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이는 비 사이엔 포레포레모랭~
비가 온다. 그곳도 비가 오나요?
바쁘고 날 좋았던 한 주가 지나니, 빗방울이 토요일을 적신다. 어제만 해도 종종종 2만보를 걸었기 때문에 이런 우중충함이 오늘은 오히려 반갑다. 다만, 애써 피워낸 벚꽃이 비에 젖어 떨어질 생각을 하면 약간 아쉽긴 하다. 사실 나는 벚꽃보다 푸른 잎사귀가 바람결에 춤추며 쏴— 하는 소리를 듣는 걸 더 좋아한다. 그래도 분홍빛이 아쉽게 흩날리는 걸 보면 조금은 안타깝다. 하지만, 자연의 순리를 어찌하겠는가. 이것 또한 봄의 흐름이겠다. 지난주와 이번 주는 정말 많은 공연을 보았다. 한 주에 세 번, 총 여 섯개의 다른 공연. 그 길고 많은 곡들이 머릿속에 어떻게 다 담겼겠냐만은, 다 내게 한 줄 이상의 마음으로 남았다. 마냥 흩어지게 두기엔 아쉬워서 하루하루 일기 쓰듯 공연 후기를 정리했다. 그 덕에 난 그날의 기억을 며칠 더 붙잡을 수 있다.
오늘은 일부러 조금 더 누워 있었다. 생체시계란 게 무섭다. 주말인데도 6시 30분이면 눈이 번쩍 뜨인다. 피곤한데도 어딘가 선명한 기운이 나를 깨운다. 그럼에도쌓인 피로 탓에 다리는 무겁고 몸은 늘어졌다. 몇 번이나 핸드폰을 들었다 놓은 끝에, 8시가 넘어서야 겨우 정신이 들었다. 그런 날이었다. 일부러 느림보처럼 일어났고 조금 더 맛있는 것을 먹었다. 맛있는 건 별거 없다. 주말엔 라면이지 뭐. 어제 먹고 싶었지만 시간이 늦어 포기했던 라면을 오늘에서야 끓여 먹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하콘(The House Concert)을 다시 봤다. 참 좋았다. 아주 일부분을 들려드리자면 이렇다.
사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연주 영상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좋은 소리를 기록하고 공유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과거의 내가 만든 일정들 덕분에, 공연이 몰아치듯 이어졌고 마냥 계획이 미뤄졌다. 또 하루하루 쓰고 싶은 이야기들이 새로 생기기도 했고. 나도 은근히 제멋대로인 구석이 있다. 하지만 그것도 나름의 재미가 아닐까?
이번 2주 동안, 클래식 부트캠프 같았던 일정 덕분에 배운 것도 많고, 새로 알게 된 곡도 많아졌다. 이게 여행이지 뭐야. 그래도 언젠가는 독일에 가보고 싶다. 최근 서울시향에서 롱 유 지휘자와 닝 펑 바이올리니스트의 무대를 본 후, 왜 많은 음악 전공생들이 세계 각지로 유학을 떠나는지 알 것 같았다. 이런 소리를 내는 사람들도 있구나. 직접 경험할수록 더 많이 배울 수밖에 없겠구나. 잘은 몰라도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영어 공부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 (중국어도 멀었지만, 이상하게 영어는 더 어렵게만 느껴진다. 괜히 두 발자국쯤 떨어져 서있는 기분이다. 파파고야 힘내줘.)
비가 아직도 내리는 것 같다. 창밖에 손을 내밀어 보진 않았지만, 키보드를 두드리는 사이 미묘하게 습기가 느껴지고 조용한걸 보니 그런 것 같다. 지금은 애플 뮤직에서 닝 펑 바이올리니스트의 앨범을 듣고 있다. 원래는 익숙한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를 듣다가, 중간에 수록된 곡 하나에 눈이 멈췄다.
이 노래였구나. 듣자마자 어디선가 들어본 곡조가 흘러나온다. 어떤 곡이지? 중국어로 쓰여있으니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그대로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포레(faure)의 「Après un rêve」(꿈 이후에)라는 곡이다. 이 곡의 배경을 검색해 본다. (애플뮤직 쓰시는 분은 닝펑 바이올리니스트 버전으로! 미리듣기도 가넝)
가브리엘 포레(Gabriel Fauré, 1845–1924)는 19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곡가다. 그의 음악은 조용하고 절제되어 있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아주 깊다.「Après un rêve」는 포레의 가곡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우리말로는 ‘꿈 이후에’라는 제목으로 번역되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한 꿈에서 깨어난 뒤의 그리움과 허무함을 그린 곡이다 부드러운 선율과 절제된 감정이 특징이며, 원래는 성악곡이었으나 현재는 바이올린이나 첼로로도 자주 연주된다. 듣고 있으면 꿈과 현실의 경계에 서 있는 듯한, 어딘가 모르게 흐릿하고 아련한 감정에 잠기게 된다. 비 오는 날이나 조용한 오후, 이 곡은 잠시 멈춘 시간처럼 마음속에 머문다.
날씨에 따라 플레이리스트가 달라지듯, 오늘은 이 곡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조용했던 하루였다면 단번에이 말이 전해졌을 테고, 복잡한 생각이 가득한 날이었다면 이 곡이 조용히 토요일을 덮어주었을 것이다. 시작이 조금 얇고 길게 시작되는 버전으로 골랐다. 첫 음이 두껍게 울리는 연주는 내게는 약간 아쉬웠다. 포근히 떠오르기보단 조용히 내려앉고 싶을 때는 첼로가 도와줄 수 있겠다.
빗틈 사이의 가로 속을 이런 음악으로 메꿔보는 것도 가끔은 괜찮다. 메꿔지니 이런 곡도 들리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