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한 날에 길을 멀리 돌아가는 이유가 있다면
하루가 유달리 반복된다는 느낌이 문득 든다. 딱히 하는 건 없는 것 같은데, 시간은 속절없이 잘도 흐른다. D-DAY 같은 설정을 해두면 그 체감이 더 빠르다. 분명 어제까진 30이었는데 오늘은 29다. 날짜 하나를 정해두니까 숫자가 시계와 다른 방향으로 전진한다. 오늘 아침엔 뭘 했지? 어제 점심엔 뭘 했더라. 오늘 저녁엔 뭘 할까? 질문을 내려 던져봐도 비슷하다. 이래서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것일까. 매일 누적된 반복은 꽤 사람을 지치게 만들지 않는가.
보통 이런 패턴감이 느껴지면 나는 원래 다니던 길이 아닌 새로운 루트로 집에 향하곤 했다. 일부러 두 정거장을 빙 돌아가거나, 안 가봤던 길목으로 지도앱을 손에 쥔 채 낯선 장소에 발을 들인다. 그러면 꽤 재밌다. 이런 길도 있었구나 싶고, 생각보다 완만하거나 높은 경사에 아찔해지기도 한다. 한두 군데 마음에 드는 길은 몇 번이나 반복해서 오가지만, 그러다 보면 그 길도 머지않아 지겨워진다. ‘NEW’ 루트를 또 개척해야 하는데, 이제는 내가 자동차가 되지 않는 이상 어려운 시점이 온다.
이상하다. 클래식은 반복해서 들어도 재밌는데, 그 외의 것들은 꼭 ‘무념무상’의 순간이 오는 걸까? 생각해 보면 요 근래는 전보다 음식에 대한 생각도 줄었다. 딱히 머릿속에 먹고 싶은 게 없다. 그냥 배를 채워주는, 적당히 건강하고 너무 탄수화물이 아닌 음식을 주로 찾기 시작했다. 집에 있는 시간을 줄여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체중 관리에 대한 생각을 머릿속에 항상 담아두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근본적으로 보면, 내가 나 자신이 심심할 틈을 덜 주기 때문인 듯하다. 당신은 무료해질 때 무엇을 하는가? 나는 주로 내가 귀찮아서 못하는 것들을 대신해 주는 사람들의 브이로그를 많이 봤다. 먹방도 꽤 많이 봤는데, 보다 보면 은근히 배가 고파지거나 더 무료해진다. 시청 당시에는 재밌다고 느끼지만, 다 보고 나면 남는 게 하나도 없고 결국 총체적인 심리적 허기만 남는다.
물론 지금도 킬링 타임으로 보곤 하지만, 웬만하면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려고 한다. 이를테면 그 시간에 공연 예습을 하면 얼마나 좋은가. 누군가의 식사 장면을 시청하는 대신, 멍하니 20분짜리 노래를 틀어놓고 음표를 따라가 보는 시간은 꽤 나쁘지 않다. 사실 무언가를 ‘청취’한다는 것은 꽤 명상의 과정과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일전에 넷플릭스에서 ‘헤드스페이스’라는 인터랙티브 명상 프로그램을 즐겨 본 적 있다. 그때 단기간에 많은 과목을 공부하고 시험을 쳐야 했는데, 어떻게든 머릿속 피로감을 빠르게 해소해 다음 과목 공부를 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야 했다. 내레이터의 목소리를 따라가며 했던 훈련 하나가 기억에 남는다. 조용히 눈을 감고 머리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따뜻한 햇살이 내 몸을 비춘다고 상상하고, 그 빛을 따라가 보는 것이었다. 그 빛은 아주 천천히, 위에서 아래로 보듬듯 내려왔다. 빛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머릿속에 머물러 있던 ‘다른 무언가’를 지워내는 훈련 같았다.
잠에 들지 못하는 건, 머리가 쉽게 무언가를 내려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내려놓아 비워내는 훈련이 명상의 일환이라는 생각이 든다. 클래식을 들으면,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그 훈련이 자연스럽게 연동된다. 길을 거닐며 내가 지금 듣고 있는 ‘소리’를 따라가 본다. 노래 전체를 듣는 것도 좋지만, 음 하나를 콕 잡아 길게 같이 따라가 보는 것이다. 천재들이 만들어낸 곡을 훌륭한 연주자들이 녹음해 준 덕에, 음들은 화려하게 춤추거나 우아하게 노닌다. 그걸 함께 따라다니다 보면 내 기분도 꽤 들뜬다.
내 손을 잡고 있는 또 다른 손이 리듬에 맞춰 나를 데려가 주는데, 어찌 내가 맞춰가지 않을 수 있겠나. 방금까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떤 고민에 번뇌했는지 잠시 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나는 무엇을 듣고 있는가. 오늘은 베토벤이다. 바이올리니스트 빌데 프랑이 실내악팀과 함께 녹음한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이전에 들었던 크리스티안 테츨라프의 연주와는 너무 달라 듣는 내내 신기했고, 둘 다 비할 수 없이 좋았다.
어떻게 클래식 곡 하나를 듣고 스타일이 다른 것을 알아챌 수 있냐고? 무작정 누적해서 들으면 느껴진다. 연주가들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유하게 지닌다. 테츨라프가 황색의 캐러멜 같다면, 빌데 프랑은 은은히 시원한 목캔디 같다. 이 차이를 굳이 알아챌 필요는 없다. 고무줄놀이가 하고 싶으면 전자를, 상쾌해지고 싶으면 후자의 연주를 들어 보시라. 음악에 정답이 어디 있겠는가. 즐거움만이 기다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