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지 가능한 지금 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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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나는 뭐든지 가능한 그 나이가 좋았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기숙사 생활. 살아온 고향부터 삶의 가치관, 형태가 매우 다른 무작위 친구들을 생애 처음으로 만났다. 우리는 공부도 같이 했지만 노래도 부르고 춤도 췄다. 배구를 했고 마라톤을 했고 응원을 했다. 주말이면 봉사활동을 다녔고, 밤이면 몰래 기숙사를 빠져나와 산책을 했다. 별을 보고 깔깔거리다가는 다음 날엔 대판 싸웠고, 미워하고 사랑했으며, 위로하고 감사하는 법을 서로에게서 배웠다. 반짝반짝 빛나던 열일곱의 나와 열여덟의 친구들은 다른 이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삶에 대해 고민했다.
스물여섯.
나는 여전히 뭐든 가능한 그 나이가 좋았다.
무한히 가능했던 열일곱을 믿었던 순간과 마찬가지로 나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회사 생활이 어떤 것인지 서울 살이는 어떤 것인지 잘 알지는 못했지만, 내내 열심히 쌓아왔던 역량을 좀 더 잘 사용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랐고 뉴욕보다는 좀 더 적응하기 편한 서울 생활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스물넷, 서른, 서른셋, 서른여덟, 마흔넷, 마흔일곱, 그 외 내가 만난 무수한 회사 사람들은 뭐든지 가능한 나의 스물여섯을 신기하게 여겼다. 그 “신기한” 눈빛들은 때로는 외계인 생명체를 본듯한 놀라움이기도 했고, 반짝임이 눈부셔 내는 시샘이기도 했고, 더러는 곧 그 빛을 잃을 것이니 하는 한심함이기도 했다. 그들의 나이는 모두 달랐지만 한 가지는 같았다. 우리는 너무 늙었다고 한탄했고 이제는 너무 늦었다고 자조했다. 내가 신입사원을 벗어나고 회사를 옮기고 또 옮기는 동안에도 그이들의 시계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내 시계도 아직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예전보다 그저 조금 더 강해진 채로 여전히 반짝이고 있다.
쉰여덟.
엄마는 행복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엄마의 삶 정도면 행복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었다. 엄마는 사회와 시대의 모진 편견을 극복해 내며 하고자 하는 공부를 했고 일을 했다. 외할아버지께서 아프시다 조금 일찍 돌아가신 것이 마음 아프지만, 그 외에 집 안엔 크게 아프거나 다친 사람이 없이 무탈한 편이다. 언니와 나는 엄마 아빠의 눈에 딱히 벗어나지 않는 범주 안에서 조용히 자랐다. 이 정도면 엄마는 꽤 잘 산 것이 아니냐는 내 순진한 물음에 엄마의 시계가 가리키는 곳이 모호했다.
반짝이는 희망의 순간과 빛바랜 무료한 순간에는 정해진 나이가 없다. 다만 내 시계가 어느 순간에 오래 멈추어 섰는지 또 어떤 속도로 흘러가는지에 달려있다.
지금.
나의 시계는 어디를 향해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