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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행 꽃결쪽 교향악_리뷰

클래식도 축제하느라 바쁨 : 2025 교향악 축제 수원시립교향악단

by 유진

들어가며

꽃결이 공기 속을 스치고,

바람음이 그 결을 따라 흘러가며,

결국 교향악으로 피어난다.




언제 3월이 지나갔냐 했는데, 또 4월이 와버렸다.

요즘은 하루하루마다 날씨가 변화무쌍한데 벚꽃은 또 때가 되니 만개하기 시작한다. 벚꽃 축제가 시작되고 있다. 나름 따듯한 날에 피어나는 것들이 퍽 아름답다. 나는 꽃보단 나뭇잎의 푸른빛이 바람결에 흩날리는 모습을 좋아하지만 연분홍의 꽃잎이 흩날리는 모습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벚꽃이 봉우리에서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할 때쯤, 벚꽃 축제와 함께 자태를 드러낸 것이 있다. 바로 2025 교향악 축제다. (클래식도 봄에 축제합니다 알아주세요)

예술의 전당 교향악축제4월 한 달 동안 거의 매일 다른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볼 수 있는 전 세계 유일무이의 교향악 클래식 축제다. 유명 지휘자와 연주자들의 무대를 기존 공연보다 적정선의 가격으로 (1층이 오만 원이면 나쁘지 않은 가격이다)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고, 클래식을 잘 몰라도 그냥 앉아서 듣다 보면 마음이 편해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을 마주할 수 있다. (공연 전에 관련 곡 설명도 해준다. 어떻게 알았냐고? 가서 알았다.) 입문자에겐 다양한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경험해 볼 수 있고,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평소 보기 힘든 곡들과 연주자들을 만날 수 있어 무척이나 좋은 기회다. 오전과 낮에 벚꽃 구경 실컷 하고, 평일에는 벚꽃길을 걷다가 저녁에는 예술의 전당에서 딱 클래식 공연으로 하루를 끝내면!! 이보다 완벽한 마무리가 있을까?

사실 나도 교향악과는 아직 친하지 않아서 (주로 협주곡이나 독주곡, 소나타를 많이 들었다)이 축제에 살짝은 관심이 있지만 어떤 곡을 들어야 할지 몰라서 예매를 하진 않았었는데, 좋은 기회로 4월 4일의 수원시립교향악단의 공연에 다녀왔다. 다녀왔으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담아있는 걸 뱉어내야지! (타닥타닥)


어제는 운이 좋은 하루였다. 아침에 늦장을 부리다가 후레벌떡 지하철에 몸을 실었는데, 내 앞에 딱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 그리고 공연장 갈 때도 거의 앉아서 갔다. (!!!) 자꾸 내 앞에 여성 분들이 다음 역에서 내려주셨다. (감사합니다..) 시작부터 뭔가 이상하게 잘 풀리는 날이었다.


오늘은 예술의 전당 1층에서 처음 관람을 해봤는데, 오른쪽 사이드여도 오케스트라가 한눈에 보이고, 높은 층고의 천장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바이올린 악장의 움직임을 정면으로 마주 볼 수 있어서 무척이나 기뻤다.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은 정말 딱 클래식 축제에 맞는 공연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천장이 드높고 소리를 풍성하게 3층까지 울려 퍼진다. 벚꽃이 만개하고 있는 이 계절에 클래식과 조금이라도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소리'를 만나보는 경험을 해봤으면 좋겠다.


설명

다른 공연과 달리 시작 전에 사회자와 협연자, 악장이 무대 위에서 곡의 전반적인 설명을 진행해 주었다. 이 부분이 교향악 축제의 묘미인 것 같다. 공연 전에 사회자가 협연자와 함께 설명해 주는 경우는 흔치 않다. 관객이 공연과 더 가까워지도록 소개자 역할을 충실히 하는 느낌이었다. 밖에서는 그 설명 장면을 실시간으로 중계 화면을 통해 송출하고 있었는데, 신기한 시스템이었다. 나는 그 설명을 직접 듣지는 못했다.


나는 밖에서 송출되는 화면을 살짝 구경했다 크크

협연자 _ 차오원 뤄

브람스 - 바이올린 협주곡


반가움
예전에 윤이상 콩쿠르 갈라에서 오늘의 협연자인 차오원 뤄의 브람스 협주곡을 들은 적이 있어 익숙하기도 했고 더 반갑기도 했다. (클래식 전의 취미가 중국어 였어서 약간 더 반가웠다) 다만, 연주 자체는 오히려 갈라쇼 때가 더 신선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때는 내가 브람스를 잘 모를 때였기 때문에 더 새롭게 다가왔던 듯하다.


거리감
바이올린의 그 특유의 큰 소리가 내 자리까지 올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오늘은 내 쪽까지는 잘 안 온 느낌이라 살짝 아쉬웠다. 사실 내 주변에 협연곡의 조용한 순간에 기침하거나 핸드폰을 하는 사람이 있어서 몰입이 깊이 되진 않았다. 고대 작품 속에 몰입하고 있는데 갑자기 카메라가 튀어나오는 느낌이라고 할까?


색채

그럼에도 바이올린이 주인공이니 그 흐름을 따라가려 애썼다. 연주자가 이 곡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인상은 분명했다. 브람스 협주곡 자체가 난도가 높은 곡인데, 그 어려움을 드러내지 않고 충실하게 곡을 이끌어가는 솔리스트라는 느낌이었다. 연주자의 소리는 다홍빛 같았다. 짙고 너무 따뜻하지 않고, 차갑지도 않았다. 단풍빛의 소리였다. 모서리도 둥글게 다가와 모나지 않아 좋았다. 다만 나는 워낙 날카롭고 즉흥성이 강한 소리를 좋아하는 편이라 오늘의 연주는 내 취향과는 조금 달랐으나 또 새로운 느낌이라 좋았다. 오보에와 바이올린이 함께 소리를 나누는 순간에는 둘이 나란히 천천히 걷는 느낌이었다. 뒷짐을 지고, 같은 속도와 방향으로 걸어가는 듯했다. 과장되지 않고, 잔잔하며 다정한 인상이었다.


속도
3악장은 원래 굉장히 빠르고 스피드감 있는 악장으로 기억했는데, 다양한 작곡가의 음악을 듣고 특히 바르톡의 바이올린 소나타 3악장 같은 걸 경험하고 나니 오히려 브람스의 3악장이 여유 있게 느껴졌다. 그 점이 흥미로웠다. 내가 형식적으로 느끼다니. 이제 하이라이 트니까 하이라이트를 연주하는 듯한 흐름이었다. 아마 내가 너무 대가들의 연주를 많이 들어온 탓도 있을 것이다. 크리스티안 테츨라프나 레오니드 코간의 연주를 듣고 나니 상대적으로 소리의 다가옴이 덜 가까이 느껴졌던 것 같다. 테츨라프가 연주하는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3악장의 일부분을 소개한다!


Brahms: Violin Concerto _ Tetzlaff · Rattle · Berliner Philharmoniker

브람스 - 교향곡 4번

바쁘신 분들은 3악장 부터 들어보세요 확 신나요!

물감

나는 회색빛 바탕을 깔아놓은 상태로 준비하고 있었는데, 물감이 확 끼얹어져 당황했지만 좋았다. 그런 중년 말년의 황혼기를 내가 어디서 겪어 봤겠나.곡 번호를 잘못 알고 간 게 아닌가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물론 이 혼란은 긍정을 뜻한다. 그저 뭐라 표현이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운 소리가 갑작스레 들이닥쳐 말문이 막혔을 뿐이다.


형태
2악장도 인상 깊었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같았다. 아까 말했던 코랄빛 물감의 행렬에 금빛이 쏟아지는 듯했다. 하나의 슬라임처럼 울리면서 마음인지 심장인지 알 수 없는 곳을 꾹꾹 눌렀다. 소리가 정말 슬라임처럼 커져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건드리는 듯했다. 진짜 소리에도 형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내 연령대에서 겪을 수 없는 중황혼기의 소리가 들려와서 너무 신기했다.


일체감

3악장은 환기보다는 앞 흐름에 이어지는 밝기였다. 빛세기를 조금 더한 정도의 밝음. 활의 일체감이 특히 좋았다. 교향곡이니 단원의 수가 많고, 그들이 최희준 지휘자의 인도에 따라 같은 방향으로 활을 그어내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악장이 충분히 몸을 움직이며 연주를 이끌어가는 모습이 정면으로 보여 더 좋았다. 지휘자가 작은 소용돌이를 그리면 소리와 사람이 작아졌고, 아래로 큰 원을 그리면 흐름에 따라 밀도가 강해졌다. ‘밀도’라는 단어를 떠올리니, 교향곡은 확실히 그 밀도가 두껍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소리가 슬라임처럼 무겁게 다가왔던 것 같다.


불꽃
오늘의 브람스에는 체념과 절제는 없었다. 4악장은 이 곡의 마지막 악장이자, 브람스 교향곡 인생의 마지막 악장이기도 하다. 이건 불꽃이었다. 스파크처럼 튀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떠 있는 하나의 불. 브람스는 현대음악처럼 갑자기 튀거나 급작스럽게 꺼지지 않는다. 규칙 속에서 형태를 유지하며 충실하게 울림을 만든다. 그는 그 안에서 끝까지 헤엄쳤다. 울렁이는 슬라임 같은 소리가 울컥 다가왔다가, 사라지지 않고 스며든 파도 같은 음이었다. 황혼의 끝은 없다는 걸 암시하는 강렬한 의지와 마음이 느껴졌다. 수원시립교향악단의 브람스 교향곡 4번은 하나의 의지였고, 끝없는 오렌지빛의 갈래였다.

수원시립교향악단의 코랄빛 브람스는 너무 좋았다..
클래식은 사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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