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집에 오면 보통 8시 반쯤. 아내는 5살 아들은 이미 잠들었다고 했다. 웬일이지? 아내에게 물었더니 아들이 머리가 아프다고 해서 열을 재었더니 38도가 넘었다고 한다. 몸이 곤했는지 일찍 잠든 것이다.
아내는 걱정이 된다고 했다. 어린아이가 두통이라니. 사실 조금 무딘 아빠는 별 생각이 없었다. 몸살이 왔구나 싶어서 안쓰럽기는 했지만 큰 병은 아닐 것으로 생각했기에 특별한 걱정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아내의 얘기를 듣고 보니 우리 애들이 머리가 아팠다고 한 적은 처음인 것 같아서 들어서 덩달아 걱정이 되었다.
나는 고통을 잘 견디는 편이다. 엄살이 적다. 어릴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나의 장점으로 생각했고, 어떤 면에서는 우리 아이들도 고통에 예민하게 반응하기보다는 극복하는 스타일로 자라길 바라지만, 이 어린아이들의 고통을 잘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하는 것 같다.
내 눈높이로 아이들의 아픔이나 고통을 작게 평가하지 않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다. 지금 생각해도 우리 딸아이에게 미안했던 마음이 너무나 생생하다.
둘째도 없었던 걸로 기억하니까 딸아이가 네 살쯤이었을 때 인가보다. 우리 아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걷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얼마 걷지도 않은 것 같은데 금방 다리가 아프다며 안아달라고 했다. 내가 보기에는 슬슬 안기고 싶어서 습관적으로 엄살을 부리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가 점점 무거워지기도 하고, 참을성이 너무 없는 건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어서 한참 아이와 이 문제를 놓고 씨름을 하던 시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놀이동산에 가고 싶다고 했었다. 그때 우리 부부는 바로 조건을 걸었다. 놀이동산에서 절대로 안아달라고 하지 않고 스스로 걷기. 안아달라고 하면 집에 가겠다고 했다. 아이는 너무 원했던지 우리의 조건을 승낙했고 롯데월드에 입장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두 번째 놀이기구 대기줄에 서 있는데 아이가 자꾸 힘들다고 말하기 시작하며 안아달라고 했다. 아내와 나는 벙쪘다. 실망했다고 해야 하나? 애초에 일단 놀이공원에 들어왔으니 계속 부탁하면 안 안아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 당시엔 이 어린아이가 너무 영악한 게 아닌가 싶었다.
아이에게 신신당부한 바가 있어 지켜야 했다. 아이에게 말했다.
"너 약속 기억해. 안아달라고 안 하기로 했어. 그런데 지금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빠가 안아주면 집에 가는 거야? 안아줘? 네가 결정해"
이 상황에 기분이 좋지 않아 아이에게 쏘아붙이듯 말한 것 같다. 아이는 조금 고민을 하는 듯 보이더니 결국 안아달라고, 나가겠다고 했다. 입장권이 아까웠고, 아이에게는 실망했다. 집에 가는 차 안에서 네 살짜리 아이에게 인생 설교를 좔좔좔 퍼부었다.
차가 출발한 지 10분쯤 지났을까? 아이가 갑자기 토를 했다. 아이의 옷을 더럽히고 차 바닥까지 흘렀다. 나는 순간 너무 놀랐고, 본능적으로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온몸에 퍼져서 순간 멍해졌다.
아이는 체를 했는지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힘들다는 얘기가 그 의미였던 것이다. 놀이공원에서 나가야 하더라도 엄마나 아빠의 품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근처 주유소에 차를 세우고 토를 치우는 동안 수많은 후회와 같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왜 그렇게 다그쳤을까? 아이에게 뭐가 힘든지 왜 묻지 않았을까? 왜 그렇게 몰아세웠을까? 많이 안아달라고 하는 게 그렇게 잘못된 걸까? 몸도 안 좋은데 엄마 아빠의 반응이 얼마나 상처가 됐을까'
그 이후 나는 아프다는 아이를 대하는 나만의 규칙을 세웠다. 아이가 아프다는 말은 꾀병 같아도 일단을 다 믿고, 엄살 같아도 일단은 다 받아주기로 했다. 그리고 병원 가는 것을 덜 꺼리기로 했다.
병원을 가야 하나 애매할 때가 있다. 가끔 '뭐 이런 걸 가지고 그렇게까지 걱정하냐'는 듯이 마치 내가 과잉보호하는 부모인 것 같은 묘한 뉘앙스를 풍기는 의사 선생님도 있다. 그런데, 병원을 가는 목적은 전문가의 말을 듣고 안심하기 위함도 있다. 별일 아니고 큰 병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 자체도 병원을 가는 의미인 것이다. 오히려 그런 진단 결과라면 다행이다. 주변에 보면 큰 질환이나 장애를 겪게 되는 이유 중 초기 증상을 가볍게 여겼기 때문인 경우가 적지 않다.
아이들이 아프다고 할 때는 호들갑스럽게 받아들이는 게 무딘 것보다 훨씬 낫다. 아이들은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알지도 못할 때도 있고, 알아도 똑바로 표현을 못한다. 나 혼자서만 애들을 돌본다면 가볍게 넘어갔을 텐데 아이들의 증상을 쉽게 넘기지 않고 신경 써주는 아내에게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