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석같은 여자

그게 바로 나?

by 오싸엄마




나는 애교가 없는 편이다.

처음부터 알았던 것은 아니다.

철들 때부터 알았던 것은 아니다.

연애를 하면서 점차 알았다.


첫 번째 연애 때만도 몰랐다.

중간에 몇 번 헤어졌던 횟수까지 포함해서 거의 10년을 가까이 만났는데도 몰랐다.

내가 애교 없고, 목석같은 여자인 줄은.


. . . . .


지금 남편을 만나고 결혼하고서 알았다.

내가 그런 여자인 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인정하기 싫었던 걸까?


첫 남자친구는 내가 막 사춘기를 겪을 시기에 만났다.

사랑이라는 감정도 연애라는 상황도 그다지 상관없는 시기였다.

연애를 했어도 그저 당연하게 그 사람과의 시간을 보내고

다른 사람은 만나면 안 되고(물론 이성으로 말이다) 그런 규칙들만 따졌다.


첫 남자친구는 나 말고도 다른 이성에게 여러 번 눈길을 주었다.

나와 헤어져있던 시기에도 다른 사람과 연애하는 것이 아무렇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마음을 많이 의심했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세월을 보냈지?

생각을 해보면 일단 '정'이 깊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어쨌든 만나면 좋은 점이 있었겠지.

만약 내가 애교 있고, 밀당도 잘하는 유연한 연애를 할 줄 알았다면 그는 나에게 푹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결혼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이성적인 문제에서 우리의 헤어짐에 그를 많이 탓했다.

그런데 헤어지고 마음정리가 다 되고 나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에게 온전한 사랑을 주지 못한 느낌에 원망보다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 . . . .


짧게 만났던 남자친구도 있었다.

100일을 겨우 넘기고 헤어졌다.

그는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많이 힘들어했다.


우리는 나의 초등학교 동창 친구로 인해 인연을 맺었다.

그의 소개로 알게 되었고 긴 시간을 걸친 후에 연인이 되었다.

연인이었던 기간보다 썸을 탔던 기간이 몇 배는 더 길 것이다.


그렇게 연애를 시작한 초반에 우리를 이어준 친구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보고 싶다고 말도 하고, 투정도 부리고 해."


취업 준비로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그이기에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공부가 끝나면 연락하고 만나면 되니까.

그런 그에게 투정을 부리라고? 왜?


이 말은 나중에 이해했다.

취업준비로 힘들었던 그에게 나라는 존재가 그 힘듦을 잊게 만들길 원했던 친구의 바람이었다.

그런데, 취업 준비가 힘들어 나의 애교나 투정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앞으로 더 힘든 일은 어떻게 버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자신의 힘듦뿐이 보지 못하는 그와는 이별을 맞았다.


. . . . .


지금 남편은 내 기준에 참 이기적인 사람이다.

그럼에도 나를 웃게 만들고, 내 앞에서만 애교를 부리고 춤을 출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그를 너무 현실적인 사람이라고 가끔 타박하는데,

우리의 결혼 생활이 길어질수록 현실적인 사람은 정작 나였다.


나의 목석에는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

나의 행동에 상대의 반응이 너무 신경 쓰이는 것이다.

우리 집 첫째가 그러하다.

아이에게는 그럴 필요 없다고 하면서 정작 나는 그랬다.

아이에게 할 말이 없다.


이런 내가 맘껏 콧소리가 나오는 때가 있다.

바로 알코올이 들어갈 때이다.

그때는 나도 모르게 본연의 모습들이 나오나 보다.


그래서 연애 때는 술을 좀 마셨는데,

결혼하고 얼마 안 돼 임신을 하면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취한 일이 없다.

술을 마실 수 없는 몸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쉽게 취하기 때문에 더 마시지 못하는 것 같다.


. . . . .


남편에게 '목석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솔직히 속상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오기도 났다.

조만간... 한껏 취하고 맘껏 콧소리를 내볼까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일단 육아와 집안일에 지쳐 여유가 없다.

여유가 생기면 알아서 나오려나?


예전 남자친구들에게는 나오지 않았지만 남편에게는 가능할 것 같다~

(남편이 춤출 때 같이 추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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