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빠가 존경과 사랑을 받는 방법
[10살 딸, 6살 아들] 아빠와 함께 게임을
내 생애 이렇게 열심히 게임을 해본 적이 있던가? 내가 어릴 때에는 게임은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어느 집에서는 비슷했을 거다. 게임이란 아이들을 공부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최고의 빌런, 피리 부는 사나이였다. 하면서도 엄마의 눈치를 봐야 할 의무가 있는 그런 것. 하지만 나는 요즘 아주 열심히, 그것도 가족들에게 어느 정도 인정을 받으면서 게임을 하고 있다.
게임의 위험성은 부인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나 아이들이 스마트폰이나 패드의 존재를 인지하면서부터 혹여나 우리 아이가 게임에 중독되진 않을까 하는 고민에 휩싸이게 된다. 그도 그럴만한 게 게임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무섭게 몰입해있다. 좋게 말하면 몰입, 나쁘게 말하면 넋이 나간다고 할까?
인간을 호모 루덴스라고도 한다. 유희하는 인간. 곰곰이 생각해보면 인간은 놀이하는 본능이 분명 있는 듯하다. 예로부터 춤과 노래와 놀이를 세대를 거쳐 전달해 온 것이 하나의 증거일 것이고, 부모라면 감당할 사명 중 하나는 바로 "심심해"라는 아이의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것이다. 어른들이라고 다를까? 스마트폰의 활용도 1순위는 분명 유희일 것이다. 스마트폰에 깔린 게임이나 넷플릭스, SNS가 모두 즐겁기 위한 앱들이다. 먹고 자는 것만이 아닌 노는 것 마저도 인간이 매일 마주하는 숙제인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종합하여 아내와 나는 정면돌파를 택했고, 그 방법은 엄마 아빠와 같이 게임을 하는 것이었다. 즐겁고 싶은 게 인간의 본능이라면 게임을 좋아하는 마음마저 막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게임을 더 바르게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게임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걱정스럽게 비치는 이유는 꼽자면 현실 감각을 상실하고, 폐쇄적으로 자기만에 세계에 고립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게임을 하면서 차라리 소통을 할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이런 현상은 아이들이 혼자서 핸드폰을 들고 통제 없이 게임에 빠져들 때 일어난다. 이런 고민을 거쳐 우리 집에 닌텐도 스위치가 들어왔다.
닌텐도여야 했던 가장 큰 이유는 포켓몬이다. 무려 거의 30년의 나이차를 극복하게 해주는 궁극의 필살 콘텐츠. 포켓몬 새로운 게임이 나올 때마다 구입해서 하고 있는데, 지금으로서는 게임을 같이 하기로 한 것이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닌텐도 조종기를 들고 있는 나는 거의 아이들에게 아이돌이다. 사실 게임을 하다 보면 아이들에게 난이도가 조금 있는 부분들이 있다. 조금 더 섬세한 컨트롤을 요한다거나 스토리를 확실히 이해해야 진행되는 부분이 있는데 이런 것들은 자기들보다 매끄럽게 해결해가는 나의 플레이가 더 속이 편한 모양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직접 하는 것보다도 내가 하는 것을 옆에서 보는 걸 더 선호하기도 한다. 이 순간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나를 우러러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최근 폭주한 포켓몬을 잡는 미션이 있었다. 보통의 포켓몬보다 공격적이라서 잘 피해서 반격하지 않으면 질 수 있었다. 열중하는 중간에 아이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심장이 너무 두근거려" 게임 주인공이라도 된 듯 이입을 했던 모양이다. 아빠는 어른의 매운맛을 포켓몬에게 보여줬다. 포켓몬은 결국 울부짖으며 쓰러지고 말았다. 순간 눈앞에 아들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이 아이를 키워오면서 이토록 하트 뿅뿅한 눈빛을 본 적이 있었던가? 이 순간만큼은 아들내미는 나와 깊은 사랑에 빠진 것이 분명했다. 이내 나를 부둥켜안았다. 이건 뇌에서 시킨 것이 아니다. 몸이 반응한 것이다. 옆에 첫째도 나와 눈을 맞추고 흥분되어 약간 뜬 목소리로 "이겼어!"를 외쳤다. 마치 올림픽 금메달이라도 받은 축제 분위기였다.
게임이 절대악은 아니라는 생각이 이제 내 안에 자리를 잡았다. 많은 것들이 그렇다.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아직도 조심스럽긴 하다. 일반적으로 게임이 줄 수 있는 악영향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미쳐질 가능성이 아직도 있지만, 꾸준히 살펴보며 나아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지금은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이 상황을 즐기려고 한다. 더 친해지자 아이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