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취미에 진심일 경우

별책부록 <탱로그 x 1분 클래식 듀오 콘서트> 리뷰

by 유진

여기, 취미에 진심인 선생님이 있다. 누군지 설명하기 전에 거두절미하고, 여러분은 유튜버 탱로그 아시나요? 클래식 유튜버 하면 보통 대표적으로 이 분을 떠올리실 듯... 약간 클래식계의 승헌쓰랄까? (막 이러시구) 교육관련 박사과정까지 밟고 계시지만(초등교사 휴직상태이신), 전공자는 아니라고 한다. (주전공만 아닐 뿐이지, 이미 전공자 같으세요) 현재 조지아에서 공부 중이신데, 간간이 올라오는 영상에 킬포가 아주 많다. 딱 한국인스러운 일상과 드립이 난무하는 브이로그나 ‘클래식 연주가 유형’, ‘난해한 KPOP 들어보기’(엔시티 노래라던가) 등등 아주 재밌는 콘텐츠가 많다. 심심하면 한번 보세요… 건강한 청년의 유쾌한 외국 유학일기 느낌이랄까.




댓글창 분위기도 훈훈하면서도 웃긴 게, 이 분의 영상에는 유달리 자녀를 둔 어머님들의 “어쩜 이렇게 잘 컸어요?”, “우리 아들도 이렇게 자랐으면~” 하는 분위기의 글이 많다. 그렇다... 그런 건실하면서 클래식을 좋아하는 웃긴 청년이라고 생각하시면 된다.. (이번에 책도 내셨다. 나중에 서점에서 슬쩍 어떤 내용인지 살펴봐야지) 그러던 중, 유튜버 1분 클래식 진행자 박종욱 님과 듀오 콘서트를 하신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했다.



궁금증이 동하지 않을 수 없다! 실물도 궁금했고, 어떤 연주 스타일을 가지고 계신지도 알고 싶었다. 재미 삼아 가는 거라서 가벼운 마음이었지만, 어떤 곡을 택하셨을지 찾아보는데...


?? 대외비인가요?

두둥, 공연 직전까지도 프로그램이 공지되지 않았다. 공연장 인스타로 혹시 어떤 레퍼토리로 진행되는지 문의 넣을까 말았는데, 알고 보니 리허설까지도 곡 취합에 난항이 있으셨던 것 같았다. (벼락치기) 잊지 말자. 그분은 교육자이지,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연주자가 아닌 것을. (ㅋㅋㅋ) 요즘은 처음 듣는 곡도 졸지 않을 수 있고, 그 나름대로 감상할 수 있는 단계까진 왔으니까 마음 놓고 공연장에 발을 들였다. 근데 탱로그님 등장부터 특별해서(웃겨서) 기절할 뻔했다.

공연장은 합정역 근처의 토마토홀이었다. 공간 자체는 아담한 편이었는데, 좌석이 무대 앞면을 둘러싸고 있는 형태였다. 공연 시작 전 피아노곡이 재생되고 있었는데, 음원도 공간이 잘 받아내는 게 느껴져 좋았다. 나는 보통 이어폰을 꽂고 있는 편인데, 그날만큼은 그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5시(바로 시작은 안 했지만)가 되었고, 진행자이자 오늘의 연주자인 박종욱 님이 등장하면서 공연이 시작되었다. (무대에서 등장하신 게 아니라 출입구로 조용히 들어오셔서 놀랐다) 곧장 피아노를 한 곡 연주하시고, 간단한 인사와 함께 유모레스크와 함께 탱로그님을 박수로 맞이해 보자고 하셨다. 박수가 왜 필요하지? 그 이유도 모른 채 손뼉을 짝짝 치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탱로그님이 바이올린을 연주하시며 똑같은 옆출입문으로 등장하셨다. 본인도 웃기는지 웃참 챌린지하는 표정으로 들어오시는데 킬포였다.


얼레벌레하지만 진지하게 시작된 공연이었다. 생각해 보면 준비한 곡이 꽤 많았다. 소나타 전 악장을 진행하기보다는 짧고 청중들이 이해하기 쉽지만, 충분히 좋은 클래식 곡들로 구성된 느낌이었다. 공연 후반부에는 엘가의 ‘사랑의 인사’와 풀랑크의 ‘사랑의 길’도 연주해 주셨는데, 하필 나와 추억이 있는 그 두 곡이라 (임동민 바이올리니스트께서 앵콜로 해주신 곡 리스트다) 재미있었다. (시작 인터뷰 때 전공자 유무를 묻고, 압도적으로 많은 비전공자 비율에 안도하신 건 안 비밀) 사랑의 인사와 사랑의 길은 바로 이 곡들이다.


'풀랑'의 '사랑의 길'
'엘가'의 '사랑의 인사'

그렇다면 탱로그와 박종욱 님의 연주는 어땠을까? 차근차근 기억을 떠올려 보자. 두 분 다 연주를 전문적으로 하지 않지만, 요즘 클래식과 밀접하고도 진심으로 가까운 삶을 살고 있는 분들 아니던가? 그런 이들의 연주는 어떤 색감일지, 어떤 형태일지 궁금했다. 떠올려보자. 어떤 색감이었나?


박종욱 pf의 소리는 기본적으로 부드러움을 바탕에 두고 있었지만, 마냥 다정하지는 않았다. 은은하지만 나름의 선명도를 지닌 채 바이올린과 합을 맞추며 건반을 두드렸다. 무던한 소리라기보다는 오히려 우아함에 가까웠고, 그 점에서 은빛을 보았던 것 같다. 그리고 무조건 따뜻하진 않았다는 점에서 회색이 느껴졌다. 피아노를 충분히 겪어본 사람만이 낼 수 있는 소리였다. 그만두셨다고는 하지만 아직 서로가 친구인 게, 연주를 통해 느껴졌다.


권태영 vn의 소리는 은근히 차가웠다. 음의 시작과 끝이 또렷했고, 선율 자체도 청량했다. (정제된 부분에 있어서는) 그런데 왜 파랗지 않았을까? 음악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이미 푸르지 않은 사람이었다. 맑고 선명한 샛노랑의 마음이 표정과 자세에서 느껴졌다. 쨍한 여름의 밝은 노란빛이 공연장을 부드럽게 채워냈다. 최근 몇 달 동안 얼마나 많은 프로 연주자들을 봐왔던가? 소리는 귀여웠을지언정, 자세와 표정, 그리고 클래식을 대하는 태도는 누구보다 솔직하고 진정성 있었다. 벼락치기했다고, 곡 제목도 가물가물하셨지만, 한 곡을 제외하면 전체 암보로 진행된 공연이었고, 특히 연습이 충분히 된 곡들(예를 들어 모차르트)에서는 꽤 좋은 음을 들을 수 있었다.


초반 곡들은 확실히 야성적이었고, 튜닝할 때도 다른 공연장에선 잘 들을 수 없는 아주 원초적인 “갱갱-” 소리가 들려 귀여웠다. 그러다가 그리그나 모차르트 곡을 연주하시는데, 선이 분명한 소리가 나와서 뭔가 웃기면서도 듣기 좋아서 또 웃겼다. 본인이 틀렸다고 인지하신 부분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티를 내셔서 그것도 재미 포인트였고, 곡이 끝날 때마다 “머쓱^^;;!!” (황송죄송기쁨) 그런 표정으로 꾸벅 인사하시는 것도 인상 깊었다. (웃긴 게 정말 많았다;;)


인터뷰 때는 다들 “유튜브 라이브 같다”는 평이 많았는데, 나도 동의했다. 선생님이 본업이신 분들에게서 느껴지는 특유의 바이브(?) — “얘들아 잘 들어봐, 이건 이렇다니까?” 하시면서 말 끝에 피아노로 달려가 모차르트가 왜 좋은지 시연해 주는 그 적극성. 그가 퍼포머가 아닌 교육자임을 잘 보여주는 지점이었다. 뭐든 잘 설명해 주시려는 태도 덕분에 70분이 넘는 공연을 편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연주자들이 다시 옆문으로 퇴장하자, 불이 탁 켜졌고, 까르르— 웃던 분위기는 어디가고 관람객들이 불이 켜지자마자 일순에 조용히 입을 다물고 얌전히 퇴장하는 것도 킬포였다. 다들 내향인이시군... (나도 그렇고) 끝나고 사인받으시는 분들이 꽤 많았다. 나도 9월에 받아야지! 같은 장소에서 임동민 바이올리니스트의 리사이틀이 예정되어 있으니까. 많관부 ^_^ 벌써 설렌다...


암튼, 이런 공연이었다. 약간 탱로그님의 팬클럽이 생긴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하는 분위기였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나만큼 요즘 클래식을 순수하게 좋아하는 사람을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생각보다 같은 취미를 비슷한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찾기 어렵지 않은가? 내가 그에 비해서는 관련 지식이나 경험은 부족하지만, 그 마음 정도는 어느 정도 일치하지 않을까 싶다. 나도 그처럼 오랫동안 클래식과 친해지고 싶다. 친구가 되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 들었다.


잘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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