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당신에게 닿았는가?

[마스터 클래스 서초]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리뷰 (2)

by 유진

감정을 연기하고, 소리로 행하는 — 이렇게 어려울 수 있나?

띄워진다고? 나는 물방울을 뚝—뚝— 떨어트리는 것이 피아노라고 생각했다. 일리야 라쉬코프스키가 시연을 할 때마다, 소리의 음향이나 톤과 상관없이 개별 건반에서 조그맣고 동그란 구슬들이 튀어 올라간다. 장중한 라흐마니노프의 ‘종’을 묘사할 때는 어땠는가? 물방울이 상향하기도 전에 손가락이 짓이겨버린다.


그런다고 절대 소리가 터지지 않는다. 탄력 있게 내려앉아 오히려 더 깊은 저음부를 형성해 버린다. 소리 끝에는 꼭 잔향이 있다. 개별의 것들이 어떻게 음악이 될 수 있는가? 대지와 하늘 그 사이에서 음표를 동동— 띄워내야 한다. 너무 아래여서도 안 되고, 위여서도 안 되는 그 상태에서 고저를 유영하며 타고 놀아야 한다. (미치겠다, 너무 어려워)


그 언저리에서 이제 추락하지 않을 정도의 단계에 몰입하면, 슬라임 하나를 가지고 놀 줄 알아야 한다. 꿈결처럼 치려면 구름 같은 터치감으로 물방울을 띄우면서, 속도감도 아주 자잘하고 빠르고, 구간마다 서로 다르게 쳐야 한다. 안개를 불러오려면 내가 가지고 있는 악력보다 더 큰 힘을 손끝으로 몰아서, 짙은 회색이 아니라 아주 새카만 검정에서 소리를 유도해야 한다. 멀리서 부터 이쪽까지 다가오는 소리를 귀로 느낄 수 있게 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어제 알았다. 조금만 소리 조절이 가까워도 딱히 다가온다는 느낌이 없다. 아주 새카매지던지, 더 셈여림 조절을 미세하게 하던지, 뭔가 택해야 하는데… 이걸 하나하나 계산하다가는 곧 팔순이 될 것 같다.


아— 이만큼 음악이 어렵다. 이래서 재능의 영역인가 싶다. 해야 할 게 너무— 많다. 일단 손의 힘이 세야 하는 건 분명하다. 건반의 표면 이상으로 쿵— 하고 눌러야 퉁— 하고 물방울이 저 위까지 떠오른다. 일리야 라쉬코프스키가 팔을 거의 머리까지 들어 올려 손을 높이 위치시켰던 게 기억난다. 소리를 옷자락처럼 잡아끄는 게 보였다. 작은 공간에 있으니 이 소리가 얼마나 장중했는지 곧장 체감된다.


만약 여기가 콘서트홀이나 공연장이었으면, 관객의 끝까지 닿기 위한 ‘기본 소리’였으리라. 뮤지컬 배우에게 성량과 딕션이 필수요건이듯, 피아니스트에게도 이 포인트는 상당히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매 순간 ‘음악’이어야 한다. 쾅— 친다고, 소리가 크다고 음악이 아니다. 음이 악이 되려면 뻣뻣해서도 안 되고, 너무 부드러워서도 안 된다. 충분히 크지만 안온하고, 연약하지만 강인해야 한다. 악기로 경극을 해야하는데 이쯤 되면 사이코패스가 안 되는 게 이상하다.


왜 이렇게까지 자유분방하게 다양한 감정을 순간마다 이용할 줄 알아야 되나 싶으면서도, 이해가 된다. 내가 철저히 관중된 입장에서 감동을 주는 프로 연주가들의 공연은 모두 같은 공통점이 있다. 약속한 시간에 바로 관객에게 ‘도화지’ 하나를 턱— 가져다 놓고, 작곡가가 완성해 놓은 ‘명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명화’를 내 손으로 직접 시연하는 사람들이다. 이미 그 그림은 어떤 특징이 있다고 다수에게 알려져 있고, 그 곡을 연주하는 사람은 이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우리가 어떤 좋아하는 작가만 해도 그 사람들만의 아이덴티티가 있지 않은가? 작곡가들도 그러하다. 리스트는 내게 막 안갯속을 헤매는 알쏭달쏭하지만 우아한 사람이고, 라흐마니노프는 폭풍을 닮으면서도 이겨내는 성장형 인물이고, 하이든은 규율적이지만 나름 들을 만한 것 같으면서도 이상하게 정이 안 가는 그런 사람이다. 내가 어떻게 이런 특징을 알았겠는가? 연주가들이 그런 사람들의 곡임을 분명히 알도록 쳤다. 연주가들은 연극배우가 분명하다. 택하는 곡마다 자아를 갈아 끼워야 한다. 아... 내가 미치고 안타까웠던 포인트가 또 하나 생각이 났다.


사람마다 연주를 들어보면 고유한 특징이 있다. 누구는 소리가 유달리 유순하고 부드러운데, 누구는 뻣뻣하고 되게 꼿꼿이 서 있다. 연주의 주체 자체가 그렇게 형성되어 있는데, 작곡가는 여러 명이다. 만약 유순한 스타일을 가지신 분이 라흐마니노프를 친다? 쇼스타코비치를 연주한다? 이거 일이 복잡해진다. 거의 자아를 갈아 끼우는 수준으로 뒤뚱거리고 휘몰아치고 난리를 부려야 하는데... 될까? 이쯤 되면 연주가들은 연기 학원을 가야 할 것 같다. 연주 레퍼토리마다 손가락부터 전신을 그 안에 투영해야 하는데, 이거 되는 건가?


문득 임동민 바이올리니스트는 이자이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를 어떻게 한 건지 싶다. 이건 총 6개의 곡인데, 악장 별로도 곡별로 스타일이 천차만별이다. 1번을 들어보면 쭉 내려앉았다가 유영했다가 편해졌다가, 3번으로 가면 갑자기 LG휘센 에어컨 강풍이 불어오고, 4, 5번쯤 가면 새벽도 갔다가 춤도 췄다가, 6번 가면 그냥 종합 선물 세트다. 이걸 10분 단위도 아니고 몇 분 단위로 망상과 강박을 오가며 연주를 해야 하는데... 이래서 연주하는 사람들이 예민한 건가 싶다.


소리로 완성되는 초상들 — 음악에 설득력이 생기려면

다만, 그들이 예민해야 관객에게 보다 ‘선명한 해상도’로 전달된다는 게 너무나도 사실이라 아이러니하다. 내가 미묘하게 집중이 안 되는 연주를 떠올려 보면, 그 무대의 주인공이 연주가 본인일 때다. 사람들의 시선에 기억에 남는 연주는 어떤 것인가? 이상하게 무대의 형상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귓가에 선연한 그 ‘소리 표현’과 ‘작곡가’의 특징들은 분명하게 각인된다. 오케스트라 연주자가 어떻게 손가락을, 숨을 다뤄냈는지 내가 어떻게 다 기억하겠나? 나는 무형의 붓으로 빚어진 것과, 그 사람의 표정만을 담을 수 있다. 그런데 소리가 불분명하고 캐릭터성이 애매해지면, 그 연주에 몰입한 사람의 외형만 멍— 하니 쳐다보게 된다.


약간 언어 공부 같다. 중국어 성조를 제대로 익히고 싶으면 오히려 배움 초기에는 1성, 2성을 같은 발음기호라도 더 강조하고 크게 읽게 한다. 연주가들도 그럴까? 감정이 깊으면 내가 더 으악—! 하면서 치고, 자연물을 묘사하면 조금 더 갸륵하게 쳐야 할까? 내가 악기를 달고 사는 입장은 아니니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정말 어렵다...


하이든. 바흐. 이 사람들이 왜 연주가들에게 어려운지 제대로 깨달았다. 오디션으로 비유해 보면, 바흐나 하이든은 자기소개가 ‘1초’다. 혹은 딱 ‘1번’의 터치의 시험대다. 당신은 물방울을 통— 띄우는데, 그 물방울의 전면에 음악성이 있고, 이를 다뤄내는 데 능숙한 사람인가? 가 단번에 드러난다. 두 번의 기회는 없다. 사람의 실력이 빠른 패시지나 리듬감에서 드러난다고 생각하시는가? 전혀... 오히려 느리고 단순할수록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내가 이 ‘소리’를 얼마나 빚어냈는지, 하나하나 전체를 증명받는 길이다.


사실 연주라는 게 정말 무의식의 영역이 아닌가? 연주할 때 본인이 어떤 피아니즘을 구사하고 있는지 알까? 문득 너무 궁금해져서, 질의응답에 질문을 미리 받는다기에 카톡방에 이런 질문을 남겼다. “실제 공연에서 연주하실 때 눈앞에서 펼쳐지는 이미지나 떠오르는 생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다행히 물음이 채택돼서 일리야 연주가의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같은 곡이라도 연주 때마다 다르고, 어떤 때는 스토리가 생각나기도 한다”라고 했다.


이만큼 추상적이고, 때마다 통제할 수 없는 영감의 공간이다. 내가 타인의 내밀한 감정선에 손을 닿으려면, 연주가가 작곡가에 미칠 듯이 몰입하고, 악보에 파고들어야 한다는 걸 제대로 각인했다. 세밀하게 다뤄내고 직조해야만, 내가 이 작곡가가 왜 여태까지 사람들에게 기억되는지를 알 수 있다.


무서운 건, 이 어려운 게 연주가들한테는 ‘기본’이라는 사실이다. 이미 갖춘 상태, 그제야 자신의 색을 살짝씩 덧입히기 시작한다. 거기서 관중들은 자신의 취향을 발견한다. 아, 이 브람스에서는 시원한 소리를 내는 연주가가 좋아... 난 아니야, 따듯한 느낌을 가진 사람이 좋아... 하면서 이 사람, 저 사람을 찾아다닌다. 아니면 아묻따 진짜 메이저 연주가를 찾아간다. 그들이 유명한 이유는 취향 이상의 경지에서 관망할 수밖에 없는 ‘영상물’ 하나를 턱 하니 재연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설득의 영역을 넘어서 ‘와 차은우다…’ 하는 느낌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음악을 좋아하면서 괜스레 ‘측은지심’만 늘어간다. 내 코가 석자지만, 이 장르는 정말 갖춰야 할 역량이 많아도 너무 많은데 그게 다 추상적이다. 이래서 운동이랑 공부보다 어려운 게 많은 거다. 약간 인간관계 같다. 다 죽을 텐데 부질없이 자신이 속한 사회관계 안에서 끊임없이 줄다리기, 선 타기를 해야 하는 이 감정싸움이랑 다를 게 뭔가... (에휴)


끝나고 나오는데 정말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다른 장르의 예술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나마 내가 낯설지 않게 여기는 색채의 영역에서 생각해 보자. 모든 ‘그림’은 이미 완성본이 있다. 스케치나 다루는 색감의 톤이 조금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이미 화가가 지정해 놓은 분위기, 인물, 표정, 배경은 정해져 있다. 그것을 보다 선명한 해상도로 구현해 내야 한다. 만약 조금 흐리게 다뤄보고 싶다면, 이를 관중과 뒷배경에게 충분히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 피아니스트가 연주가들에게 그런 지점을 짚어줬다고 생각했다. -40에서 40까지 머물지 말고, -310에서 460까지 영역을 크고 명징하게 다뤄내라. 잿빛으로 머물지 말고, 더 큰 흑색으로 담가버려라. 흰빛에서 끝내지 말고, 그 이상의 ‘투명’으로 넘어가라... 진짜 다양한 명곡을 많이 스스로에게 노출시켜서 ‘듣는 귀’를 만드는 게 오히려 간편할지 모르겠다. 연주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본인만의 스타일이 들어가지 않겠는가...? 그림도 창작 이전에 그림의 기본기를 다지려고 트레이싱(투명한 종이나 디지털 레이어 위에서 따라 그리는 것)을 종종 하지 않던가. 마치 그런 것처럼........


끝내며

어우; 진짜 말이 쉽지, 어떻게 하냐고. 일단 만약 내가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연주가가 가르쳐준 대로 하려면? (실제로 이런 걸 일러준 건 아니고, 연주 시연 장면에서 ‘이런 기본기 정도는 다진 상태여야 이 정도 칠 수 있다’를 눈으로 확인시켜 줬다) 일단 헬스부터 가서 악력 짱이 된 다음에, 연기 학원에 가서 다양한 감정 표현을 배우고, 방에 틀어박혀서 악보만 공부한 다음에 하루 종일 클래식 곡만 들어야 대충 될까 말까 하겠다! 미치지 않고서야 이렇게 할 수 있냐고 (으악!) ..이래서 다양한 공연을 다녀봐야 한다. 소리 하나 내보내기가 이렇게 어렵다는 걸 알면, 아— 매 순간이 다 신기하다. 저렇게까지 닿기까지 얼마나 연습하고 상상했을까...? 오늘 바이올린 마스터 클래스를 하나 더 보러 가는데.. 또 뭘 알려주시려나.. 암튼, 이런 6월 17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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