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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정화 Freshorange Aug 24. 2023

갑자기 웬 승마?

내가 승마를 시작하며 조금도 망설임이 없었던 이유

 살아있는 짐승을, 특히 강아지나 고양이를 애완동물로 기르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내가 살아있는 말과 교감을 하면서 타야 하는 승마를 배우다니 내가 생각해도 믿어지지 않는다. 워낙 성격이 단순하고 깊게 생각하는 것을 싫어하는 타입이어서 쉽게 결정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꼭 그렇지도 않다. 

 내가 20대일 때, 그래서 마흔 살 너머의 삶을 과연 경험할 수 있을까 싶게 마흔이라는 나이가 너무 까마득하게 생각될 때 우연히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여성 잡지에서 '승마'를 취미로 하는 여자분의 얘기를 읽었다. 

 우울증이란 단어에 대한 생각 자체가 없을 때였는데 그분은 사십이 넘어가면서 우울증도 오고 삶의 의미가 없이 무기력할 때 승마를 만나서 우울증도 고치고 살도 빼고 지금은 날아갈 듯한 행복한 기분으로 승마를 즐긴다고 인터뷰를 했던 기사였다. 

 승마를 하려면 경제적인 이유도 있어야 하고, 시간적인 여유는 더 있어야 하는 것들을 전혀 모른 체 인터뷰 기사에 나온 여성분이 너무 멋있어서 그때부터 말타기는 내 로망이 되었다. 나도 마흔이 되면, 과연 마흔이 될까 싶긴 했지만 그 여자분처럼 '승마를 해야지'라고 혼자 결심했었다. 

 내가 말을 직접 탔던 첫 경험은 신혼여행 갔을 때였다. 아직 해외여행 붐이 불이 않았던 그때 최고의 신혼여행지는 제주도였고 나도 당연히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갔다. 택시 한 대를 전세 내서 2박 3일간 제주도 곳곳을 여행하는 상품이었는데 하루는 승마체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모자 쓰고 부츠도 신고 조그만 원형 운동장을 15분쯤 말을 타고 돌았는데 물론 교관이 옆에 붙어 있었고 그냥 걷는 수준이었다. 무척 쉬워 보였지만 막상 말위에 올라가는 것부터 쉽지 않았고 처음 타보는 말위에서 균형을 잡기란 더 쉽지 않았다. 잘 훈련된 말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옆에 교관님이 딱 붙어 있는데도 내내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던 기억이 난다. 잠깐 말 타는 것을 과연 로망으로 여겨도 되는 것일지 망설였다. 

 그다음 말과의 조우는 캐나다 밴쿠버 근교 캠핑장이었다. 2008년 여름에 전라북도 교육청의 학생들 어학연수 프로그램에 인솔교사로 따라갔을 때였다. 주중에는 수업을 하고 주말에는 카약, 실내 암벽 등반 등의 액티비티를 했는데 둘째 주엔 밴쿠버 근교의 산으로 2박 3일 캠핑을 갔었다. 캠핑 장소의 풍경이나 시설 등이 서부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듯했고 특히 자는 곳은 꼭 마구간 같은 곳에 매트리스가 쭉 늘어선 곳이어서 과연 캐나다가 선진국 맞나 싶은 곳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완전 자연 자체를 경함 하게 해주는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다. 환경은 그래도 체험 프로그램은 다양하고 재밌었는데 그중에는 말타기 체험도 있었다. 

 우리 일행은 중학교 1학년 20명, 2학년 20명, 인솔교사 2명 이렇게 총 42명이었는데 학년별로 20명씩 말을 타게 되었다. 인솔교사는 타도 되고 안타도 된다면서 선택권을 주었는데 내가 누구인가, 이래 봬도 17년 전에 무려 15분간 말을 탄 적이 있지 않던가? 지가 타봐야 한 20분쯤 운동장에서 조금 타고 말겠지 뭐.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사람은 자기가 경험한 경험치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 사람이 딱 나였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뭘 믿고 조금 탈거라고 생각했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간다.

 그곳 캠핑장의 교관의 도움을 받아 말에 올라탔다. 나를 도와준 그 교관은 15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 소녀였고 나머지 두 명과 함께 다른 학생들이 말에 타는 것도 도와주었다. 호기롭게 탔는데 일단 말 위에 올라 발아래를 보니 절벽의 낭떠러지 위에 있는 듯했다. 나를 도와줬던 교관이 없으니 더 공포감이 들었다. 21명이 다 타고 세명의 교관 중 리더가 채찍을 휘두르고 신호를 하니 21마리의 말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탄 말도 나한테 신호 하나 없이 움직였다. 고삐와 손잡이를 행여나 놓칠까 꼭 잡고 어서 조그만 운동장으로 가서 대충 돌다가 끝나기를 바랐다. 

 대규모(?) 말 군단이 캠핑장을 벗어나자 내가 큰 착각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두의 말들이 조그만 운동장으로 가는 게 아니라 캠핑장 밖의 산으로 들로 나가는 것이다. 21명의 왕초보 Horse Riders을 돕고 살피는 교관은 15세 소녀를 포함 딱 세명 밖에 없었다. 내가 탄 말이 산으로 들로 나가는 순간 난 말 그대로 멘붕이 오고 말았다. 어떻게든 말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고삐와 손잡이로 꽉 잡고 머리끝에서 발 끝까지 온몸에 힘을 주고 말에 딱 붙어 있었다.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내가 탄 말은 걷다 뛰다 풀을 뜯느라 잠깐 멈추었다 지 하고 싶은 것을 다 했다. 산과 들이다 보니 물이 흐르는 조그만 시내도 있었는데 그곳을 철퍼덕 거리며 건넜다. 이건 말을 탄 건지 말에 붙어 있는 건지 도저히 구분이 안 갈 정도였다. 

 20분 남짓 탈거라는 것도 내 착각이었다. 누가 그렇다고 말해준 것도 아닌데 괜히 나 혼자 예전의 경험치만 떠올리고 지레 짐작 했던 것이다. 총 한 시간 반을 산으로 들로 우리를 이끌었던 말 군단은 다행히 누구 하나 떨어지는 일 없이 무사히 돌아왔다. 하긴 그렇게 꽉 잡고 붙어 있었는데 떨어지는 게 이상했을 것이다. 

 한 시간 반 동안 온몸에 어찌나 힘을 줬는지 그러고 일주일 정도를 어그적 어그적 다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처음 한 시간이 지나고 나머지 삼십 분 정도는 비교적 승마를 즐기고 주변 풍경도 한 번씩 쳐다보면서 내가 한 때 승마를 로망으로 생각했던 게 떠올랐다. 

 내가 내내 무서워만 한 게 아니고 나도 모르게 즐겼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했다. 그때 처음 경험했던 실내 암벽 등반도 꽤 매력적이어서 돌아가면 승마와 암벽등반을 시작하리라 다짐했었다. 마침 결코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사십 대 초반이기도 했다.

 하지만 뭔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으리라는 내 소망은 그저 꿈에 불과했다. 학업에 몰도하던 17, 15, 11살이던 딸아이들 셋은 엄마의 뒷바라지를 필요로 했고 직장 생활하랴, 살림하랴 취미생활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무엇보다 승마가 대중적이지 않아 배울 수 있는 장소도 많지 않았고 수강료도 비쌌다. 한참 학원비가 생활비의 거의를 차지하던 학생들을 둔 엄마로서 취미생활 하겠다고 그 큰돈을 지출할 수 없었고 승마는 그저 로망에 머물렀다.

 그러다 얼마 전 함께 모임을 하는 후배에게서 말을 1년째 타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말 타러 가는 시간이 그렇게 기다려지고 말을 타고나면 일상의 스트레스가 확 날아가서 너무 기분이 좋다고 한번 체험해 볼 것을 권유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래 잊고 있던 20대부터의 로망이 생각났고 바로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마침 함께 있던 9살 언니도 적극성을 띄었고 적당한 날을 잡아 말을 한번 타보게 되었다. 일단 말을 타보고 나니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시간이 흘렀다고 수강료가 싸진 건 아니지만 다행히 애들한테 들어가던 학원비를 내 학원비로 쓰면 되겠다 싶으니 문제가 없었고 시간도 얼마든지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낼모레 70인 언니가 더 적극적으로 타고 싶어 했고 오고 가는 길을 함께 하는 동료가 있으니 다니기가 더 수월했다. 

 8월 둘째주에 시작한 승마수업은 벌써 5차시를 마쳤다. 타면 탈수록 쉬워야 하는데 더 어려워지는게 맹점이긴 하지만 일단 재미있다. 오며 가며 왕복 두시간, 말타는 시간은 40~50분, 그것도 멀리서 온다고 교관님이 배려를 해주신거다. 원래는 길어야 30분 수업이라고 한다. 

 내 성격은 전형적인 냄비근성이다. 확 타오르다 금새 사그라지는 불 꽃같다. 뭔가에 관심이 있고 호기심이 생기면 깊게 생각하지 않고 바로 시작했다 아니다 싶으면 그만 두는 것도 빠르다. 승마에 대한 관심도 그렇게 사그라들까 걱정이 좀 앞서긴 하지만 일단 필요한 도구를 장만하느라 몫돈을 조금 써서 당장은 그만두면 안될 것 같다. 그리고 오래 전 부터 꼭 하고 싶었던 활동이었으니 이번 만큼은 제발 온돌의 따듯함처럼 오래 가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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