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윈도 남편 (by 코로나)
[아빠의 사색] 코로나 격리 2일 차에 든 생각
결국 우리 집에도 코로나가 침투하고야 말았다. 현재로서 PCR 검사 결과까지 확진을 받은 것은 나 하나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 봤자 그 정도일 뿐이지 하나도 다행은 아니다. 생각 이상으로.
워낙 확진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고 있으니 피해 가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해서 걸리더라도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컸으나, 지금은 안 걸렸으면 좋았겠다는 마음이 더 크다. 예상치 못한 심리적 부담이 생겨 버렸다. 애가 셋이나 있는 집이라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 아내에게 진정한 독박 육아를 선물하고야 말았다. 같은 공간에만 있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구색 맞추기용 아빠가 된 듯하다.
그잖아도 챙겨야 할 아이가 셋인데 나까지 챙겨야 하는 꽤나 번거로운 상황을 맞이해 버렸다. 아이 셋을 둘이 감당했다면 (평일에는 기껏해야 퇴근 후에나 내가 도울 수 있긴 했지만) 이제는 혼자서 넷을 본다. 내가 완전 반대 입장으로 돌아 선 것이다. 아이들과의 차이라고 하면 나는 아내에게 놀아달라고 조르지 않은 것 정도?
사람이 연명을 하기 위해서는 숨만 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물론, 재택근무 중이라 연명만 하고 있는 건 아니다) 물도 마셔야 하고 밥도 먹어야 한다. 밥을 먹으면 또 치워야 한다. 씻으면 빨래가 나오고 씻고 나면 또 옷을 입어야 한다. 이렇게 일상적인 행동 패턴을 쪼개 보면 생각보다 엄청 많은 수고가 들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모든 행동 하나하나를 다 아내에게 의존하고 있다. 필요한 것을 말하면 아내는 배달부들을 통해 보낸다. 배달부 역할은 첫째나 둘째가 담당하는데, 아직은 이런 상황이 조금 재밌는 모양이다. 아이들의 장점이다. 밥을 문 앞에 놔주고 저만치 가서 내가 문 열기를 기다렸다가 인사를 건네는 모습을 보고 나는 힐링이 된다.
쇼윈도 속에 갇혀 있는 기분이다. 같은 공간에서 있지만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기분은 참 기묘하다. 기묘하게 기분이 좋지 않다. 차라리 공간이 완전 분리되면 이런 느낌이 아닐 것 같은데, 난감하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기도 하다. 밖에서 아기가 우는 소리가 들려도 안아 주러 갈 수 도 없다. 나 때문에 지금 이틀간 아이들도 집콕 중이라 오히려 심심할 텐데 놀아줄 수도 없다. 우리 집 식사 당번은 나인데 주는 밥을 받아먹는 게 몸은 좀 편한데, 마음은 영 찝찝하다. 저녁에 내가 집에 있으면 막둥이 목욕을 시키는데, 아내가 그 목욕과 위에 두 아이 잘 준비까지 다 해주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냥 7일의 격리기간이 빨리 지나가길 기다리는 수 밖에는 없는 듯하다. 답답하지만 진짜 대안은 없는 듯하다. 가족들 속에 앉아서 같이 시덥지 않은 얘기도 하고, 군것질도 하고, 같이 침대에 드러누워서 살을 슥슥 맞댈 수 있던 시간이 벌써 그립다. 20대 중반에 결혼해서 혼자 지내본 지가 10년이 넘은 것 같은데, 자연스레 가족들이 나를 소중히 품어주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