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에 대한 나의 태도
둘째가 열이 나기 시작했다.
요즘 여러 병들이 유행하고 있어 기침만 해도, 콧물만 나도 걱정이 되는데
열이 나니 응급병원을 갈까 말까 고민을 했다.
다행히 컨디션은 괜찮아서 하루 지켜보기로 했다.
우리 아이들은 아파도 쳐지는 일이 거의 없다.
만약 그렇다면 정말 너무 아픈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아프면
"그래도 컨디션은 좋으니 괜찮아~" 하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아이들이 아프면 나의 모성애가 발동한다.
아이들이 아픈 것보다 내가 아픈 게 낫다고 생각한다.
물론 엄마로서의 마음도 있지만, 케어하는 내가 더 힘들기도 하다.
내 몸하나 내가 케어하는 게 낫다는 말이다.
둘째는 태어나자마자 100일도 안돼서 코로나에 감염되었다.
한창 오미크론이 유행할 때였다.
언니 어린이집 등원, 하원 때 말고는 나가지 않는 아기인데
어느 날 열이 났다.
소아과가 하지 않을 때였는지 택시를 타고 30분 거리의 큰 병원을 찾았다.
코로나 검사를 하고 음성 판정을 받고 진료를 보았다.
다행히 둘째는 열감기였다.
내 걱정만큼의 병명이 아니라 안심했다.
그때는 고민 끝에 산후도우미분을 부른 지 2일째 되는 날이었다.
병원에 다녀온 뒤, 코로나 음성 판정을 받았다 하고 오후에 오시라고 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나의 몸상태가 이상했다.
아직 회복하지 못한 몸으로 아기띠를 하고 몇 시간을 병원에 있어서 그런가 했다.
꼭 몸살이 난 것처럼 허리가 너무 아팠다.
그리고 그날 저녁 열이 오름을 느끼면서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다.
남편에게 아무래도 의심된다고, 야간 검사 할 수 있는 곳을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섰는데
5분 차이로 늦어 검사를 하지 못했다.
혹시나 싶어 마스크를 쓰고 어쩔 수 없이 모유수유를 했는데,
다음날 병원에 가니 역시 코로나 양성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며칠 뒤, 아이 둘 다 양성판정을 받았다.
아이들은 하루 열나고 말았다.
정말 다행이었다.
문제는 나였다.
목이 찢어질 정도로 아팠다.
침 삼키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런데 아이들 케어를 하고, 수유를 하고, 밥을 챙겨야 하고
엄마, 아내로서의 임무를 놓을 수 없었다.
밤에 둘째 수유를 하고 안고서 꺼이꺼이 울었다.
옆에서 왜 그러냐고 묻기만 하는 남편이 어찌나 밉던지...
결혼 전의 나는 앓아 누을 만큼 아픈 적은 많지 않았다.
그저 쉬었다.
결혼 후의 나는 앓아 누을 만큼 아파도 쉬지 못했다.
아니 쉬지 않았다.
그러기엔 눈에 보이는 것들이 너무 많다.
나 자신이 그러니 남편이 아프다고 만사 다 제치고 침대에 누울 때면
그렇게 보기 싫을 수 없다.
그래서 아픈 사람에게 그렇게 투덜댄다.
남편은 본인이 자주 아픈 것도 아닌데, 죄인처럼 대하냐고 한다.
미안함과 얄미움이 공존하는 아내의 심정이다.
나의 아픔에 소홀하면 언젠가 분명 탈이 난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온전히 쉬지 못하는 나.
조금 내려놓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