여쁜 소녀임을 모르는 것 같더라.


아이처럼 신나야 할 때 심드렁하던 너. 타인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 노력한 모습과 스스로만 알고 있는 모습의 괴리에 혼란스러웠던 너. 크면 무슨 말인지 알게 된다는 어른들의 말을 곱씹으면서 다 알아먹었는데 뭘 더 알게 된다는 걸까 고민하던 너. 예민하고 뾰족한 마음은 어떻게 깎아내야 하는지 도통 싫어만 하던 너. 고민과 고통으로 점철된 순간의 네가 참 아름답다고 말해줬다면 믿었을까.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은 우연이 이끌어준다는 진희의 말에 백 번 공감하지만, 네 스스로의 결정과 행동이 오늘의 아름다운 너를 빚어냈다는 점에는 한치 의심이 없다. 이젠 너무 무뎌졌나 고민하는 너에게 다시 첨예한 고민의 순간이 종종 함께하길 바라며.


은희경, 『새의 선물』, 문학동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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