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닮은 너. 점점 달라져 가겠지?
[10살 딸] 3학년 새 반이 기대된다는 딸
3월 초에는 왠지 모를 설렘이 있다. 이미 학교라는 곳을 졸업한 지가 십몇 년이 흘렀지만, 3월에 새 학년을 맞이하던 기분이 내 무의식 속에 새겨져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 딸이 3학년으로 처음 학교에 가는 날이 되었다. 코로나 초창기에 입학을 해서 학교에 적응을 못해서 (이때 꽤 많은 애들이 그랬었다) 울며불며 학교 안 가면 안 되냐고 하던 시절은 이제 과거가 되었다. 이제 저학년 중 가장 언니반이다.
어릴 적 나에게는 새 학년으로 진급하는 것은 일종의 넘어야 할 산이었다. 낯을 워낙 가려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어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보통 새 학년에 올라가면 전 학년에서 같은 반에 있던 친구랑 붙어있다가 그 친구가 친구를 사귀면 나도 자연스레 함께하는 그런 방식으로 친구관계를 확장해왔다. 낯을 가릴 뿐 본성이 아주 조용하거나 얌전하진 않아서 시간이 지나 적응을 하면 언제 낯을 가렸냐는 듯 편하게 지낸다.
방학을 끝내고 학교에 가는 딸의 기분이 영 좋지 않을 것 같았다. 하루 종일 내 맘대로 놀던 생활을 접고 다시 시스템화 된 교육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영 갑갑할 것 같았다.
그리고 나를 닮았으면 아마도 이 아이 또한 적응에 대한 심리적 불안감을 갖고 있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실제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도 항상 적응이 조금 늦은 편이었다. 그래도 나처럼 결국에는 잘 적응하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삼일절 밤, 잠들기 전 딸이 말을 걸었다.
"아빠 내일 회사 가지?"
"응, 오늘처럼 안 가고 싶다~ 너도 내일 학교 가잖아."
"응"
"가기 싫지?"
"아니, 나는 가는 거 좋아. 누구랑 같은 반 됐을지 궁금해."
내 예상을 벗어난 대답이었다. 가고 싶지 않다고 하면 아빠가 용기를 주는 따뜻한 말 한마디 해줘야지, 마음속으로 장전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가고 싶단다. 물론 아빠에게는 더 안심이 되는 대답이다.
우리 딸은 엄마와 아빠를 정말 분명하게 섞어놓은 생명체라고 생각했다. 성격은 아빠와 똑같고, 외형은 엄마를 똑 닮았다. 그래서 때로는 아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 딸의 행동을 내가 대변해주곤 했었다.
그런데 딸아이가 친구를 대하는 태도를 잘 생각해보니 이 부분은 나랑 확실히 다른 것 같다. 나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편이긴 한데, 혼자 있는 것에 더 특화된 사람이다. 모임이 있으면 참여도 잘하는 편이고, 친구들을 보는 게 반갑긴 한데, 평소에 내가 나서서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에 비하면 딸은 확실히 친구 관계 중심이다. 학원을 가는 것도 피아노나 태권도를 배우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거기서 친구들을 만나서 노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 이 아이도 엄청 외향적인 성향은 아니지만 어린 나에 비하면 처음 만난 친구들이랑 어울려 놀기도 한다.
딸은 나와 기질은 확실히 비슷한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자라 가면서 나와 다른 점들도 계속 발견되고, 자라온 환경에 따라 점점 더 나와 다른 모습으로 성장할 것 같다. 어떤 모습이라도 우리 딸 다운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는 아빠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