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잠깐 그친 사이에는 브람스를 논해보자
좋은 아침! 잠시 비가 멈춘 사이 남겨둔 전언입니다.
여느 때처럼 6시 30분에 눈을 떴는데, 어제는 그게 좀 별로였지만 오늘은—내일이 평일이라 그런지—꽤 괜찮다. 이른 아침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는 무엇일까? 아직도 이르다는 사실이 나를 기쁘게 한다. 부질없는 웹서핑을 해도 아직 8시가 아니다. 잠깐 눈을 붙여도 7시 언저리다. 음, 기분 좋은 시작이다. 어젯밤에 살짝 간식이 궁금했지만참아낸 덕에 가질 수 있는 허기짐도 좋다. 약간의 인내로 얻어낸 문장들이 켜켜이 쌓인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어젯밤엔 바르톡의 바이올린 무반주 소나타를 듣다가 잠에 들었다. 아침형 사람들은 어떻게 일찍 잠이 드는 건지 늘 궁금했는데, 이제야 비법을 알았다. 일찍 일어난 날, 약간 부른 배로 밤 10시부터 누워 있으면 자연히 잠이 스며들어온다. 귓속말을건네듯이 스멀스멀 졸림을 가지고 오는데, 그게 웃음이났다. 일찍 자면 일찍 일어난다는 확신이 생기니 잠도 빨리 왔다. 요 근래 날씨가 춥지도 덥지도 않게 되면서 아침 공기가 더 좋아졌다. 바람이 시원하고, 살짝 언덕을 오를 때 느껴지는 미묘한 숨참도 개운하다. 일주일 내내 밖에 있었으니 엄마랑 아침 산책도 다녀왔다. 함께 발을 맞춰 걷는 것만으로도 기뻐하시지 않던가. 그렇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기 전에 오늘은 갑자기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이 생각났다. 이 곡은 별건 아니고, 그냥 어제보단 맑은 하늘이 아니던가? (잠시) 그 정취를 감싸주는 느낌의 소리들이 가득하다.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1번 G장조, 작품번호 78은 ‘비의 노래(Regensonate)’라는 별명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그 이유는 브람스가 과거에 쓴 가곡 <비의 노래>의 선율을 이 곡 안에 인용했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따뜻하고 서정적인 분위기지만, 그 안에는 고요한 그리움과 쓸쓸함이 깊게 스며 있다. 1악장은 비 오는 날 창밖을 바라보는 듯 잔잔하게 시작하며, 바이올린이 마치 노래하듯 흐른다. 2악장은 가장 내밀한 감정을 담은 듯 조용하고 깊은 기도 같은 악장이고, 마지막 3악장은 다시 1악장의 주제를 회상하듯 불러오며 조용히 마무리된다.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감정선이 이 소나타의 핵심인데, 그래서 듣는 사람의 마음에 조용히 스며들며 오래 머무른다. 브람스가 나이 들며 정리된 마음으로 쓴 작품답게 어떤 슬픔이나 상실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그 이면의 고요한 무게와 위로가 다정하게 감돈다.
비의 노래구나. 방금 처음 알았다.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이 듣기 좋은 곡이라는 건 알았어도, 그 제목이 비를 주제로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이렇게 한 발자국씩 알아가는 느낌은 늘 즐겁다. 1악장부터 듣기 좋은 소리로 시작된다. 마치 쇼팽 녹턴의 도입부를 듣는 것 같다. 바이올린의 소리가 문을 살짝 열어주는 기분이 들 것이다. 그 소리를 따라서 책상에 엎드려도 좋고, 벽에 머리를 기대도 좋을 것 같다. 난 누워 있다가 책상 위 키보드를 타닥이며 클라라 주미 강 씨를 힐끗힐끗 보며 입꼬리를 올리고 있다. 왜냐면 아직도 11시 17분이라서~! 계란도 먹고, 아이스크림도 먹고(요맘때 허니맛 추천), 빈둥거렸는데도 아직 정오가 아니다. 곧 있으면 느끼지 못할 맑은 기쁨이니까 지금 좀 간직하고 있겠다.
시간이 없다면 28분 1초는 어떨까? 3악장의 끝자락이다. 짧은 흐름 후에 공연이 끝이 나는 부분. 그냥 그 곳이 내가 바이올린을 좋아하는 소리 표현을 압축적으로 잘 보여주는 것 같아서 말을 남겨본다. 누군가에게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1번 3악장은 안정이 필요할 때 찾는 곡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나는 3악장도 좋지만 1악장도 퍽 괜찮은 것 같다. 7분 58초도 좋다. 차분히 내가 발을 맞춰서 걸을 수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오늘의 시작은 1과 1이다. 9분 13초도 추천하겠다. 특별한 소리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