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가니니도 알고, 칸타빌레도 아시죠?
구태여 미사여구를 붙일 필요가 있던가. 노곤한 눈자위가 무거운 토요일 밤 11시 49분이다. 벌써 이렇게 지나가버리기엔, 오늘은 일주일 중 가장 안정감 있고 무게중심이 덜 쏠린 날이 아닌가. 슬슬 일요일이 다가오고, 또 한 주가 시작된다는 생각이 어깨 쪽으로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귓청을 따라 들어오기 전에 방어막이 필요하다. 노래로 막아야지. 뭐가 있겠나?
말 많은 것도 싫다. 가사는 내가 붙이는 게 속편 하다. 오히려 자기 자신이 가장 시니컬하다고 느껴지는 시점일수록, 이 장르를 들어야 한다. 내가 판단하는 대로 이끌려와 주니 좋다. 청중이라서 좋은 게 또 뭐가 있겠나. 다 던져내고 듣기만 할 수 있다. 의미 파악은 체력 있을 때나 하는 거지, 10대가 아닌 몸으로 밤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엔 하품만 하암– 계속 나온다. (나 원래 야행성인 줄 알았는데, 영 아닌 듯싶다.) 이런 마무리 시간엔 동동– 리듬을 타보는 재미가 있다. 걱정은 마라. 유치하거나 재지 하게 뛰어넘어오지 않는다. 적당히, 가볍게, 유유히 소리만 전달하고 가는 곡이 있다. 곡 설명은 구태여 하지 않겠다. 뭐가 중요한가. 하루가 벌써 끝났는데.
오늘 오후엔 프로코피에프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을 들으며 1년 5개월 전쯤 자주 걷던 산책길에 오랜만에 발을 들였다. 한창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애써 불안을 다스리려 했던 시기였다. 정확히 정해진 건 없어도, 현실성 없지만 재미있어 보이는 목표는 일단 설정해 두고 젊을 때 시도하려 했다. 나중에 후회할 확률을 줄이는 것이 내 목표였고, 그 생각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래도 1년 전의 나를 떠올리면, 먼 하늘 아래 허공을 보며 수도 없이 다짐했던 모습이 안쓰럽고도 아련하다. 매일 보던 풍경이었는데, 지금의 나는 그 장면을 이만큼 낯설어한다. 하루마다 바뀌는 생각, 사라져 버리는 오늘이다. 이제는 그래도 대충 갈피는 잡았다. 어차피 확실함과 안정감 따위는 없다. 매일이 불편하고 낯설고 귀찮은 일들뿐일 걸 알면서도, 조금은 나쁜 운이 덜 들어 있기를 근근이 바라본다. 인생은 새옹지마 아니던가. 바란다고 해서 가질 수 없고, 바라지 않았으나 갑자기 떨어져 내린 것도 있다. 아이러니를 이해하려 들면 참 답이 없다.
적당히 배울 점 많아 보이는 이들의 잔소리는 귀담아들을 만하다. 그냥 하루마다 할 일 하며 사는 게 최고라 했다. 번뇌는 인생이 지금 편해서 생기는 거라고도 했다. 잡념이 많으면 당장 밖에 나가 뛰라고, 권태로움이야말로 최고의 사치라고. 그렇게 따지면, 난 지금 참 사치스럽다. 내가 좋아하는 걸 이토록 분명히 알아버렸으니 얼마나 기쁜가. 생각해 보면, 끊임없이 내 앞에 물음표를 던진 덕분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모르는 공간에서 재밌는 일은 언제나 일어난다. 궁금한 사람이 먼저 기웃거려야지. 기웃–기웃–거리다 보면, 어깨도 툭툭– 긴장이 풀린다. 사람에겐 참 귀찮은 게 필요하다. 취향, 취미란 살아남는 데 하등 필요 없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자꾸 시선이 간다. 어쩌면, 쓸데없이 생각 많은 사람들의 잡념에서 시선을 돌리기 위해 뇌가 만들어낸 생존법일지도 모르겠다. "이상한 생각할 시간에 너 이거 좋아하지?" (이건 사실 정말 점지된 게 아닐까?) ‘빨리 더 찾아보고, 세밀화해 봐! 그래야 네가 살지!’라고 말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