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감성
나는 낮잠을 잘 자지 않는다.
물론 '아예 안 잔다!'는 아니다.
어느 순간 낮잠을 자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언제부터였는지, 왜 그렇게 생각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은 낮잠이 아깝다.
20대의 끝자락 처음으로 불면증을 겪었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지만, 일을 쉬고 있을 때라 몸을 많이 움직이지 않았던 것만은 확실하다.
아직 남은 에너지가 너무 많았던 건지 거의 이틀간 잠을 못 잤다.
처음이었다.
자고 싶은데 잠을 잘 수 없다니!
결국 약국에서 불면증 약을 샀다.
효과는 너무 좋아서 기절하듯이 잤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눈을 뜨고 싶어도 뜰 수 없었다.
그렇게 한숨 자고 나니 잠을 못 자도 다신 약의 힘은 빌리고 싶지 않다.
결혼하고 임신 후에는 불면증이 아니어도 잠들지 못했다.
너무 힘들었던 입덧에 앉아서 겨우 꾸벅꾸벅 졸았다.
입덧 초중기까지는 일을 다녔는데, 입원을 할 정도로 힘들어서 결국 그만두었다.
일까지 하면 쓰러져 잘 법도 한데, 오히려 더 그러지 못해 날이 밝아질 때쯤 한두 시간 겨우 잤다.
일을 그만둔 후에는 입덧도 후기를 향해가고, 마음도 편해졌는지 낮잠도 자곤 했는데
그 이후에는 몸이 무거워지면서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출산 때까지 통증과 임신불면증 때문에 또 밤잠을 쉽게 들지 못했다.
출산 후에는 자고 싶어도 잘 수 없었다.
3시간에 한 번씩 밥도 먹고 기저귀도 갈아야 하는 아기가 있었다.
그 아기가 조금 더 자라 밤잠이란 걸 잘 때쯤에 나도 조금 더 길게 잘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예민해져 버린 나여서 새벽에 아이가 조금만 찡거려도 벌떡 일어났다.
그러면 아이가 낮잠을 자거나 할 때 피곤함을 보충할 법도 한데,
그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다이어리도 쓰고, 책도 읽고, 드라마도 보고.
그 시간이 낮잠보다 더 꿀같았다.
그리고 새벽에 벌떡 일어날 일이 거의 없고,
나도 밤에 잠들어 아침까지 푹 잘 수 있게 되니 문득 새벽이 그리워졌다.
나만의 고요한 그 시간.
결혼 전에 나에게 새벽이란
불면, 남자친구와 게임을 즐기는 시간, 친구들과 술 한잔 후 귀가하는 시간, 잡생각의 시간 등의 의미였다.
딱히 '감성'이란 단어를 붙일 낭만은 없었다.
그런데 '감성'이라는 단어가 붙은 순간이 생겼다.
영어공부를 하기로 마음먹고 새벽학원을 다닐 때였다.
아직 어둑한 시간에 학원에 갔다가 공부를 하고 아래층 카페에서 차 한잔을 할 때면 동이 튼다.
밝은 노란빛의 카페 조명이 점점 흐려지고
창밖에는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점점 많아진다.
그 순간이 내 마음에 평안을 주었다.
나 혼자만의 이 시간이 사랑하는 사람과 있는 순간과 또 다른 행복을 주었다.
다시 그리워진 이 새벽의 시간을 비록 카페에 가지는 못하지만
집에서 느껴보기로 했다.
아이가 깨기 1~2시간 전에 일어나 내가 좋아하는 믹스커피를 한잔 탄다.
컵을 가지고 식탁에 앉아 책을 펼친다.
그렇게 책을 읽다 보면 창밖에 서서히 노란빛이 물든다.
그러면 책에서 눈을 떼고 창문을 멍하니 바라본다.
고요함 속에 나만 느끼는 이 순간이 너무 좋았다.
1년쯤 새벽감성을 느끼다 두 번째 천사가 찾아왔다.
그 이후 아직까지 다시 그 새벽감성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나와 많이 닮은 둘째는 아직 나를 푹 잠들게 하지 않는다.
그러다 오늘 같이 팔이 아파서 잠들지 못할 때면 미련 없이 이불을 걷고 일어난다.
스탠드 등을 켜고 다이어리를 펼친다.
아침일기를 쓰고 오늘 할 일을 정리한다.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내가 좋아하는 믹스커피는 마실 예정이다.
겨울이라 창 밖의 노란빛을 보려면 아직 멀었다.
커피를 마신 후 아마 고민을 할 것이다.
한 시간이라도 잠을 잘지, 책을 읽으며 버틸 것인지.
이런 고민을 하는 고요함마저 너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