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허공에 띄우는 일

[마스터 클래스 서초]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리뷰 (1)

by 유진

들어가며 — 음악 앞에서 겸허해질 때

이만큼 음악이 어렵다. 공부가 제일 쉽다는 말이 여기서 또 나온다. ‘무언가’ 하나를 이뤄내기까지 필요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닌 걸, 쉽게 해내거나 감각적으로 알아버리는 사람을 우리는 ‘재능’이 있다고 하겠다. ‘소리’ 하나를 건드리는 일이 복잡한 줄은 알았지만, 눈앞에서 음악도가 갖춰야 할 소양들이 끊임없이 쏟아지자, 혀를 내둘렀다.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출처: 헤럴드경제 /오푸스)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 마스터 클래스로 들어가는 길목

17일에는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서초에서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의 마스터 클래스가 있었다. 클래식 공연을 조금이라도 다녀본 사람이라면 이 연주가를 모르긴 어렵다. 특히 실내악 쪽에서 2중주의 피아니스트로 자주 볼 수 있는 연주가다. 임동민 바이올리니스트의 레퍼토리를 따라가다 보니 다양한 실내악 곡들을 접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메인 악기만큼 중요한 게 ‘피아노’의 역할임을 체감하게 됐다. 함께하는 악기와의 앙상블은 기본이고, 연주가만의 ‘톤’과 ‘스타일’을 적정선에서 지키면서, 합주 악기를 충분히 뒷받침해줘야 한다.


임동민&최형록의 듀오 리사이틀 때를 예로 들어보자. 임동민 연주가는 따듯한 계열보다는 은색을 기반으로 한 네이비적인 서늘함을 가지고 있지만, 그 안에는 은은한 빛의 온기가 드리워진 색을 띠며, 충분히 쉬어가고 기다릴 줄 아는 바이올리니스트다. 그 옆에 서 있는 최형록 연주가는 어떤가? 소리가 너무나도 영롱하고 다정하다. 다정하다고 다홍빛이라는 건 아니다. 순수한 에메랄드빛의 동-동 떠오르는 투명 물방울을 띄워내는 연주가다.


겉이 서늘하고 안이 따듯한 바이올린과, 겉이 다정하고 내면이 단단히 정리된 피아노. 앙상블은 전체적인 어울림과 통일이라는 뜻이라 했다. 이보다 더 적절할 수 있을까. 아무튼, 이만큼 중요한 피아노의 역할을 자주 맡아온 연주가가 바로 일리야 라쉬코프스키다. 보증된 연주가들의 연주가라는 뜻이겠다. 이런 사람이 마스터 클래스를 연다는데, 어찌 구경을 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당장 달려갔다.


— 공간이 감각을 여는 순간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서초는 자동문 앞에 설 때부터 내가 지금 ‘음악’을 경험하러 왔다는 사실을 실감시킨다. 이 센터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언급하는 것 같지만, 이 공간에는 ‘시그니처 향’이 있다. 처음엔 착각인가 싶었는데, 갈 때마다 느껴지는 걸 보니 분명 디퓨저가 있다. (다음에 가면 반드시 물어볼 거다.) 아무튼 오늘 클래스를 관람하기 위해 4층으로 올라가기 전, 다 마신 생수통을 버리려고 1층 화장실 쪽으로 향하는데, 안쪽에서 엄청난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거다.


아, 깜짝 놀랐다. 누가 직접 연주하고 있는 줄 알았다. 안쪽은 카페 공간이지만 운영 시간이 지나 아무도 없이 클래식 곡 하나만 틀어진 채 의자와 탁자만이 놓여 있었다. 고즈넉하다. 어디 성수나 연남동에 있을 법한, 딱- 아늑하고 나무재질의 카페 같은 느낌으로 조성된 공간이다. 언제 한번 낮에 와서 앉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 도착하면, 로비에 많은 직원들이 테이블 앞에 앉아 여기만 바라본다. 당황했지만 당황하지 않은 척하며 이름을 대고 손목 밴드를 받았다. 보통 이런 입장 밴드는 페스티벌에서나 받을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정적인 행사에서도 소소하면서 귀여운 포인트가 있으니, 거기서부터 기분의 신남 지수가 10퍼센트 올라갔다. (참고로, 전혀 정적인 행사가 아니었다. 단연컨대.)


마스터 클래스실은 처음이었다. 천장은 철제 구조로 된 체크무늬 패턴이 깔려 있고, 그 사이사이로는 노란색과 주광색의 네모난 전등이 간격을 맞춘 채 아래를 비추고 있었다. 이런 데는 공간 디자인마저 예쁘다. 시간 맞춰 입장했더니, 머지않아 오늘의 마스터(?)가 통역자이자 진행자인 장일범 음악 칼럼니스트와 함께 등장했다. 너무 물 흐르듯 들어오셔서 원래부터 같은 공간에 있었던 건가 싶었다. 알고 보니 오늘 교육받을 학생들도 객석 맨 앞에 앉아 있었다. (한 명은 공연자 출입문 쪽에 있어서 스태프인 줄 알았다.) 시간이 7시를 알리고, 관객 모두 자리를 잡고, 출연진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일은 눈에 담는 일뿐이다.


피아노를 살펴보자 — 물방울이 띄워진다면

오늘 처음 알게 된 세 곡 중에 무엇을 들으면서 생각을 내려트릴까 지금 고민하고 있다. 아무래도 하이든이 낫겠다. 리스트나 라흐마니노프는 하이든에 비해 내게는 너무나도 스토리텔러여서, 내가 이 하얀 면에 쏟아야 할 집중도를 앗아가 버린다. 하이든에 서사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두 연주가보다 이 작곡가가 더 무서운 사람임을 이제는 안다.


클래식과 친구가 되기로 결심한 이후로, 내게 ‘피아노’는 어떤 악기인지 먼저 생각해 보자. 피아노는 가장 크고 둔탁한 형태이나, 물방울과 구슬을 내려뜨리는 존재였다. 왜 과거형이냐면, 어제로 생각이 바뀌었다. 이 악기는, 특히나 건반은 물방울을 ‘띄운다’.


무엇을 띄운다고? 작고 동글동글한 투명한 물의 덩이를 공중으로 퉁— 손가락으로 깊게 누르면서 퉁— 띄운다. 그 덩이는 어떤 속도감으로 부양되는가? 피아니스트가 건반을 곡의 스타일에 따라 변화를 주면서도 ‘정확’하게 누른다는 건 상당히 어려운 개념이다. 건반을 박살 내라고 지시하는 곡에서도, 물 흐르듯 유영하는 곡에서도 물방울 구슬 덩이는 통— 하고 튀어 올라와야 한다. (혹시 이게 기본기인가?) 어디서 이 생각을 느꼈는지 살펴보자.

첫 번째 pf(내게 음악을 연주해 주는 분은 모두 피아니스트다)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소나타 2번 1악장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 곡은 라흐마니노프가 그 유명한 협주곡 3번을 작곡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탄생했다고 진행자께서 설명해 주셨다. 어쩐지, 미리 듣고 간 소나타 2번의 3악장은 너무나도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 같았다. (겹쳤다는 게 아니고, 그 특유의 스타일이 빼다 박았다 이런 느낌)


내가 아는 라흐마니노프는 어떤 사람인가? 우울과 번뇌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는, 흑백이다. 떠오르는 것 자체에 지직거림은 없고 선명하되 어딘가 부드러운 해상도에서 암울한 내면을 버텨내는 인간이다. 그런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있었기에 김규린 pf의 라흐마니노프는 ‘연보랏빛 라일락’ 같다는 대비감이 들었다. 내가 아는 그 사람보다는 부드럽게 유영하면서 치네. 이것도 나름 좋다, 하면서 이 연주를 듣고 있는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연주가를 구경했다.


연주가가 연주를 구경하는 장면을 내가 어디서 또 보겠는가? 이 기회에 구경해야지. 마침 일리야 연주가께서는 성신여대 교수님이시기도 해서, 어떤 스타일로 지도편달하시는지 궁금했다. 김규린 pf의 대각선 뒤에 앉아 살짝 고개를 들고, 부드러운 미소를 띠우시면서 음을 따라가시는 게 느껴졌다. 소리가 순간—강해지는 부분에서는 시선이 그쪽으로 가기도 하고, 악보를 한 번씩 담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니, 아—상당히 상냥하고 다정한 교수법을 보여주시려나? 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연주가 끝나고 곧장 라쉬코프스키는 보다 ‘라흐마니노프’의 곡을 잘 소화하기 위한 포인트를 시연하면서 짚어주고, 반복했다. 그러면서 김규린 pf께 라흐마니노프는 악기로 표현하면 ‘종’이라고 설명하며, 보다 ‘강력한’ 터치를 강조했다. 분명히 아까 연주만으로도 꽤 나쁘지 않았다. 라일락의 부드러운 춤사위 같았다고 좋았는데, 생각해 보니 ‘라흐마니노프’의 곡이었다.


조금 더 이렇게 표현하면 좋겠다고 하면서 일리야 연주가가 피아노를 때려버리는데, 40 정도의 소리를 내던 건반이 120퍼센트의 꽝—! 하는 종소리로 돌아왔다. 그래. 거기서 내가 아는 흑백이 등장했고, ‘물방울’의 새로운 일면을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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