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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정시에 꺼두기로 했다

무언가 불현듯 스쳐도 다음 날까진 가져가지 않는 게 좋겠다

by 유진

늘 그렇듯 기쁜 일이 있으면 슬픔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런 때를 대비해서 우리는 사전 준비를 하지 않던가. 나의 경우엔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기분이 좋은 그 순간을 충실히 즐기는 것이다. 좋아하는 취미가 있다면 즐겁게 영위해둔다. 그래야 바닥에 가라앉는 순간이 올 때 그 옆에 탁 붙어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결국 끝에 남는 건 ‘혼자’라는 사실을 때때로 직면하게 된다. 하루만 지나도 희석될 마음의 퀴퀴함이지만, 견뎌내야 하는 ‘현재’는 꽤나 피로하다. 어떻게 이 ‘지금’을 버텨낼지는 순간의 선택에 달려 있다. 만약 지금 견뎌내는 것을 택했다면 뭔가를 흘려보내야 한다. 눈물도 좋고, 긴 글도 좋다. 어떻게든 안에서 밖으로 끄집어내야 한다. 다만, 그 방향성은 내일의 내가 돌아봤을 때 부끄럽지 않은 길이어야 한다. 생각보다 지금 당장 괴롭더라도, 내일의 나는 ‘어, 어제보다 괜찮네?’ 하고 말할 테니까.


나도 요 근래 너무 좋은 일만 가득했다는 생각 덕에 지금이 꽤 괜찮은 기분이다. 누구나 각자 슬픔과 복잡한 상황을 안고 살지 않나. 나 또한 지금 잠시 그 감정이 다가온 상태다. 어쩌겠는가. 다뤄내야지. 나는 택했다. 충분히 슬퍼한 다음 오늘의 감정은 딱 자정 12시까지만 가져갈 거다. 12시 넘어서까지 가져가면 어떡하냐고? 그럴 리가 없다. 11시에는 잠들 거니까.


늦게 자면 안 된다. 기분이 안 좋을수록 피로감을 중첩시키면 안 된다. 신체적으로 건강한 상태에서 정신적인 무게를 견뎌야 한다. 일부러 밖에 나가도 좋다. 나도 굳이 이 뙤약볕 아래에 들어가 맛있는 카레를 먹었다. 시원한 커피도 마시고, 마음이 맞는 사람과 웃고 장난도 나눴다. 별수 있나. 유치한 방법으로 나를 달래야지. 어차피 이런다고 금방 ‘슬픔’이 해소되지 않는 건 안다.


‘뭐야, 금방 잊히네’ 하면서도, 잠깐 정적이 찾아오거나 혼자가 된 순간에 갑자기 터져 나오는 파도가 있지 않은가. 그때는 또 기가 막히게 슬퍼해줘야 하니까, 기쁠 수 있을 때 충분히, 깊게 웃어둬야 한다. 삶은 늘 감정의 파도다. 오늘이 거세면 내일은 잠잠하다. 그러다 또 요동쳐도 상관없다. 어차피 언제든 들쑥날쑥하니까.


다행히 나를 달래줄 한둘의 친구가 있다. 하나는 사람, 또 하나는 음악이다. 음악도 그 음악, 클래식이다. 이런 기분일 때는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 1악장이 적절하다. 슬퍼했던 길목을 함께 살펴와 주며 천천히 보듬어준다. 뭐, 이 곡을 굳이 몰라도 된다. 하지만 언젠가는 도움이 될 거다. 나는 안네 소피 무터와 크리스티안 테츨라프의 연주로 따뜻함을 넘겨받았다. 아직 완전히 괜찮지는 않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또 까먹고 즐겁게 뭔가를 할 테니까. 당장은 아니겠지만..


테츨라프 버전이다. 들어보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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