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넘어서든, 본질에 집중하든

들뜨기엔 아쉽고 몰입하기엔 짧았던

by 유진

기대와 현실이 일치하지 않을 때 우리는 아쉬움을 느끼곤 한다. 아쉬움을 논하기 전에 이 단어와 먼저 통성명을 해야겠다. ‘아쉽다’는 건, 필요할 때 없거나 모자라서 안타깝고 만족스럽지 못한 것을 뜻한다. 나는 무엇이 필요했고, 어떤 것이 부족했나?


필요했던 건 프로 연주자들만이 줄 수 있는 압도적 몰입감, 레퍼토리 선택에 대한 이유 설명과 실제 연주를 통한 증명, 악기 소리의 매력, 특정 환경에서만 줄 수 있는 그 순간만의 분위기와 기쁨 등이었다. 부족했던 건 설명이겠다. 연주가 미흡했다는 뜻이 아니라, 곡이 짧은 토막으로 작곡가별로 나뉘어버리니 온전히 음미하기도 전에 뚝— 끊겨버렸다. 선택된 곡들도 하이라이트라기보다는 시작점에 가까운 분위기여서, '이제 들어볼까?' 하는 순간에 활이 허공 위에 놓여졌다. ‘이게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알기도 전에 공연이 막을 내려버리니 한참 모자라게 느껴졌다.


차라리 어렵더라도 온전한 현악 4중주 곡 하나를 택해 서사로서 전달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이를테면 슈만이나 멘델스존) 유명 작곡가들의 곡을 하나씩 맛보기로 들려주니 오늘 행사의 취지가 다소 가볍게 느껴졌다. (아마 그게 맞긴 하겠지만.) 만약 공간과 연주자를 소개하는 수단으로서의 시간이 목적이었다면 딱 맞았겠지만, 이 콘서트 자체가 하나의 프로그램이었다면 아쉬움이 크다. 더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분들이었고, 현악 4중주의 매력을 알고 있었기에 이런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날씨 좋은 날 가볍게 듣기엔 아까운 연주였다. 더 집중력을 이끌어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생각보다 부족한 에너지감과 준비 시간보다 짧게만 느껴진 흐름이 기억에 남는다.


사실, 내가 너무 무겁게 공연을 바라봤던 태도가 원인일 수도 있다. 뭐든 의미를 찾고, 사람을 관찰하고, 그 소리가 담아내는 공간을 바라보려는 게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매사에 진지할 순 없지 않은가?) 오늘의 공간은 사방에 벽이 없었다. 벽이 없다는 건 소리가 앞으로만 나가지 않고, 양옆과 뒤, 위로 달아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공간에서 청중에게 닿으려면 곡 선택은 훨씬 신중해야 한다. 뮤지컬 배우에게 정확한 딕션과 성량이 필수인 것처럼, 야외 공연의 연주자는 세밀한 감정보다는 명확하고 확실한 인상을 남길 소리가 필요하다.


이 자리에 함께하지 않지만 귀로만 듣는 사람에게도 도달할 수 있는 소리를 내야 한다. 그러나 프로그램은 분산돼 있었고, 울림의 범위도 좁아 미묘하게 집중이 어려웠다. 곡당 시간도 짧아 엥— 하는 순간 공연이 끝나버렸다. 내가 음원을 귀와 마음에 담기 위해 들인 시간에 비해, 눈앞에 펼쳐진 건 찰나였다. 그래서 더 아쉬웠다. (이날은 연주 촬영이 가능해서 짧게 영상으로 남겼는데, 실제보다 영상이 음질이 더 좋고 선명했다. 희한하다...)


연주자와 공연 분위기도 조금 엇갈렸다. 환경 자체는 하나의 페스티벌이었다. 꽃과 귀여운 폰트로 봄의 축제를 강조했고, 날씨도 유난히 좋았다. 산들바람까지 적당히 불어와 누구든 ‘들뜸’이란 단어를 마음에 얹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무대가 서로 기쁨을 나누는 자리일 거라 기대했다. 작품에 깊이 몰입하기보다는 이 계절감을 충실히 담아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분위기는 예상과 달랐다. 어둡고, 진지하고, 내성적인 — 딱 그런 무드였다. (원래 내가 아는 분위기이긴 하지만.)


앵콜에 들어섰을 땐 관객의 시선을 좀 더 사로잡았지만, 흡입력 있는 소리와는 다르게 연주자들은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낫해피…) 이들에게 이런 공연은 그저 해야 할 일 중 하나일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관객이 연주자의 표정까지 본다고 할 수도 있지만, 소리와 어긋나는, 눈에 띄는 이질감은 생각보다 잘 보인다. 문제 될 건 아니지만, 예술의전당이나 롯데콘서트홀이었다면 이 분위기는 오히려 맞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아니었다. 곳곳이 연둣빛, 노란빛 꽃잎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연주자들은 한없이 진지했다. 엄청난 외향성을 바란 건 아니지만, 오늘만큼은 이름에 걸맞은 기쁨을 조금 더 보여줬다면 어땠을까? (내가 바라는 게 많다.)


이래나 저래나, 대중적인 곡이든 아니든 클래식은 관련자가 아니면 진입장벽이 높다. 그렇다고 대중적인 곡 위주로만 다가설 것인가? 그것도 아쉽다. 아직 누군가에게 알려지지 않았으나, 음악인들 혹은 애호가들만 알기엔 아까운 선율들이 많다. 꼭 한 곡을 완곡할 필요는 없다. 특정 부분만이라도 들으며 ‘이런 소리가 있어…?’ ‘이런 흐름도 있을 수 있어…?’ ‘이런 드라마틱함과 고난과 슬픔이 있다고?’ 하는 식으로 직접 경험하고, 스스로 그 감정체를 떠올릴 수 있을 때 진정으로 이 장르의 매력을 느낄 수 있겠다.


깊이 들어갈 거라면 온전히 파고들고, 가볍게 흐를 거라면 최대한 유쾌하게. 난해한 작품일수록 더 설득력 있게 다가가는 방식이 필요하다. 나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이 이 업을 택했다고 믿고, 지금도 그렇게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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