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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정화 Freshorange Aug 31. 2023

한이, 초코, 로사야,   '나, 이 언니'를 부탁해

말들도 사람처럼

낼모레면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니 누구 덕분에 나이가 줄어서 아직 환갑이 되긴 좀 남았나?, 어쨌든 우연히 후배의 권유로 말타기 체험을 해본 후에 정식으로 승마 수업을 다섯 번 받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워낙에 뭔가를 결정할 때 앞뒤 생각 없이 일단 던지고 보는 성격이어서 큰 고민 없이 시작을 한 거였다. 물론 꽤나 젊었을 때부터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로망이 툭 튀어나와 나의 단순함과 만난 결과이지 싶다. 

 일주일에 두 번 오며 가며 두 시간 거리를 운전하고 가는 길이 즐겁다. 특히 함께 가는 선배 언니는 승마장에 가는 날이 무척 기다려지고 갈 때마다 꼭 해외여행을 가는 기분이 든다고 한다. 나보다 9살이 많은 언니이니 그 언니는 곧 70을 바라보는 나이다. 나도 나지만 그 언니의 열정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타면 탈수록, 말에 대해 알면 알수록 오히려 처음보다 더 무서움증이 생기고 신중해진다는 것이다. 나처럼 무식하게 들이대면 안 되는 거였다. 순진해 보이기만 하는 큰 눈을 직접 바라보는 것이 아직은 힘들다. 십인십색이라고 사람도, 하다 못해 몇 분 간격으로 태어난 쌍둥이도 제각각 다르고 개성이 있듯이 말도 그렇다. 이전 글에서도 밝혔듯이 난 애완동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개나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 하는 딸들의 소원을 애써 모른 체 했어도 티브이에 나오는 동물 프로그램은 또 즐겨보는 편이다. 보다 보면 동물들도 제 각각 개성이 뚜렷하다는 것을 보곤 했지만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또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한이, 초코, 로사는 내가 승마장에서 한 번씩 타본 말이고 한이는 벌써 세 번째 타는 말이다. 나에게 승마를 권유한 후배가 계속 초코는 어떻고 한이는 어떻고 할 때는 거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한두 번 타다 보니 말들에게도 각각의 이름이 있고 그 이름만큼이나 개성이 뚜렷하다니 실제로 보니 신기했다.

 처음 체험할 때는 '로사'라는 이름을 가진 흰 말을 탔다. 로사는 세상 얌전한 말이고 완전 따라쟁이다. 앞에 리드하는 말이 있어야 움직이기 때문에 꼭 다른 말 뒤에 있어야 한단다. 앞에 있는 말이 움직이면 움직이고 서면 서고 어떤 때는 앞말의 엉덩이에 얼굴을 들이밀 정도로 바짝 따라붙어서 로사를 탄 첫날부터 말의 속도를 제어하는 법을 배웠다. 로사를 제어하지 않으면 앞에 있는 말의 엉덩이 밑으로 들어가기라도 할 태세였기 때문이다. 

 초코는 우리가 다니는 승마장에서 베스트라고 한다. 물론 크기가 작은 말 중에서다. 우리 같은 초보는 크기가 좀 작은 말을 타는데 걔네들만 있을 때는 커 보이더니 큰 말 옆에 있는 것을 보니 작긴 작았다. 곧 익숙해지면 정말 큰 말도 탈 수 있다고 하는데 글쎄, 그런 날이 올까 싶다. 지금 타는 애들도 말 위에 올라가면 밑이 까마득해 보이니 말이다.  승마장 베스트인 초코는 누구나 다 타고 싶어 하는 말이라고 한다. 리드도 잘하고 교관님의 명령에 정확한 반응을 하고 딴짓도 별로 안 한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예민하다. 내가 처음 탔을 때도 날타리 한 마리가 계속 눈앞에 어른 거리는지 머리를 흔들어대고 몸을 흔들어서 나 같은 초보는 말에 앉아 있기가 너무 힘들었다. 내가 너무 무서워하니까 말에게 씌우는 망사 마스크를 머리에 씌어주고 나서야 움직임이 좀 덜했다. 모두가 타고 싶어 한다고 하는데 나에게 첫인상은 베스트가 아니었다. 

 한이는 승마를 시작하고 제일 많이, 세 번이나 탄 말이다. 볼 수록 정이 든다고 몇 번 타니 친근감이 생겼다. 말을 타기 전과 후에 목 부분을 탁탁 두드리면서 '이번에도 부탁해', '오늘도 수고했어', '고마워'란 말을 하라고 해서 첨엔 그냥 했는데 두 번 하고 세 번 하니 정말 내 말을 알아듣는 것 같았다. 그래도 아직은 그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에게로 머리를 들이밀면 무서운 생각부터 든다. 워낙에 훈련된 말이고 지금도 매일 교관님이 살펴보고 훈련하고 있으니 별 일이 생기진 않을 거라 믿지만 믿는 마음과 본능적인 마음이 다른 것은 어쩔 수 없다. 지난번에는 승마를 끝내고 한이집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순간적으로 오른쪽 발등을 밟히기까지 했다. 마침 승마 부츠를 신었기 망정이지 그냥 운동화를 신었다면 크게 다칠 뻔했다. 지금도 거기가 살짝 욱신거린다. 과연 승마를 계속할 수 있을까 고민하느라 승마 용품 사는 것을 잠깐 망설였었다. 그러다 한 번을 타더라도 제대로 갖추고 타자 싶어 거금을 들여 부츠며 모자, 바지 등을 마련했는데 하길 잘했다. 병원비가 더 나올 뻔했다. 마사 안에서 발을 밟혀서 그런지 말을 데리고 들어가기가 좀 겁난다. 원래는 내가 먼저 말을 끌고 들어가서 한 바퀴 돌고 말의 목을 두드리면서 수고했다고 하고 눈을 마주치고 나와야 하는데 어제는 말의 고삐를 풀면서 마사 문으로 머리를 들이밀길래 '들어가'라고 하고 한발 물러섰다. 다행히 말이 알아서 들어가 줘 빨리 문을 잠그고 나왔더니 멀리서 교관님이 웃으신다. '거기서 그러시는 거 아닙니다'라고 하시는 것 같았다. 

 오며 가며 두 시간 운전하고 짧으면 30분, 길게는 50분 정도 타고 온다. 남편이나 친구들은 그렇게 짧은 시간 타러 멀리 가냐고 하는데 몰라서 하는 소리다. 너무 긴 시간을 타면 말이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50분 정도 수업하는 것도 멀이 오는 나이 든 두 여자를 크게 배려해서 해주시는 거라고 한다. 우리가 가고 나면 우리가 탄 말들에게는 간식도 더 주고 마사지도 더 하는 등 말의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특별 대우를 해준 다고 한다. 승마를 시작하고 알아보니 훨씬 가까운데도 승마장이 있지만 지금 다니는 곳이 관리가 잘 되어 깨끗하고 승마로 일본 유학까지 다녀오신 교관님이 잘 가르치는 것 같아 당분간은 좀 멀다는 단점 하나 빼면 모든 게 다 좋은 이곳 승마장을 계속 이용할 생각이다. 

 무엇보다 함께 가는 동료가 있어 오가는 길이 지루하지 않다. 나이도 많으면서 더 적극적이고 오갈 때마다 승마 시작하기를 잘했다고 하는 언니를 두고 지루하니, 머니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몇 번 다니다 보니 별로 먼 것 같지도 않다. 

 다음엔 말이 그렇게 좋아한다는 각설탕을 준비해 가야겠다. 시작 전에 한두 개 주면 오도독 씹는 소리를 내는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고 기분 탓인지 말도 더 잘 듣는 것 같다고 한다. 짐승이나 사람이나 먹을 것 앞에서는 약한가 보다. 

 3개월 후에 수강권을 끊을 때는 일주일에 세 번 가는 프로그램으로 해볼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아직은 승마 수업에 빠져 있다. 이번엔 좀 오래, 길게 이 마음이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승마장에 가면 한이를 탈지 초코를 탈지 로사를 탈지 알 수 없다. 우리가 가기 전에 수업을 했으면 쉬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주로 초보자에 최적화된 그 세 마리의 말을 주로 우리 수업에 이용하는 것 같다. 한이, 초코, 로사에 대해 더 잘 알고 그들이 내게도 마음을 열어 준다면 좀 길게, 오래오래 가지 않을까 싶다. 몽골초원에서 칭기즈칸의 후예처럼 다그닥 다그닥 달릴 그날이 올 때까지 '한이야, 초코야, 로사야 이 언니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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