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똑같은 것만 듣는다구요? 정답
아, 나는 누군가의 선택을 좋아하는구나! 오늘 유심(usim..)을 바꾸고, 그늘 하나 없는 눈부신 블록 위를 걸으며 든 생각이다. 어쩌다 이런 문장이 떠올랐을까? (당연히 나는 오늘도 클래식을 들었다) 내게는 작은 규칙이 하나 있다. 날이 좋거나, 기분이 신나거나, 어딜 놀러갈 땐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64를 들어야 한다. 연주는 다들 아는 임동민 바이올리니스트 버전이어야 한다. (유튜브에 있는 그 영상!) 이 녹화 영상은 다 좋은데, 딱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 정말 고요해야 할 순간에 기침이 연타로 몰아친다. (흑흑) 물론 사람의 기침은 어쩔 수 없는 거지만, 클래식에서 2악장은 사람의 침묵과 고요함이 배경음을 깔아주고, 그 위로 악기들과 솔로 주자가 천천히 그리고 다정하게 날아오르는 곡이 많다. 멘델스존도 그러한데, 딱 시작하자마자 콜록콜록... 그래서 가끔은 2악장 끝부분부터 들을 때도 있다. 하지만 오늘은 그냥 신경 쓰지 않기로 마음을 굳게 먹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시작은 좀 어려웠지만 듣다 보면 잦아든다. 그 음과 함께 걸음을 착착 옮기다 보면 잡념은 사라지고, 나는 솔로 주자의 긴 선의 소리에 집중하게 된다.
날숨과 떨림
정말 이 버전이 왜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일단 흐름 자체가 엄청 신중하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소리니까 연주자가 이에 취해 더 날아오를 수도 있고, 조금 더 빠르게 달릴 수도 있고, 고저를 확실하게 쓸 수도 있었을 텐데, 오히려 짚어가는, 천천히 눈을 깜빡이며, 차분하게 또 덤덤히 나아가는, 이 정도가 마음에 든다. 음이 공기 중에 피어나 사라지는 순간순간들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거기다 여생이 평화로웠던 멘델스존은 정말 기가 막힌 멜로디를 써냈다. 이런 곡엔 가사를 붙인다면, 어떤 글자를 남겨야 할까? 정말 어렵다. 아, 클래식은 가사가 아니겠다. 한 편의 소설로 논해야 겠다. 3분 분량의 가사로는 이 세계를 담기엔 너무 크고 아득하다.
아무튼, 나는 아직 2악장의 품 안에 놓여 있다. 활이 바이올린을 타고, 딱 중앙의 적당한 속도의 흐름을 따라 위아래로 오르내린다. 현을 짚고 있는 왼손은 때때로 흔들린다. 이런 흔들림 자체가 연주자의 선택에서 탄생한다는 걸 얼마 전 알게 되었다. 나는 원래 악보에 이런 표현까지 모두 정확히 지시돼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왼손의 비브라토—즉, 바이올린 연주할 때 현을 미세하게 흔들어 음을 떨리게 만드는 주법—는 연주자의 해석에 따라 전혀 다르게 쓰인다는 걸 알았을 때 정말 깜짝 놀랐다. 이 포인트에서 개성이 생기고, 해석이 존재하는구나!
약지손,약지손
스스로 이걸 깨달았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소리가 담긴 영상들을 모아보니, 그 시작점이 약지 손가락이 짚는 비브라토에서 나타났다. (!!!) 너무 신기했고 또 그때 알았다. 내가 좋아한 것은 클래식이라는 장르 자체보다, 누군가의 해석, 누군가의 선택이라는 걸.
연주자들은 악보를 통해 연주한다. 악보는 보기에도 엄청 복잡하고, 난해하고, 음악을 공부하지 않은 일반인에겐 꽤 먼 존재다. (바이엘은 괜찮을지도) 연주자들은 손에 악기를 들거나 얹어서, 음표를 직접 그려내고 두드린다. 반응은 즉각적이다. 그 즉흥 속에서 자신이 생각한, 사회가 바라는 ‘완벽’한 소리에 닿기 위해 연습과 실험을 거듭한다.
보이지 않는 결
그 과정을 살아낸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나는 실생활에서 추상적인 것을 뽑아내는 감각은 그림이나 글, 상상으로만 해봤지, 실제로 내 표현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진지하게 실연한 경험은 손에 꼽는다. (피아노를 배운 적은 있지만, 칠 순 있지만, 사실상 까먹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내가 닿지 못할 영역의 소리라는 걸 아니까 더 신기하게 느껴진다. 사근사근 펼쳐지는 은가루를 흩뜨리며 흐르는 금빛의 선이 푸르름을 띈 소리로 전진하다가도, 소프라노처럼 끊기지 않고 날아 올라가 버린다. 그리고 첼로의 품안에 파고들듯 훅 내려올 때도 있다. 이런 흥미로운 흐름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 클래식은 질릴 수 없는 장르다.
파동 안에서 나란히
한 곡 안에서, 그것도 한 악장 안에서 같은 멜로디가 몇 번이나 변주되기도 하고, 연주자가 같은 부분을 매번 똑같이 연주하지도 않는다. 그 지점을 귀 기울여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이곳저곳 기웃거리게 된다. 롯데콘서트홀이라든가, 예술의전당이라든가, 각종 아트센터라든가… 실제로 들으면 꽃처럼 피어나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무 공연에나 가는 건 또 곤란하다. 무조건 경험해보는 것도 좋지만, 연주가 애매하고, 연습한 티가 안나고,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합이 맞지 않으면 관객은 이상하게 집중이 안 되고, 하품이 나오고, “끝나고 뭐 먹지?” 하는 딴생각만 든다.
진짜 좋은 공연은 시선을 확 빼앗아가 버린다. 귀와 눈으로 롤러코스터를 탄다고 상상해보라. 어떻게 하품이 나올 수 있겠는가? 방심하고 있다가 확 치고 들어왔다가, 물밀듯 뒤로 가버리는 게 클래식의 춤사위다. 당신이 어떤 생각을 하든 파도가 되어 우리를 집어삼켜버린다. 나는 이렇게 삼켜졌지 않은가. 매일 만나도 질리지 않는 소리다. 참 재밌다. 이렇게 순수한 기쁨을 알게 해주는 공간 속에 있어 즐겁다. 문득 또 한 문장이 스친다. 지금 생각하건데 좋아함의 형태란 누군가의 선택을 지켜보고, 그 옆에 살짝 서서 발맞춰 걸어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