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12분 1초와 3분 56초의 차이

슈만 현악 4중주 3번 가장조 2악장을 중심으로_이든과 하겐

by 유진

누구의 곡을 듣는가? 어떤 해석을 들어볼 것인가? 어떤 라이브 버전으로 들을 것인가? 어디서부터 듣는가? 한 곡을 가지고 이런 질문들을 수도 없이 나열할 수 있는 게 또 이 장르의 매력이겠다. 누구의 곡인지는 작곡가에서 갈릴 것이며, 어떤 해석이라는 질문 자체는 결국 연주자라는 악기를 누구로 택하여 볼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다. 버전 자체는 공간에 따라서 악기 소리가 울리는 공명 자체가 각기다르다. 음질정도로 따지면 다 음원을 들어야지 왜 직접 발들여서 콘서트장에 가겠나? 인간만이 좋아하는 '생동감'을 향유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 어디서 부터 듣는가에 대한 의문형도 답해보겠다. 클래식을 잘 모른다고 하더라도, 한 곡에 여러 악장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건 가냘프게 들어봤을 것이다. 악장마다 특유의 정해진 흐름이 있는 것을 아시는가? 내가 느껴왔던 곡을 통해서 생각해보면, 1악장은 아무래도 도입부적인 느낌과 전반적인 분위기 자체를 형성해주었다. 2악장은 그것보단 톤을 부드럽게 다운시켜서, 가요 장르에 따지면 '발라드'같은 흐름이 많다. 그렇다면 3악장은 어떠한가? 기승전'결'의 소리들이 주로 포진되어 있다. 임윤찬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3악장을 생각해보시라. 결말로 치닫기 위해서 내달리는 속주를 목격한다면, 누구도 사실 이 장르를 그리 쉽게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 필연적으로 당신은 반할 것이다)


어떤 악장을 가장 좋아하는가? 곡마다 다르겠다. 나는 악장보다 두 단계 내려가보려고 한다. 선율 자체보다 더 짧은 단락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슈만을 아시는가? 어디선가 들어본 뭔가 낭만적인 이름이 아니던가? 슈만은 그 단어 자체로 주는 로망보다 더 진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현악 4중주(바이올린 2대, 비올라 1대, 첼로 1대)만이 펼쳐 낼 수 있는 곡 하나가 있다. 현악 4중주 3번 가장조 Op.41 No.3이다.


아주 로맨틱하고, 질리지가 않는, 들어도 들어도 부족하고, 계속해서 퍼담아야 하는 말린 장미의 소리가 켜켜이 깔려있는 곡이다. 슈만의 현악 4중주 3번은 그가 실내악에 몰두하던 1842년에 완성된 작품으로, 작곡가 멘델스존에게 헌정된 이 작품은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나는 2악장을 가장 좋아한다. 2악장 곡 전체를 좋아한다기 보다는 어딘가로 내달리기 시작하는 '그 부분'을 무척이나 자주 찾곤한다. 멀리 갈 필요 없다. 내가 이전부터 알고 있던 팀과 새롭게 알게된 팀의 소리를 통해 내가 '좋아한다'고 명명한 부분을 남겨두려 한다. 이든 콰르텟의 1시간 12분 1초와 하겐 콰르텟의 3분 56초를 살펴보면 된다.

이든콰르텟 / 하겐콰르텟

2악장은 특히 슈만의 복합적인 정서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제목 그대로 '매우 격정적으로(Assai agitato)' 시작되는 이 악장은 마치 불안정한 내면의 고백처럼 긴장된 리듬과 날카로운 음형으로 전개된다. 선율은 직선적으로 흐르기보다는, 어디론가 쫓기듯 튀고 흩어지며, 감정을 억누르려는 듯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중간에 등장하는 트리오 부분은 잠시 안정을 찾은 듯 부드럽고 서정적으로 흐르며, 슈만의 고요하고 몽상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이내 다시 격렬한 흐름이 돌아오며, 악장은 한 편의 짧은 내면극처럼 마무리된다.


딱 이부분! 마구 쫒기는 듯 억누르다 안정을 찾은듯 하다가, 갑자기 다시 격렬한 흐름으로 돌아오는 이 지점! 여기다. 이 부분은 정말 두 말할 것 없이 매력적이다. 거기다 난 저 이든콰르텟의 2악장을 실연으로 들었다. 진짜, 유튜브로 이 영상을 재생하고 계시다면, 어떠신가? 사실 이 영상에 담기지 않은 것이 있다. 소리의 압도감. 네 명의 연주자가 올곧게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소리가 마룻바닥 한 공간을 차지한다. 당신의 거실에서 프로 연주자가 연주하고 있다고 생각해봐라. 청자는 자연히 멍-하니 그 소리에 압도될 수 밖에 없다. 거기다 슈만의 현악 4중주에 2악장이라니. (미친거지) 이 순간에 나는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든콰르텟 / 출처: 더하우스콘서트

이든의 소리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어디인가? 잘 들어보면 내가 좋아하는 부분의 시작 지점 직전. 1:12:00부터 마음에 든다. 00초와 01초 사이. 잠깐의 정지 후 바로 01초의 들숨으로 '한줄'로 딱 딜레이 없이 시작되어서 판단이 들어서기 전에 소리가 앞서와서 좋다. 그 다음부터는 내가 뭘 얹을 수 없는 순차적인 소리들이 확확 그려진다. 1번 바이올린 소리, 즉 메인을 이끄는 바이올린의 소리를 들어보시라. 어떤 서정성으로 이 대화를 이끌어 가는가? 콩쿠르 때보다는 조금 더 소리선 양옆이 길어졌고, 조금 더 치정적이고 자유롭다. 유순하기 보단 예리한 것을 주로 뽑아내더니 위에서 아래로 활이 내려찍어 질때마다 그어지는 소리의 두께감이 다르게 표현한다. 시작이 짙을 때가 있고 강해질 때가 있다.


연주자가 어디에 힘을 주고 있는지, 어디서 내려 찍는지가 보인다. 중간에서 호흡을 함께 맞추면서도 소리의 중간과 끝을 들어보면 반드시 끝이 날카로운 선 하나가 밑바탕을 깔고 있다. 속도감은 어떠한가? 절대 걷는게 아니다. 쫓기는 것도 아니고, 분명하게 내달리는 중심이다. 제2바이올린과 첼로, 비올라의 소리를 귀에 담아봐라. 절대 넘어질 수 없는 흐름이다. 위가 날 것이니 받쳐주는 것은 더욱 짙어지고 확실해진다. 5분도 되지 않는 이 곡에서 몇 개의 표현이 나왔던가? 몇 번의 진동이 그 공간을 파동쳤는가? 나는 이 곡을 듣는 그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이 말들을 내려놓기 위해서 다시 듣는 지금도 자꾸만 시선이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난 뭐가 됬든 진심이 좋다. 얼마나 소리 앞에서 정직한 사람들인가? 자꾸만 되돌아가고 또 되돌아가게 만드는 슈만을 만들어낸 사람들이다.

하겐 콰르텟: 3분 56초부터 감상 하시길

그렇다면, 하겐 콰르텟에선 어디서 나의 어딘가를 건드렸는가? 하겐은 조금 더 다른 방향으로 내 귀를 건드렸다. 3분 55초의 정지 후 달려가는 속도감은 이든보다는 파급력이 덜했다. 이든의 소리로 너무 반복재생을 많이 했더니, 그것보다 조금 느린 버전을 들으면 약간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다만 확실히 녹음 버전이라 그런지 받쳐주는 소리와 리드하는 소리의 위치감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서 좋았다. 뭔가 여긴 첼로가 더 강한 흐름을 가져온다.


무엇보다 4분 30초!!!! 딱 거기서부터 메인 선 바로 살짝 아래로 어떤 선 하나가 옆으로 확 튀어나왔다가, 들어갔다가 밑에서 파동을 치더니 4분 35초에 들어가버린다. 누구의 소리지? 비올라인가, 첼로인가, 2바이올린일까? 확실히 알 순 없지만 메인과 두께는 다르면서 조금 더 멀찍이서 쨍하게 소리의 영역을 확 확장시켜버린다. 이 부분을 몇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누구의 소리일까? 아 진짜 모르겠다. 근데 그 딱 옆으로 갈고리를 던졌다가 5초만에 회수해버려서 더 잊을 수 없다.


결국 반복해서 듣게 되는 건 구조를 알기 때문이 아니라, 들을 때마다 다른 감각이 열리기 때문이다. 같은 악장이라도 팀, 연주자, 공간에 따라 소리는 다르게 반응한다. 그 차이를 따라가는 일이 생각보다 오래 붙잡는다. 지금도 자꾸 그 지점을 되감아 듣는다. 이미 아는 구간인데도, 매번 조금씩 다른 결이 느껴진다. 그래서 이 곡은 당분간 계속 들을 것 같다. 재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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