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모습을 한 첫째 아들
SNS 속의 나의 명함은 <오싸엄마>
나의 첫째 아들이자, 17년 동안 내 다리를 베고 잠을 잤던 나의 늙은 고양이.
(매일은 아니니 5년 정도는 빼야 할 수도)
매끈하고, 뽀송했던 털이 푸석하고 듬성해진 걸 보면 그때도 지금도 나는 눈물짓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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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는 이야기이다.
나의 늙은 고양이가 언젠가 먼 여행을 떠났다는 사실을, 굳이 여기저기 떠벌리지 않았다.
그나마 떠벌린 곳이 매일 마주치는 첫째 딸의 친구 엄마들.
엄마들이란 보통 제일 관심사가 '우리 아이'이기 때문에 이 공통분모를 가지고 얘기하면 오늘 처음 본 엄마도 이미 절친이다. 그 절친들에게는 '우리 아이' 뿐만 아니라 '우리 고양이'얘기도 심심찮게 얘기했다. 우리 '첫째 아들'이니 결국 내 자식이니까. 얼마나 할 얘기가 많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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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쫑투'라는 책을 읽었다. 저자와 19년을 함께한 '늙은 강아지 쫑투' 그 책을 보며 드는 생각은 한 가지였다. 우리 '오싸'에게 미안한 마음. 분명 사랑했던, 사랑하는 마음은 컸는데 내 표현은 그것의 반도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오싸가 사랑받았다고 느끼지 못했을까 봐 읽는 내내 가슴이 아팠다.
글을 쓰면서 언젠가 나의 첫째 아들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아마 긴 이야기가 되겠지.
지금은 "나는 오싸 엄마입니다." 이거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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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써야지 마음먹고 첫 문장을 쓰면서 고민했던 건 '어떤 말투로 쓸까?'이었다.
다른 글처럼 편한 대화체로 할까? 아니면 나만의 독백식? 결론은 독백식이다.
40년생 살면서 나는 나에 대해 많이 몰랐던 것 같다.
결혼하고 나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들이 많기 때문이다.
남편과 아이들을 통해서 말이다.
유년시절 나는 어떤 아이였지?
다른 사람들의 눈으로 본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내가 알고 있는 나는?
이런 의문을 가지며 일상 속의 나를 끄집어 내려 글을 쓴다.
누군가는 이 글을 읽으며 함께 나를 찾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