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모르니까 더 재밌다면

프로코피예프 사이에 멘델스존을 둘 수 있는 사람

by 유진

세상은 꽤나 재밌다. 현재 나는 ‘지금’에 ‘과거’를 편하게 끼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과거 속에서 또 다른 과거를 마주하고, 추억 사이에서 기쁨을 되새길 수도 있다.


쉽게 풀이해 보자. 일단 ‘나’는 누구인가? 클래식을 좋아하는 20대다. 20대는 어떤 세대인가? SNS를 활용해 일상과 취향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손쉽게 공유하는 데 거리낌 없는 세대다. ‘지금’은 무엇인가? 인스타그램을 떠올려도 좋고, 우리의 플랫폼인 ‘브런치’를 생각해도 좋겠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과거’는 무엇을 뜻하는가? 클래식 그 자체일 수도 있고, 작곡가일 수도 있으며, 나의 얼마 되지 않은 귀여운 추억일 수도 있다.


서두의 문장을 다시 한번 이야기해 보자. 내 세상은 꽤나 재밌다고 했다. 왜냐하면, 현재 클래식을 좋아하는 나는 다양한 플랫폼에 클래식을 편하게 끼울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의 과거 행적들이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낸 셈이다.


클래식을 좋아하면 작지만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전공생을 제외하면 이 장르를 메인으로 좋아하는 20대는 다른 세대에 비해 수가 적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엔) 주위만 둘러봐도 내가 드물다. (사실 난 초등학교 때부터 팝페라 가수를 좋아했으니 떡잎부터 조금 달랐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에 스토리나 게시물을 올릴 때 내가 좋아하는 바이올린 곡을 검색해 보면, 이 곡을 활용한 콘텐츠가 없는 경우가 많다.


특정 클래식 곡을 활용해 첫 번째나 10번째 안에 드는 업로더가 된다는 사실은 꽤 웃기다. 숏폼에 적합하고 유행을 따르는 곡들이 인기를 끄는 요즘, 이런 흐름과는 반대로 가는 내 선택은 누군가의 알고리즘에 오르지 못할지라도, 내게는 색다른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오늘도 나는 바이올린 소나타를 들었고, 협주곡도 들었다. 한 곡을 반복 재생하는 재미도 있지만, 문득 다른 곡이 생각날 때가 있지 않은가? 가족들과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몰래 이어폰을 꽂고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의 전 악장을 배경음악처럼 들었다. 오늘은 유달리 1악장의 도입부가 머릿속에 계속 남았다. 처음엔 다소 기울어진 듯해 미끄럼틀에 기대 듣는 느낌이었는데, 듣다 보니 수평감도 있는 것 같아 처음 20초 정도를 몇 번 반복해서 들었다.


집에 도착해 저녁 식사까지 마치고 침대에 누우니, 불현듯 유튜브에서 이 곡을 검색하게 됐다. 악보가 함께 보이는 영상이 떴고, 가만히 음표를 따라가며 소리를 지켜봤다. 예상보다 음의 표현이 단순했다. 들리는 건 복잡한데, 작곡가가 이래라저래라 긴 잔소리를 늘어놨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담백했다.


좋은 곡이다. 좋다고 느낀 부분은 어떻게 해야겠는가? ‘자랑’을 해야지! 도입부를 저장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다. 업로드를 확인하자마자 또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이 생각났다. 협주곡 악보를 보며 내가 좋아하는 2악장의 도입부를 직접 들어본 적 없다는 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작년 여름쯤, 방 안에서 컴퓨터를 하다 알고리즘을 통해 처음 이 곡을 접했을 때의 기억이 있다. 화면 속에 빨려 들어갈 듯 멍하니 쳐다봤던 그 순간. 물론 그때 본 영상은 지금과는 다른 임동민 바이올리니스트 버전이었다. 그 짧은 눈 맞춤이 여기까지 이어졌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원래 순간의 선택이 긴 여운을 남기지 않던가. (그 선택의 결과는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점)


2악장의 바이올린 파트를 보면 생각보다 음표가 단순하게 기록되어 있다. 듣기 좋고 둥둥 떠다니는 듯한 음들이 너무도 적절히 배치돼 있어서, 분명 악보도 복잡할 거라 짐작했지만 오히려 기본적이다. 이런 부드럽고 잔잔한 부분들이 오히려 연주자의 특색을 더 잘 드러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절박한 상황에서 본모습이 드러난다지만, 악기를 통해 표현되는 진심은 오히려 부드러움과 공백 속에서 더욱 선명해지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좋아하는 파트를 들었다면 자랑해야지! 나는 그 부분을 캡처해 악보와 함께 인스타스토리에 올렸다. 누군가는 여행 사진을 공유하듯, 나는 내 일상을 그렇게 공유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음원을 틀었는데, 아까 듣던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소나타 2번의 3악장이 재생되었다. 아… 마음이 살살 녹는다. 높이 올라가 있던 어깨 힘이 스르륵 풀리면서 나도 모르게 침대에 몸을 눕히게 된다. 어떻게 자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또 0초부터 14초까지의 구간을 스토리에 올렸다.


그러고 나니 피식 웃음이 났다. 프로코피예프 소나타 사이에 멘델스존을 얹다니, 이게 무슨 조합인가? 순서라도 맞췄으면 모르겠는데. 속으로 ‘참 아무 생각 없구나’ 싶으면서도 재밌다고 느꼈다. 클래식만 올리는 것도 웃긴데, 순서까지 제멋대로라니. 스스로 피드백하며 웃었다. 이런 작곡가들이 내 삶에 들어온 것 자체가 신기하다. 전엔 그저 남이었는데, 이제는 이렇게 가깝다니.


사실 나는 요새 객관성을 잃은 상태다. 일반인의 시선에서 클래식이 얼마나 낯선 장르인지 감각을 잃어버렸다. 요즘은 이어폰을 귀에 꽂을 수 있는 순간마다 클래식을 듣는다. 예습할 곡도 많고, 좋은 곡도 많다. 특정 곡을 들을 때는 집중이 필요해서 오히려 배경음악으로도 쓰기 어렵다. 얼마 전 지인에게 클래식 관련 질문을 받았는데, 공연 전 곡을 미리 들어본다고 하자 꽤 놀란 반응을 보였다. 내게는 일상적인 일이지만, 상대에게는 신기했던 모양이다. 그제야 ‘아, 클래식은 원래 낯설었지’ 하고 예전의 나를 떠올렸다.


지금은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현악 4중주’도 한때는 막막하고 어렵기만 했다. 고작 현악기 4개가 함께 연주한다고? 무작정 어렵고 길고, 뭘 들어야 할지도 몰랐던 시절이었다. (없어서 못 듣는 요즘이다) 물론 지금도 모르는 게 많다. 내 청취 방향이 편협하기 때문이다. 클래식 마니아라면 누구나 아는 곡을 여전히 듣지 못한 것도 많다. (특히 교향곡 쪽은 약하다) 하지만 현대음악이나 난해한 곡들을 여러 번 예습하고 공연장에서 직접 마주하는 경험을 거치며, 이 장르만이 줄 수 있는 울림을 정확히 알게 되었다. 공연을 아무 준비 없이 가지 마시라. 금방 사랑에 빠질지도 모른다.


나 역시 한 연주자의 해석에 입덕해 클래식 전체로 확장된 경우라, 당분간은 빠져나오기 어렵다. 내가 좋아하는 음색을 가진 연주자가 택한 레퍼토리마다 자동으로 감상 수준을 끌어올려 버리는 걸 어쩌겠나. 받아들이는 수밖에.


이래저래 오늘의 장난 같은 청취도 결국 그런 발자취에서 비롯된 것이다. 프로코피예프 소나타 사이에 멘델스존 협주곡을 끼웠다가 다시 프로코피예프를 얹는 사람. 이 장르를 사랑하는 이방인이기에 가능한 장난일 것이다.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아는 것 같지만 사실 아무것도 모르기에 가능한 천진함. 나에게 이 장르가 그렇다. 중·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면 사람이 어리숙해지는 것처럼, 음악과 마주하면 마음이 동동거리고 가끔은 울컥해진다.


이런 재미를 이렇게 일찍 만나버렸으니, 어쩌나. 즐겁게 누려야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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