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겨운 얘기일 수도 있지만, 지겹게 얘기할 만큼 유전자의 힘은 위대하다. 누가 누구 자식인지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하고, 키나 체형도 유전의 법칙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때문에 우리 애들은 앞 줄에 선다. 외모에서 나타나는 유전이란 것도 놀라운 편이지만 진짜 기가 막힌 것이 성격의 유전인 것 같다.
사람에게는 본디 갖고 태어나는 기질, 본성이라는 것이 있는데 세상에 이곳저곳 부딪히다 보면 어느새 그런 것들 마저도 다듬어지게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보자면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는 희한하게 입이 묶여버리는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듯했지만 나이가 들고 필요한 것들이 생기니 넉살이 조금씩 생겨나고야 말았다. 바뀌어버린 내 모습이 내 스스로 익숙해진 이 시점에서 어린 시절의 나를 우리 애들을 통해 문득문득 마주하곤 한다.
지금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 되었지만, 나는 어렸을 때 그 무엇에도 적극적이지 않은 아이였다. 초등학교 시절에 엄마는 공부보다는 다양한 학원을 다니게 하셨다. 주로 체육 쪽 학원이 많았는데 그 어느 하나 내가 원해서 간 것은 없다. 그렇다고 가기 싫은데 억지로 간 건 아니긴 하다. 어쨌든 엄마가 나에게 "이거 배워볼래?"라고 물어보면 일단 다 싫다고 대답한다며 답답해하시던 모습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내 어린 딸이 그때의 나 놈과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고 있자니 괜히 헛웃음이 나고 자연스레 나는 그때의 엄마의 감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딸아이는 좀처럼 긍정적인 대답을 잘하지 않는다. 일단은 "싫어"라는 대답을 먼저 뱉고 본다. 나랑은 다르게 어릴 때부터 호기심도 강하고 적극적인 아이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 있지만, 사실 나도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욕심을 낼 명분도 없다. 결국 나 닮아서 그런 거니까. 그래서 그냥 그러련하고 넘어가며 옛날의 나에게 물어본다. "너는 그때 왜 그렇게 새로 뭔가 하는데에 거부감은 느낀 거야? 진짜 싫은 거야, 아니면 싫다고 말하는 것뿐이야?"
딸내미는 나랑 꽤 많이 비슷하긴 하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아이일지라도 성격적으로는 우리 둘째 아들이 더 서글서글하고 밝은 편이라 같이 지내기 편한 타입이지만, 나랑 성향이 다르다. 그래서 사고방식도 조금 다른 것 같다. 가끔은 얘가 무슨 생각으로 이 행동을 할까?라는 의문에 답이 결국 잠자리 들기 전까지 찾아지지 않을 때가 있는데 딸의 행동은 그에 비하면 불편할 때도 있지만 이해는 잘 되는 편이다. 아이가 불안이 많은 편이고,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있어서 무엇을 시작하는 것 자체에 큰 부담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나도 딱 그랬던 기억이 난다.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은 어렵다. 어른들처럼 자신의 기분이나 감정을 온전히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고, 예상치 못한 행동으로 표출될 때도 많고, 은근 자기 속으로 삭히는 일도 많은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가 나를 닮는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어린 시절의 나와 대화해보게 되는 특별한 기회도 만들어주니 또 감사할 따름이다. 나 닮은 자식 낳아보니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