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가 버텨낸 날들》9편

숨죽이며 지나친 셀로판지 문

by 현서

중학교 3학년이 된 봄.

새 학기가 시작되고, 교실의 공기는 늘 그렇듯 낯설고 부산스러웠다.

칠판 위의 반 배정표 속에서 우연히 마주친 이름 하나.

그 아이와 나는 같은 반이 되었다.


옆자리에 앉은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쉬는 시간마다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시험 시간엔 문제집을 맞바꿔 풀기도 했다.


“야, 내 글씨 못 알아보겠지?”


그런 사소한 농담에도 함께 웃으며, 우리는 자연스레 친구가 되어갔다.


그땐 몰랐다.

그 아이가 내가 오래전부터 바라만 보던 그 흰 대문집 아들이라는 걸.


어느 날, 그 아이가 말했다.


“오늘 우리 집에서 같이 놀래?”


순간 머뭇거렸지만,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교 길에 나란히 걸으면서도, 마음속에는 알 수 없는 긴장감이 피어올랐다.


골목길을 돌자 낡은 셀로판지가 붙은 우리 집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시선을 바닥으로 떨궜다.

괜히 발걸음을 재촉하며 집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제발, 그냥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자.’


심장이 두근거렸고 뺨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내가 사는 집을 들키기라도 할까 봐

마치 비밀을 숨기는 도망자처럼 숨을 죽였다.


잠시 후, 눈앞에 익숙한 집이 나타났다.

구멍가게 옆, 흰 철문이 반짝이던 2층집.

언제나 멀찍이서 ‘잘 사는 집 같다’며 바라만 보던 그곳이었다.


그 아이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당연한 자기 자리로 들어가는 사람처럼.

나는 순간 걸음을 멈출 뻔했지만 애써 웃으며 뒤따랐다.


현관문을 열자 깔끔하게 정리된 신발장, 은은한 비누 냄새가 나를 감쌌다.

모든 게 낯설고 어쩐지 나와는 다른 세상의 풍경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함께 게임을 하고 콜라를 나눠 마시며 낄낄대는 순간엔

그 차이가 잠시 잊혔다.

우리는 그냥 같은 반 친구였고, 웃음소리가 벽을 울렸다.


집에 돌아오는 길, 다시 우리 집 앞을 지날 때는 마음이 복잡했다.

낡고 빛바랜 셀로판지 문이 오늘따라 더 초라해 보였다.

나는 그 앞에 멈춰 서지 않고

마치 모르는 집 앞을 스쳐 지나가듯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날 밤, 누나와 마주 앉아 밥을 먹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계속 불편했다.


‘나는 왜 우리 집을 당당하게 보여줄 수 없었을까.’


….


그저 웃으며 밥을 씹었지만

입안 가득 번진 건 밥맛이 아니라 쓴맛뿐이었다.





중학생의 너에게


그날 네가 느낀 부끄러움

충분히 이해해

하지만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야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거야, 그 기억이 너를 더 강하게 만들 거야

그러니 그때의 너를 탓하지 말아


32살의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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