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시시하던 소녀에게,
부모님 없이 할머니 울타리 내에서 왠지 설익은 과일처럼 살아가는 중학생 진희를 보며 네가 생각났다. 이미 성인인 이모의 연애에 코칭을 해주고, 작은 동네에 일어나는 어른들의 일을 이미 다 이해하며, 너그럽지 않은 세상사에 순진하게 자라나는 청소년이기를 포기한 어린 여자 아이는 스스로만 어여쁜 소녀임을 모르는 것 같더라.
아이처럼 신나야 할 때 심드렁하던 너. 타인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 노력한 모습과 스스로만 알고 있는 모습의 괴리에 혼란스러웠던 너. 크면 무슨 말인지 알게 된다는 어른들의 말을 곱씹으면서 다 알아먹었는데 뭘 더 알게 된다는 걸까 고민하던 너. 예민하고 뾰족한 마음은 어떻게 깎아내야 하는지 도통 싫어만 하던 너. 고민과 고통으로 점철된 순간의 네가 참 아름답다고 말해줬다면 믿었을까.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은 우연이 이끌어준다는 진희의 말에 백 번 공감하지만, 네 스스로의 결정과 행동이 오늘의 아름다운 너를 빚어냈다는 점에는 한치 의심이 없다. 이젠 너무 무뎌졌나 고민하는 너에게 다시 첨예한 고민의 순간이 종종 함께하길 바라며.
은희경, 『새의 선물』, 문학동네,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