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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아저씨 Feb 10. 2022

딸에게 물었다. "외동 부럽지 않아?"

[10살 딸] 부럽다고 할 줄 알았다.

변화는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사람은 익숙함을 사랑한다. 선택을 할 때, 익숙함이 옳고 그름보다도 더 중요한 기준으로 적용됨을 꽤 여러 번 경험했다. 변화에는 적응이라는 반드시 따라오는데 그 과정이 항상 순탄하지만은 않다. 거의 대부분 순탄하지 않다고 하는 게 더 맞을까?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알게 모르게 적응을 위해 감당해야 할 물리적, 심리적 부담감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나에게는 첫째 아이에게 느끼는 묘한 유대감이 같은 것이 있다. 내가 장남이기 때문인 것도 하나의 이유겠지만, 첫째 아이는 어린 두 아이들보다 우리 부부와 함께 더 오래 우리 가족을 구성하고 지탱해 왔다. 그래서 그런지 이 아이가 어느 순간 그저 내 자식이 아닌 한 배를 탄 팀원처럼도 보이기 시작했다.


첫째는 둘째나 셋째에 비하면 부모가 맞이하게 되는 가정의 변화를 함께 겪게 된다. 우리 딸은 혼자였다가 다섯 살에 동생이 생겼고, 그 뒤 4년이 지난 작년에 동생이 또 하나가 늘었다. 나중에 태어난 두 아이의 경우는 태어나면서부터 엄마, 아빠와 형제가 모두 있었지만 첫째는 없었던 형제들이 생겨나는 과정을 겪는다. 그 과정이란 곧 엄마 아빠의 관심을 분배하는 것과도 같은 의미이기도 하기에, 첫째 아이가 이 변화 가운데 상처를 받진 않을지 살피게 된다.


요즘 우리 첫째 딸의 모습을 보면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의 입장에서 동생의 탄생은 아내가 남편의 외도를 보는 것과 같은 정도의 스트레스를 유발한다고 TV에서 본 적이 있다. 나도 여동생이 있는데, 지금도 동생에게 느꼈던 질투의 감정이 꽤 생생하다. 그와 비교해 보면 우리 딸은 동생이 생긴 것을 잘 받아들인 편이다. 투닥거리며 말싸움을 하는 게 예삿일이지만, 서로에게 맞추어가는지 조금씩이나마 싸우는 횟수가 적어지는 것 같다.


우리 첫째는 분명 둘째보다 양보에 약하긴 하다. 다시 말해 욕심이 좀 있다. (첫째들이 보편적으로 그런 편인지 궁금하다.) 둘째는 태어나면서부터 나누는 것, 같이 쓰는 것이 당연한데 첫째는 다 내 것인 세상을 살다가 동생이 생기면서 뒤늦게 이런 경험을 하게 되다 보니 내 몫을 지켜내야 한다는 본능 같은 게 생긴 건 아닐까 추측해본다. 부모로서는 내 아이가 천사 같이 양보도 잘하고 동생을 무한 사랑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지만, 얘나 나나 인간의 피가 흐르기에 그러기 쉽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나는 이런 류의 불만과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불만들이 모여서 동생에 대한 미움의 형태로 마음에 멍울이 지지는 않을까 걱정도 했다. 하지만 내가 했던 우려에 비하면 동생과의 관계가 좋은 것 같다. 물론 다툼은 수시로 있지만 둘은 가장 친한 친구기도 하다. 정말 하늘에 감사한 것은 둘의 놀이 성향이 너무 비슷하다. 우리 딸은 역할 놀이를 좋아하는데, 사실 딸아이 또래는 역할 놀이는 이제 거의 졸업하는 편이다. 또래 친구들과 놀 때는 그 아이들의 방식으로 놀고, 어쩌면 동생과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조잘조잘 역할 놀이를 하는 것이 자기가 편한 방식으로 노는 시간 같기도 하다.


확실히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첫째는 이제 막 태어난 막둥이를 무척 예뻐한다. 사람보다는 귀여운 인형처럼 대하는 것 같긴 한데 말도 걸어주고 뽀뽀도 해준다. 뭘 해도 사랑스럽다고 한다. 사실 첫째가 조금 쌀쌀맞은 면이 있어서 의외기도 했다. 자기 동생이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원래 아기를 좋아하는 성향인지 모르겠지만 막내가 태어나고 예뻐하는 모습을 보니 왕누나 같은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문득 궁금했다. 겉보기로는 동생들과 잘 지내는 것 같기는 한데, 딸의 속마음에는 숨겨둔 부정적이 것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딸과 친한 친구들 중에 외동이 유독 많다. 외동이 부러울 것도 같다. 아내도 외동딸인데 많이 외로웠다고 하기는 했는데, 반면 누군가는 외동이라서 너무 좋았다는 얘기를 하는 것도 들었다. 그래서 언젠가 한 번 툭 물어봤다.


"너는 외동 친구들 부럽지 않아? 동생 있으면 다 같이하고, 나눠야 되잖아."


"별로 안 부러워, 형제 없는 애들은 집에서 혼자 놀아야 돼서 심심할 때도 많데"

솔직히 부럽다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바로 담백하게 대답해주었다. 다행이었다. 만족은 절대적인 방법론 같은 것으로 쟁취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 자신과 나의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에 달려있다. 너무나 고맙게도 딸아이는 세 남매 중 첫째라는 지금 자신의 상황과 위치의 긍정적인 면을 볼 수 있을 만큼 어느덧 커 있는 것 같아서 기특했다.


아이가 혼자면 부모의 집중된 관심을 더 온전히 받을 수 있는 건 사실이다. 관심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아이들이 부모에게 섭섭하다거나 소외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아이가 셋이 되면서 세 아이 모두에게 관심을 충분히 주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그런데 첫째와 둘째를 보면서 부모의 관심이 미치치 못해 생긴 그 공간에 형제들 간의 관계가 예쁘게 자리 잡고 싹트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 크기가 엄마 아빠가 채워줄 수 있는 것보다 클 수도 있고, 부모 자식 간에서는 만들 수 없는 다른 형태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 막둥이가 자라면서 또 다른 관계가 이들 사이에 자라날 텐데, 아름답게 꽃 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세 아이가 커서 서로에게 힘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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