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그리운 할머니

by 오싸엄마





설날 명절이다.

누구는 해외로 여행도 가고, 누구네는 10시간 걸려 가족을 만나러 간다.

우리 가족은 당일 아침에 인사를 드리러 간다.

그리고 점심 먹고 집으로 온다.

그러면 시댁을 다녀온 동생네가 우리 집으로 와서 남은 하루를 지내고 간다.


내가 초등학생이었던 시절의 명절은

우리가 알고 있는 옛 명절의 풍경이었다.


명절 전날 큰아버지댁으로 간다.

3, 4 가족이 모여 다 같이 전을 부치고 음식을 만든다.

사촌 언니들이 몇 있어서 나이순으로 서열이 하위권에 속한 나는 음식이나 설거지에 손을 댈 일이 없었다.

정달 다행은 결혼해서도 그럴 일이 없다는 것이다.

(다들 결혼 잘했다고 한다. ㅎㅎ)

하지만, 어느 순간 친척들 간의 불화가 생겼고 그 이후에 전과 같은 풍경은 볼 수 없었다.


외갓집에서는 매년 이런 풍경을 볼 수 없었다.

잘해야 1년에 한 번 갔던 것 같다.

외할머니는 주로 시골에 계셨다.

건강이 그리 좋지는 않으셨지만, 거동이 되시는 한 시골에서 생활하셨다.


그래서 명절이면 할머니를 보러 전라남도의 끝자락까지 가야 했다.

그 길이 결코 짧지 않기에 1년에 한 번 가면 많이 갔던 것이다.


. . . . .


외할머니는 키도 작으시고 몸집도 왜소하셨다.

하지만 깡하나만은 있으셨던 걸로 기억난다.


할머니 집은 산골마을에서도 가장 꼭대기에 있었다.

뒤로 넘어가면 산 중턱에 있는 밭이 있었고, 집 뒤에는 대나무숲이 있었다.

마을 입구에서 할머니집까지는 30분은 걸어야 했다.

슈퍼도 마을 어귀에 조그맣게 하나 있어서 뭐 하나 맘대로 사지 못했다.


때는 겨울이었다.

방학이라 동생하고 한 일주일정도 외할머니 집에서 지냈던 적이 있다.

눈이 소복소복 하얗게 내린 어느 날이었다.

언덕 위에 있던 할머니집에서 보는 풍경은 정말 예뻤다.


할머니 집에는 아궁이와 가스레인지 하나가 있었다.

뜨거운 물을 쓰려면 물을 끓여 써야 했는데, 은색 대야에 눈을 한가득 퍼서 가스레인지 불에 녹였던 기억이 난다. 깨끗한 눈이라 가능했겠지.

그 물로 따뜻하게 씻을 수 있었다.


슈퍼가 멀기도 했고, 구성품도 별로 없었을 것이다.

(한 번도 가보지는 못했다.)

대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트럭이 왔다.

라면, 계란등의 식품류부터 간단한 잡화도 있었던 것 같다.

할머니는 트럭에서 라면을 사서 끓여주셨는데 그 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 . . . .


하지만, 트럭만으로는 부족했기에 할머니는 오일장을 가셨다.

할머니를 따라 30분 정도 걸어 마을 어귀로 가서 버스를 타고 시장에 갔다.

시장에서 이것저것 샀지만 가장 기억나는 것은 바로 튀겨서 가져온 통닭이었다.

닭을 잡는 것부터 온 과정을 볼 수 있었기에 잊으려야 잊을 수 없다.

(그 나이에 충격적이었다!)


장바구니 하나 없어 할머니와 봉지를 나눠 들고 다시 버스를 타고, 걸어서 할머니 집으로 돌아왔다.

족히 1시간은 훨씬 걸렸을 텐데 그동안 통닭냄새를 잘 참았나 보다.

아궁이에 불을 지편 뜨끈한 방에서 만두도 쪄먹고, 할머니 반찬에 밥도 먹었다.

벌써 30년 가까이 지났지만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나이를 먹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할머니와 지내는 일주일 동안 아이들이 놀만 한 건 많지 않았는데,

평소에도 장난 감 없이 놀아서 할머니집에서의 생활이 마냥 지루하지만은 않았다.

심심하면 동생이랑 마을을 어슬렁 돌아다니기도 하고 할머니 따라 밭에도 갔다.

밤이면 온통 껌껌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할머니와 함께 누워서 텔레비젼 보다가 잠이 들었다.


그런 생활에서 유일한 장난감은 화투였다.

당연히 할머니가 알려주셨다.

아이의 눈에 그림 맞추기는 당연 재미있었을 거고, 무엇보다 딱딱 치는 그 촉감이 참 재미있었다.

민화투를 배웠는데 고스톱 하고는 점수 내는 게 다르다.

그래서 성인이 된 후, 고스톱을 배울 때 꽤 헷갈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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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지병이 있으셨는데, 약을 드시는 모습이야 많이 보았지만

아파하거나 쳐지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내가 고등학생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그 이후 할머니를 볼 수 없었다.

그리고 할머니의 부고소식을 듣고 갔던 장례식장 사진으로 오랜만에 할머니를 뵐 수 있었다.


할머니는 모두 모일 수 있는 주말까지 기다렸다 돌아가셨다고 했다.

아버지에게는 아주 나중에 이야기했는데, 본인에게 잘해주셨던 분이라 지금까지도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던 것이 속상하다고 하신다.


그랬던 할머니가 내 꿈에 나오신 적이 한 번 있다.

오래 만났던 남자친구와의 헤어짐을 고민할 때였던 것 같다.

꿈에서 남자친구와 어두운 숲 안으로 들어가려던 나를 말리며 해가 찬란히 빛나는 쪽으로 가라고 알려주셨다.

그때의 할머니 모습은 내가 평소 아는 모습이 아니었다.

늘 연한 색의 무늬 없는 한복이나 일상복을 입으셨던 분인데, 꿈에서 만난 할머니는 화려한 꽃무늬의 옷을 입고 계셨다. 표정도 아주 환했다.

꿈이니 진짜 할머니였는지 아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환했던 표정만으로 잘 지내고 계신다는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결국 그 남자친구와는 헤어졌다.)


. . . . .


꿈 때문인지 마음이 힘들 때면 외할머니가 가끔 생각난다.

길을 알려주시면 좋겠다는 마음과 그 환한 미소를 다시 보고 싶다는 마음이다.


대설주의보라며 안전문자가 오고, 당일에 차를 타고 명절을 보내러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지만

창밖에 소복이 쌓인 눈들을 보면 어렸을 적 외할머니 집에서 보았던 시골 풍경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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