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빈스키 실내악과 피아노 작품들로 춤을 춰야겠다.
고개가 절로 까딱인다. 만약 이 글 하단의 1번 스트라빈스키 Piano-Rag-Music을 재생하기로 택했다면, 뒷목이 흔들흔들 춤을 출 것임을 장담한다. 특히 곡 후반부에는 손가락으로 스윙을 타고 있으니, 어찌 즐기지 않을 수 있을까. 지나온 어제를 떠올리기 전에, 나는 2번부터 먼저 재생해 보겠다.
지난 5일, 양화한강공원에 다녀왔다. 일찍이 연차를 쓰고 유유히 빠져나와 친구들과 삼삼오오 반카페로 모였다. 평소 점심 무렵엔 잘 나가지 않기 때문에 오후 2시 이후의 뙤약볕은 꽤 뜨겁게 느껴졌다. 이런 날에 어떻게 피크닉을 하나 싶었는데, 근래에 이토록 적절한 순간이 있었던가 싶을 만큼 날씨가 우리의 만남에 호응했다.
이제 6월 6일. 올해의 장마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혹시 모른다, 또 갑자기 비가 쏟아질지도. 습기 없고 푸릇하며, 벌레가 온 동네를 대장처럼 쏘다니기 전에 풀숲 한가운데서 즐겨야 하지 않겠는가.
오후 4~5시의 여름은 그 자체로 사람을 들뜨게 만든다. 빨간 체크무늬 돗자리를 깔고 나무 그늘 아래 앉으면 느껴지는 저물어가는 해의 따스함과 은은하게 스며드는 바람결. 여기가 프랑스인가 싶을 만큼 고즈넉한 들판과, 흐름을 따라 물결치는 호수. 많지 않은 사람들. 적당히 따뜻하고, 저작운동의 기쁨을 알려주는 맛있는 음식. 설명할 필요도 없이 보장된 또래의 곁. 근근이 재미가 되어주는 베이글칩 하나.
이 요소들이 여름이라는 계절 아래 놓이면 갑자기 하나의 테마가 된다. 오전까지만 해도 혼자 클래식을 듣고 감상을 나누는 게 제일 재밌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나오면 누구보다 잘 논다. 혼자일 땐 혼자만으로도 즐겁고, 함께일 땐 함께라는 이유만으로도 즐겁다.
항상 생각하지만, 내 친구들은 참 예쁘다. 예쁘다는 말이 단순히 외모를 뜻할 수도 있겠지만, 내겐 복합적인 의미가 있다. 약간은 강제적이다. “내 친구들은 다 예쁘다”라고 정언명령처럼 정해버렸으니, 내 바운더리에 있는, 마음을 주고받는 사람은 무조건 예쁘다고 칭하고 싶은 욕심.
사소한 요소 하나하나를 칭찬하는 재미도 있다. 고데기가 잘됐네, 옷이 예쁘네, 오늘 말이 곱네. 다들 MBTI가 T이고, 나 역시 그들에 물들어 T적인 F가 되어버려 말투가 툭툭 사실만 던진다. 가끔 미운 소리도 그렇게 나가 문제지만, 웬만하면 자제하려 한다. (잘 안 된다.) 아무튼, 여기서도 몰래 언급하지만 내 친구들은 다 예쁘다.
그런 예쁜 친구들과 어제는 꽤나 리드미컬하게 놀았다. 중학교 때부터 친구이고, 일상의 결이 다를지언정 톤이 비슷해 이제는 새로움보다는 안정감과 익숙함 속에서 침묵이 머물기 쉬운 사이가 됐다. 그래서 우리는 ‘콘텐츠적으로’ 놀아야 한다. 뭔가를 해야 한다! 어제는 사진이었다.
신나게 서로를 향해 카메라를 들이밀며 인생샷 찍어주기. 찍힌 사진을 보면 주인공은 한 명인데, 찍는 사람은 세 명 이상. 그 사진 속의 사진 속의 사진이 웃음을 자아냈다.
나는 사진에 찍힐 때 유난히 어색한 사람이 된다. 차라리 혼자 셀카를 찍는 게 낫다. 누가 찍어준다는 생각만 해도 광대가 이상하게 솟는다. 그런데도 타인이 봤을 때 예뻐 보이는 순간이나 스폿이 있지 않은가. 그런 순간에 “앉아!”, “가봐!” 같은 명령이 있어서 나도 몇 장은 핸드폰에 슉슉 담아낼 수 있었다.
마음에 드는 사진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인스타그램이나 카카오톡에 올리고 싶어진다. 나는 ‘관계’ 안에서의 나를 올리는 걸 좋아한다. 그냥 친구와 같이 찍은 사진이 좋다. 왜 즐거웠고 행복했는지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 있고, 그냥 ‘함께’여서 좋다. 이런 소규모의 관계성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도 감사하고, 오순도순 모일 수 있다는 사실이 내 일상에 활력을 더해준다.
일상이 순탄할 때는 새로운 관계에서 오는 색다름을 추구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하지만 그건 언제나 도박 같다. 내 경우 실패 확률이 높았다. 고등학생 때도 아니고, 매일 얼굴을 익혀가며 친해질 수 있는 사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나 잘해야겠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곁에 남는 사람은 소수일 텐데, 그때 내 옆에는 누가 남을까. 궁금하면서도 궁금하지 않은, 판도라 상자 같은 질문이다.
이래나 저래나 스트라빈스키 씨는 여전히 리듬을 타며 춤을 그리고 있다. 당신이 레퍼토리 5번까지 확인했다면, 내 최애 연주 영상도 봤으리라. 지난 11월 공연에서 마지막 곡으로 연주한 스트라빈스키 요정의 입맞춤. 오늘은 이 영상을 보며 나머지 과업을 이어가야겠다.
공휴일이지만 할 일이 많은 금요일이다. 부디 졸음을 이겨내고 오늘 해야 할 일을 완벽히 해냈으면 좋겠다. 인간은 어쩜 이렇게 게으른지. 할 일이 태산이다. 얼른 마쳐야 내가 하고 싶은 예습을 맘껏 하지 않겠는가. (프로코피예프, 프로코피예프~~~) 달려가 봐야지. 어쩌겠는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