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서울시향 마스터 클래스] 박스테이프로 소리를 띄우는 법
뭘 배웠더라? 차근차근 떠올려보자. 일단 저번주 서울시향 마스터 클래스와 다른 점은 참관객 의자 앞에 보면대가 군데군데 놓여 있었다는 점이다. 악보도 없고 악기도 다룰 줄 모르는 입장에선 순간 어디 앉아야 되나 당황했지만 언제 또 보면대를 마주하는 방향에 있어보나 싶어서, 아무 자리나 털썩 주저앉았다. 클래스가 진행되며 쭉 둘러보니 악보에 메모를 해가며 듣는 관람객이 눈에 띄었다 (이 용도였구나)
마스터 클래스를 세 번 정도 가보니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여기는 단순히 기술적인 테크닉을 익히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활을 긋고 건반을 누르는 것에 압도된 연주자들의 시선을, 조금 더 ‘음악’ 안으로 되돌려주는 환기의 시간 같았다. 우리가 왜 이 악기를 쥐었는가? 초심으로 돌아가보자. 작곡가의 ‘음악’을 내 머리 위로 태워 올려 보자. 이런 느낌이 더 가깝겠다.
어떤 장르든 외부인의 입장에서 특정 분야를 마주하면 마냥 아름답고 평화롭게 보이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도서관 사서라면 무조건 책을 좋아할 것이라는 착각처럼) 하지만 막상 스스로 악기를 쥐었을 때, 내가 듣고 바라는 소리를 열 손가락으로 펼쳐낸다는 건 생각만큼 낭만적인 일이 아닌 것 같다. 보석 하나 세공하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연주는 결국 나 자신을 갉고 연마해야 하는 과정이 아니던가? 매일 연습한다고 해서 그때그때 결과물을 돌려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특정 유전자를 물려받아—예컨대 질릴 줄 모르는 근성, 타고난 연주 센스, 감정 표현 능력—자유자재로 음악과 음악 사이를 오갈 수 있는 게 아닌 이상, 단지 바란다고 해서 '소원'이 이루어지지는 않는 게 이 장르겠다.
어제 친구가 추천해 준 『감정, 이미지, 수사로 읽는 클래식: 듣는 사람을 위한 가이드』를 읽었다. 서두부터 ‘공명’하는 문장들이 많았다. ‘불협화음’ 전 파트까지밖에 읽지 못했지만 꽤 재미난 부분이 많았다.
사실 음악이 하는 일 중 가장 근본적인 것은 ‘인간의 감정을 모방’하는 것이다. 음악은 희로애락을 느끼며 뱉어내는 인간의 목소리 톤이나 말의 빠르기, 감탄사 등을 직접적으로 흉내내기도 하고, 대상이 되는 감정이 지닌 몇몇 특질을 크로키 화가처럼 예리하게 잡아내어 음악의 역사 창고에서 꺼낸 선율, 화음, 리듬 등의 도구로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 어디에도 명문화되지 않은 채로, 지금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음악은 각자의 마음속에 발산적인 여러 감정들을 불러일으켜, 나에게 각별한 이야기로 해석되기도 한다. (16p)
악기를 다루는 연주자들—기본기를 마치고 스스로 소리를 뻗어낼 줄 아는 수준에 다다른—은 튜브 형태의 아크릴 물감을 들고 있는 것 같다. (음표를 색칠해야 하지 않겠는가) 한 손에 채색 도구를 쥔 채, 악기 하나를 다뤄내는 것이다. 사실 현악기만큼 예민하게 사람의 심정을 반영하는 악기가 또 있을까 싶다. 투영되는 것이 연주자 개인의 현재 심리 상태일 수도 있지만, 우선적으로는 작곡가가 곡 속에 의도한 특정한 ‘캐릭터’를 그려내야만 한다. 그렇다면 다시 재정비해보자. 한 사람이 재료도 손에 쥐었고, 주제도 정했다. 루트는 악보로 익혔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바로 도화지를 꺼내는 일이다.
형태 없는 붓이 닿는 면은 어디에 있을까? 텅 빈 공중 위다. 펼쳐지는 위치는 매번 다르다. 연주에 귀 기울이다 보면, 곡마다 소리의 방향성이 다르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뒤에서 앞으로 밀려올 때도 있고, 무대 앞쪽에서 확 띄워지는 순간도 있으며, 점점 더 멀어지는 형상을 그려내기도 한다. 다만 어떤 방향이든, 어떤 형태이든, 소리라는 물감을 앞세워 '무언가'를 펼치기 전에 먼저 투명한 도화지를 둥— 꺼내야 한다. 일전에 피아노 마스터 클래스에서는 소리 하나하나가 건반 위로 퉁— 떠오른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이번에는 그 떠오른 것을 받아내는 받침 종이까지 함께 명징하게 들어 올려져야 한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물감을 들었는데, 도화지가 없다면?
종이를 수면 위로 들어 올리지 못한다면?
연주자는 그림을 채워낼 물감 하나를 쥐고 있다고 했다. 다만 이것을 어디에 흩뿌리느냐에 따라 그것이 작품일지, 허우적대는 행동일지가 결정된다. 아무리 훌륭한 작화라도 도화지 위가 아니면 정해진 시간 안에 진면모를 알아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관중 앞에서 종이를 어떻게 펼쳐야 할까? 의외로 간단하다. 첫 음부터 공간을 좌우하면 된다. 가장 모서리 꼭짓점을 콕- 짚으며 “나는 이곳에서 시작하겠다”라고 말해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클래식의 선율은 기본적으로 둥-둥- 떠다닌다. 천장과 바닥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악기와 악기 사이, 공기의 파도 사이를 여유롭게 오간다. 모든 면이 캔버스가 될 수 있다. 그 위에 웅- 하고 떠 있는 소리 선을 올려놓고, 음을 악으로 바꿔 파동 치게 만들어야 한다. 클래식이라는 장르가 ‘어렵고, 낯설고, 교양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고정관념을 깨부수기 위해서는, 훨씬 더 직접적이고 원초적인 파동으로 귓속을 때리고, 흔들고, 울려야 한다. 그러려면, 청중을 몰입시키기 위해 공기 면을 확- 휘어 잡아당길 줄도 알아야 한다.
이 날은 바이올리니스트 제임스 에네스가 마스터 클래스를 진행했다. 사실 어떤 연주자인지는 잘 모른다. 실연 영상도 본 적 없고, 유일하게 들어본 앨범은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의 녹음이었다. 어찌나 음정이 또렷하고 선명한지, 애플 클래시컬 뮤직 앱에서 추천으로 제일 먼저 떴던 버전이었다. 이번 클래스는 저번보다 통역이 거의 없었지만, 참가자들은 흐름이 끊기지 않은 채 조언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정확히 이해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주된 조언은 대부분 음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특히 음표와 음표 사이를 어떻게 읽어내느냐의 영역에 집중된 것 같았다. 연주자들이 어떤 레퍼토리를 들고 왔었던가?
차이콥스키 –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작품번호 35, 제1악장
(Tchaikovsky –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35, 1st movement)
비에니아프스키 – 폴로네이즈 D장조, 작품번호 4
(Wieniawski – Polonaise in D major, Op.4)
왁스만 – 카르멘 판타지
(F. Waxman – Carmen Fantasy)
대체로 해석의 영역에 대한 조언이 많았다고 생각했다. 악보와 대화를 나누고, 왜 이 부분은 이렇게 연주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질문해 봐라. 피아노와의 케미스트리를 고려하면서도, 부드럽게 볼륨을 주면서 동시에 청중을 몰입시키는 포인트도 잊지 말아라. 주로 이런 식으로 설명하며, 어디서 힘을 주고 풀어내야 하는지를 짚어주었다. 직접 바이올린을 들고 시범도 보여주었는데, 확실히 도화지가 천공 몇 미터 위에 더 둥둥—띄워진 사람의 소리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내 무릎쯤에 쨍하게 놓여 있던 수성펜이, 한껏 두둥실—뛰어 올라와 머리 위로 솟구쳤다. 아마 멍하니 무대 위를 관망할 때쯤의 높이였던 것 같다.
클래스를 지켜보며 문득 들었던 생각은, 연주를 할 때 풍선 하나를 둥둥—띄워놓은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걸까? 하는 물음이었다. 연주자는 기쁨과 자연의 소리를 들려줘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정해진 답이 없는 영역 아닌가. 나름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해석해보아야 하는 측면이겠다. 확실히 프로 연주자들은 누적된 경험 덕분인지, 강약 조절의 중요한 지점을 감각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활과 말소리가 오가는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다 보니, 또 하나의 궁금증이 떠올랐다. 소리를 강하게 내뱉는 게 어려울까, 아스라이 사그라들게 하는 게 더 어려울까..? 모르겠다.
이래나 저래나 당장 내게 대답을 알려줄 해답자는 없기 때문에 클래스에서 목격한 장면이나 그려보는 게 낫겠다. 대체로 내가 이해한 것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정확성은 보장할 수 없지만… 일단 대충 이렇게 하면 꽤 좋은 연주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말은 쉽다) 자, 갑니다. 제임스 에네스 연주가가 전해준 연주 꿀팁들은 바로 아래와 같다.
빌드업을 충분히 쌓고, 텐션을 유지하면서 좀 더 깨끗하게 싱글 노트를 살리며, 때마다 템포를 달리해보자. 넓게 넓게 페인트를 바르듯 연주하다가도, 톡톡 찍어 누르듯 강조점을 줘봐라. 카르멘을 연주할 때는 확—청중을 놀라게 할 듯 돌변해 보자. 어떤 씬(scene)이 시작되며 캐릭터가 딱! 등장하는 느낌으로, 마치 뮤지컬 <시카고>처럼 말이다. 약간 스티프(stiff)한 표현보다는 좀 더 음악적으로(울렁울렁) 표현하며, 줄다리기를 하듯 드라마를 만들어내자. 소리를 뒤로 물러나게 하지 말고, 앞으로 확 다가오게 하며, 음악적 바이브를 타면서 조금 더 센시티브(sensitive)하게 감정 표현을 해보자. 활을 현 위에 확 쓸고 내려갈 때는 바닥을 딛고 몸에 힘을 실어야 한다. 크런치(crunchy)하고 펑키(funky)하게도 해보고, 소리를 굴리며 롤링(rolling)하거나, 아치(arch)를 만들면서 미스터리(mystery)한 느낌도 시도해 보자. 코지한 안단티노(cozy andantino)도 잊지 말고. 악보에게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들어보자... 이렇게만 하면 데뷔 가능하다! (할 사람?)
이쯤 되니 다 필요 없다. 연주자들은 연기 학원에 가야 하는 게 분명하다. 작곡가의 의도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선, 확확—다르게 표현해 내야 하는 감정 단위가 너무 세밀하고 자잘하다. (미치겠다!) 이쯤 되면, 누가 더 욕심을 버리고 쏟아내려오는 선율을 잡아챌 수 있는지의 문제 같다. 진짜 예술가들의 ‘파고드는’ 세계라는 게 확—체감된다. 학습의 영역과는 완전히 다른 결의 느낌이다.
연주자들은 대부분 ‘악보’와 직면하는 일상이 계속일까? 또 궁금증이 생겨난다. 담백하게 기록되어 있는 악보를 보고 다채롭게 표현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분석해야 하는 매일이라면, 주변 환경 자체가 굉장히 제한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뭐가 됐든, 연주를 다수의 마음에 스며들게 하려면, 아름답다고 여기는 소리 표현을 충실히 이행해야 하고, 동시에 나만의 해석을 청중에게 새롭게 선보여야 하니… 매 순간이 열린 결말이라는 사실은 참 어렵다. (감당 가능?)
어떤 연주자든 활로 첫 음을 긋는 순간, 수평선 위로 선 하나가 쫙—두께감 있게 펼쳐질 것이다. 박스테이프 넓이만큼 길게 뻗은 그 선을, 어떻게 다뤄낼 것인가? 어떤 방식으로 확장해 나갈 수 있을까? 소리가 활털을 닮도록 만들어야 하는 걸까? 누가 먼저 이 자신을 내려놓고, 무대의 중심점을 소리 자체로 넘겨줄 수 있을까? 내가 직접 연주하는 입장이 아니니, 이래저래 생각만 늘어트리며 추측만 해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바삭바삭하게 쌓여가는 바보 같은 호기심이다.
돌아오는 길목에 임동민 바이올리니스트 버전의 사라사테의 <카르멘>을 들었다. 얇고 기다란 바늘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그래, 난 이 소리에 당겨졌던 것 같다. 이쯤 되면 클래식을 ‘좋아한다’고 말하기보다는, 좋아하는 소리 표현이 가득하고, 인간의 목소리가 간접적으로 담겨 있으며—이제는 직접적인 건 조금 아쉽고—책을 읽듯 해석의 여지가 존재하는 이 장르가 마음에 들었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