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바늘로 임동민의 엘가‘사랑의 인사’를 담아내면
모양은, 물빛과 닮았다.
이 숨의 흐름은 물 → 빛 → 소리다. 벌써 짧은 숨을 세 번 더 들이쉰 참이다. 머뭇거리는 손짓을 움직여 어제를 되새긴다. 하루마다 내보내고 싶은 게 달라지는 매일이다. 여긴 비가 내렸고, 내 시야에 닿지 않는 곳에는 눈이 내렸다. 소복하게 벚꽃잎 위에 쌓인 봄눈이다. 여름비와는 다른 게, 그 기세가 매섭지 않다. 황사 낀 물방울 같지는 않다. 기온을 낮추는, 그저 깨끗한 시원함. 꿉꿉함도 없고, 마음껏 들이켜도 좋은 푸르름. 청숨이다.
이 숨과 닮은 소리가 있다. 긴 숨이다. 0:00에서 시작되어 초침이 오전 10시를 가리키는 방향에서 톡 나타난다. 다른 연주가의 여러 숨을 들어보면, 특징이 보인다. 특징이라 함은 사람 그 자체일 수도 있고, 성격일 수도 있겠다. 엘가의 '사랑의 인사'로 예를 들어보자. 누구나쉽게 알 수 있는 곡이다. 프로 연주가라면 이 곡이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어렵지 않기 때문에 풀어내는 소리가 좀 더 자유로울 거라 믿는다. (해석의 영역이 더넓어지지 않던가) 개인의 해석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 사람이 묻어나는 공간이다.
그렇다면 귀 기울여 들어본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순진한 물음으로 시작해 보자.
첫 음으로 다양한 인사가 나열된다. 노련한 소리다. 무르익은 과실을 아는 사람이구나. 이 분은 좀 경쾌하네. 이렇게 재지(Jazzy)하다고? 신기하다. 와, 감미로운 인사다. 우아한 인사도 있다. 여긴 쫀쫀하고 훨씬 깊은 인사네. (악!) 훨씬 부드럽고 잔잔한 사람도 있다. 출렁- 출렁- 인사가 파도친다. 단정한 인사도 있겠구나.
여러 첫마디를 들으며 오전 8시 35분의 햇살을 받고 있다. (안녕하세요!) 들여오는 게 반짝이니 자연히 시선에 밝은 것이 담긴다. 빛을 내는 것을 좋아하니 자연히 시선이 그곳으로 향하는 것 같기도 하다. 마음에 무언가를 담아내는 일은 어렵지 않다. 원래 가던 길에서 살짝 빗겨나와 그늘 밖을 거닐면 된다. 그러면 그림자 안에 머물러 있는 아주 엷고 반투명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물빛이다.
만약 당신에게 누군가 사랑의 인사를—이성애에 한정되지 않은—건넨다. 어떤 형태이길 바라는가? 생각해 보니 묻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인사부터 소개하는 것이 순서겠다. 두 번째 문단에서 살짝 언급했던 그 숨이다. 그 숨에는 약간의 겹이 있다. 그 겹에 대해 일전에 기록한 적이 있는데,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간단하다.
그냥 안 지나가려고 하는. 선 자체가 아주 날렵한 칼로 이루어져 있는. 소리 자체가 살짝 무표정한 느낌을 기반으로 시작하는. 지나갈 수 있는 부분에서, 과하지 않게 아주 얇게 진동하고 울림을 주며 지나가는. 그래서 한 음 한 음 자꾸 곱씹게 되면서 듣게 되는. 곳곳에 스민 즉흥성. 자유로운 느낌. 늘이기. 강타하기. 잠시 기다렸다 시작할 때는 바로 눈앞에 있기보단, 세 발치 멀리서 서서히 다가오는. 예민한 소리를 내는 게 바이올린이지만, 그보다 더 예민한 소리가 나는. 마테오 고프릴러 바이올린 자체가 첼로로 유명한 장인이 제작한 악기라서 그런가, 본질은 아주 저 밑의 깊은 곳에서 시작하는 소리가 날 때가 있는데 그 안에서 연주가의 재량으로 아주 높고 얇게 선을 뽑아낸다. 음을 평면적으로 두기보다는 약간씩 비틀어내 그 공간의 입체감을 부여하여 그 결이 귀로 느껴지게 하는. 그 비틈이 즉흥적이고 정해진 느낌이 아닌. 아주 공격적인 것 같으면서 정돈된 절제감이 부담스럽지 않은.
이 숨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건네주는 것을 받아내 보자. 빗틈 사이에 예고 없이 나타나 다정한데 다정하지 않은 것을 내놓는다. 지나갈 것 같은데, 은근히 머물러주는 구석이 있다. 짚어줄 곳을 툭툭 짚어주고 넘어간다. 부담스럽지 않다. 사랑을 논하나, 시선은 내 쪽에 없다. 눈을 감은 것 같진 않고, 대각선 쪽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형태는 둥근 원형이다. 그 안은 비어 있고, 원형 안에서 소리가 둥글게 둥글게 파동친다. 같은 멜로디의 시작과 끝은 평면적이지 않게, 첫음과 끝음에는 꼭 여운이 있다. 과장하지 않고 머물러주는 것이다.
얇은 분홍빛 리본이 하늘 아래 펼쳐지는 모습을 길목에서 지켜본다고 생각해 보자. 얇고 긴 선이다. 놓치지 않는 선이다. 깊게 고저를 오고 갈 수 있는 것을 아는데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그 공간 안에서 펼쳐낸다. 살짝 사라질 듯하면서도 그 자리에 꼭 있다. 직선으로 쭉 뻗어내기보다는, 살짝 아래로 갈고리 모양으로 머물다 가는 마음이 좋다. 루즈하지도 빠르지도 않다. 딱 그 정도여서 좋다. 잠시 멈춘 사이에는 지나갔던 음의 아주 짧은 그림자가 스친다.
틈마다 내 공간이 고무줄 놀이하듯 담담히 펼쳐지니, 어찌 담아내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다가도 부드러운 흐름 속에 위로 상승의 선을 그어내서 얇아져 버린다. 짙어질 수도 있었을 텐데, 빗틈을 만들어낸다. 그러다가 다시 시작되는 첫음. 아까보다는 그 선이 굵다. 아래로 흘러들어가 깊이감을 더해준다. 그렇다고 파고든 것은 아니고, 지나간 것을 되새겨 주는 따듯함이다. 이 숨의 인사다. 또 하나의 청숨이다. 그 겹 하나가 내민 소리다. 그래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