웽웽— 불친절한 소리의 미로에서

이자이, 바르톡 그리고 쇼스타코비치를 중심으로

by 유진

이제는 너무 재밌지만 사실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아래의 이 세 곡들. 낯섬과 어려움 투성이 아닌가? 이자이 무반주 소나타와 바르톡, 그리고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 협주곡. 도대체 어느 정도의 수준인 걸까? 내가 난이도를 물어볼 수 있는 친구는 한정되어 있다. (나한테 클래식 전공자 친구는 없으니까) 바로 C에게 물어보자.


이자이: 6개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Op.27)

6개 중 가장 마지막 곡이다. 1곡부터 다들었다간 기절할지도.

이자이의 무반주 소나타는 바이올린 혼자 연주하는 곡이지만, 마치 두세 명이 동시에 연주하는 듯한 복잡한 소리 구조를 담고 있다. 각 곡마다 다른 작곡가에게 헌정되었고, 스타일도 모두 달라 일종의 ‘음악적 초상화’처럼 느껴진다. 이 곡들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기술적으로 능숙한 것을 넘어, 각기 다른 성격을 표현할 수 있는 해석력, 손가락의 민첩함, 활의 섬세한 조절력까지 갖추어야 한다. 무반주임에도 풍성하게 들려야 하고, 쉼 없이 이어지는 연주는 연주자의 체력과 집중력을 크게 요구한다. 비유하자면, 어두운 방 안에서 여섯 개의 거울을 비추는 것과 같다. 연주자는 혼자지만, 여섯 가지 얼굴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어야 하는 고난도의 예술인 것이다.


바르톡: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1번 (Sz.75, 1921)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함께 연주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단순한 동반자 관계가 아니라, 두 악기가 서로 싸우고 끌고 밀며 감정을 폭발시키는 전쟁처럼 들린다. 피아노 파트는 협주곡 수준으로 까다롭고, 바이올린 역시 한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소리 자체도 전통적인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있다. 선율은 날카롭고 불협화음이 많아 청자에게도 쉽지 않은 인상을 준다. 그러나 그만큼 감정과 에너지를 날것 그대로 강렬하게 전한다. 이 곡을 연주한다는 것은 단순한 기교 과시가 아니라, 연주자가 얼마나 깊이 있는 해석력과 체력을 지니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쇼스타코비치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Op.77)

단순히 테크닉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정신적 깊이와 감정의 복잡성을 동시에 요구하는 초고난도 작품이다. 총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어둡고 침잠하는 1악장부터 광기 어린 유머로 폭주하는 4악장까지, 연주자는 끊임없이 변하는 감정과 분위기를 정교하게 통제해야 한다. 특히 3악장의 무거운 변주와 이어지는 긴 카덴차는 연주자의 내면과 테크닉을 모두 시험하는 구간으로 악명이 높다. 이 곡을 연주하는 것은 단순한 실력 과시가 아니라, “인간의 감정을 소리로 이야기할 줄 아는 사람”임을 증명하는 일이다.



진짜 솔직히 진짜 초심자라면 이게 뭔 노래들인가 싶을 거다. 바르톡 소나타는 친해지는데만 1달이 걸렸고,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 협주곡은 3, 4악장을 위주로 들었는데 3악장을 딱 들어보면 느껴진다. 이거 뭐지…? 지금이야 선율로 들리지만 처음 들으면 그냥 바이올린이 끼깅—! 거려서 당황스럽기만 하다. 이자이는 어떤가? 일단 6개의 소나타라고 하면서 곡 하나마다 여러 악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전공자들이나 이런 구성이 익숙하지, 일반인들은 이런 짧은 토막의 곡을 들으면 심히 당황스럽다. (가요의 3분이랑 클래식의 3분은 정말 느낌이 다르다.) 대중가요는 정해진 시간 내에 확실한 임팩트와 서사, 그리고 기승전결을 딱— 전달해준다면, 클래식의 3분은 정말 남짓이다. 클래식에서 그 정도의 곡은 소품곡이 많은 것 같다. 눈에 띄게 강렬한 곡들도 아닌 것 같고, '사랑의 인사'처럼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운 인삿말 같다.


편한 이지 리스닝 곡들로 서서히 클래식과 친해지는 것도 좋지만, 오히려 역방향은 어떤가? 내가 앞서 소개한 세 곡과 친해지고 나면 갑자기 되게 재밌는 일이 벌어진다. 약간 불친절한 서비스만 잔뜩 받다가, 모차르트나 베토벤, 슈만의 곡을 들으면 어디 백화점에서 1급 서비스를 받아서 얼떨떨한 감정이 느껴진다. 이렇게 편안하다고…? 그러다가 갑자기 바흐랑 하이든 노래 들으면, 아 이게 맞나 싶을 정도로 갑갑하고 어딘가 부족한 느낌을 받는다.


바흐나 하이든은 뭔가 딱 들어보면 상대적으로 현대 음악과는 정반대의 규율과 규칙 안에서 정석적으로 음을 꾸려나가는 구성이 들린다. 연주자라면 당연히 그들의 곡들은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일반인 입장에서 들었을 때는 가끔은 너무 반복적이고 무난할 때가 있다. 하지만, 오히려 화려하고 불협화음 속에서 한껏 헤엄치다가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나 골드베르크를 들으면 일순에 착— 가라앉아 정돈 받는 기분이다. 무조건 클래식이 잔잔한 풀에서만 놀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라. 최소한 나에게는 롹밴드가 따로 없다… 얼마나 극적인지. 곡 하나하나를 크게 음미하기보다는, 그 악기들만이 낼 수 있는 소리와 영역에 집중해보면 좋다. 솔직히 가수들도 음색이 중요하지 않은가? 가창력이 중요하겠지만, 어떤 목소리를 타고났냐에 따라 다른 이의 이목을 끄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이어진다. 악기는 상대적으로 통일된 편이 아니던가. 모두 본질적으로 자연(사람도 마찬가지겠지만)에서 시작되어, 갈아지고 정제되어 그런 형태로 자리 잡은 것들이다. 그들은 스스로 소리를 내지 못할지언정, 우리의 손에 닿으면 정말 생각치도 못한 소리를 낸다.


사람이 낼 수 있는 고음과 저음 표현은 솔직히 한계가 있지 않은가. 일상에서 들을 수 없는 목소리를 들으려면 성악가들을 만나야만 들을 수 있다. 사람이 사람이 낼 수 없는 가장 자연을 닮은 소리를 가장 쉽고 또 어렵게 내는 방법이 이 악기겠다. 바이올린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거칠고, 야생적이고, 가녀리고, 매사에 사포질을 한다.


요근래 깨달은 건 프로에게 날것의 소리란, 정말 연습하지 않고 생으로 내보내는 날 것이 아니라, 이미 충분히 활과 현이 그 연주자에게 다뤄져 쨍하고 분명한 소리를 지닌 상태에서, 음과 음 사이를 마구잡이로 오가며 때로는 쉴 새 없이, 때로는 한없이 훅! 떨어져버리는 그 느낌을 '즉흥'으로 자유롭게 내보내는 것 같다는 것이다.


갑자기 왠 '날것'이라? 그냥 요새 현대음악을 자주 들어서 그렇다. 불친절한 음악 속에 쏙 들어와 있으니까 내가 듣기 좋은 소리는 알아서 채집해서 들어야 한다. 첫 음이 딱 사람으로 하여금 듣기 좋은 소리를 내주지 않아서 오히려 흥미롭다. 이놈?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흘러갈지 지켜보는 맛이 있다.


이해하려 들지 말고, 야금야금— 채집해봐라. 매미가 웽웽— 우는 뙤약볕 아래에서 푸른 잎사귀가 나열되어 있는 길가를 배회하며 나비 한 마리, 잠자리 한 마리를 잡아채는 심정으로 나눠서 들어보라. 그러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소리를 가지고 있는 악기가 보일 것이고, 소리가 있을 것이고, 그 모든 걸 담아내는 스스로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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