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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제인리 Sep 02. 2020

스키마 (Schema)

당신 마음의 모양은?

Photo by Bud Helisson on Unsplash


심리학을 전공했어요.


이 문장에 뒤따라오는 질문은 대체로 뻔하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맞춰보라.” 또는 “나는 어떤 사람인지 보기만 하면 견적이 나오냐.”

점성술사를 찾아가야 하는 게 아닐는지. 내가 공부한 것은 그런 미신 같은 게 아니라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을 통해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구구절절 설명하던 시절은 지났다. 이제는 그저 씩 웃고 만다.


대학에서 대학원까지 내가 공부한 바를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음 (mind)이라 부르는 인지 시스템을 우리 신체기관 중 뇌가 관장한다는 합리적인 가정 하에 그 인지 시스템으로 인해 발생하는 인간의 사고와 행동의 패턴을 밝히고자 하는 작업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훈련해온 나의 사고 과정은 아카데미적인 주제를 벗어난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유용히 사용되곤 한다.


발달심리학에서 유아기의 인지 성장을 논할 때면 스키마 (Schema)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스키마, 즉 도식이라 해석되는 이 개념은 인간이 외부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각자의 마음에 발현시킨 지식 덩어리를 뜻한다. 개개인이 주변 환경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행동하게 하는 나름의 프리즘인 셈이다. 어떤 스키마를 발현시키고 발달시키는지에 따라 주변 상황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바가 달라진다. 다른 스키마로 해석된 상황에서는 다른 방식의 행동 방향이 결정되는 것이다. 열 명이 있다면 열개의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거나 같은 사회문화권의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과 행동 패턴을 보인다는 것 모두 이 스키마로 설명될 수 있다.


내가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 집으로 가는 길에는 애견샵이 있었다.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나는 유리창에 코를 박고는 나보다 더 조그만 생명체들을 신기하게 구경하곤 했다. 언젠가 나는 어떤 강아지를 흥미로운 눈으로 쳐다보다가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엄마, 저기 돼지가 있어!”

불독이었다. 수많은 불독 및 애견인이 들었다면 크게 노할 일이나, 엄마는 불독의 외모와 개라는 도식을 연결시키지 못했던 어린 나의 깜찍함으로 웃고 넘겼다 한다.


유난히 괴로웠던 회사 근무 시절에 나는 사람들의 도식에 관해 자주 생각했다. 나를 힘들게 하고, 많은 이들을 힘들게 하던 이들의 마음에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거나 자신이 경험해보지 않은 더 효율적인 사고를 받아들이는 도식이 생성되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의 도식쯤이야 좀 부족해도 내 관여할 바가 아니지만, 자신이 가진 도식만 맞다고 주장하며 다른 이들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자신이 가진 도식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이 안쓰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함께 있다가는 나도 그들처럼 도식을 더 이상 발달시키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돈안지유돈 (豚眼只有豚) 불안지유불 (佛眼只有佛)”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 사람은 자신이 인식하는 만큼 보인다는 이 명제는 서양에서 시작된 학문인 심리학이나 동양의 오래된 불교 사상이나 한 데로 통하는 불변의 진리인가 싶다. 한때는 영유아 또는 청소년에게만 해당되던 발달이라는 범주가 이제는 태어나 죽는 순간까지를 포용하는 의미로 변모했다. 지금 내 마음의 모양은 어떤지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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