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번이랑 노닥거리며
딱 일주일 걸렸다. 기분이 순식간에 가라앉는 것도, 확 띄워지는 것도 모두 한순간의 계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어쩜 이렇게 편차가 심할까. 다만 내가 금방 마음 정리를 끝내겠다고 일찍이 다짐했기에, 지금 이렇게 여한 없는 상태로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는 것 같다.
밤 11시쯤 되니 눈이 무겁다. 집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을 땐 어떻게 그렇게 말똥말똥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생체 리듬이란 참 묘하다. 한 번 정해지면, 커피를 마셔도 결국 그 패턴대로 흘러간다.
오늘은 오랜만에 엄마와 저녁 산책을 했다. 지난 몇 주 동안은 하고 싶은 걸 우선하느라 거의 매일 11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갔다. 별로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가끔 재미있는 공연을 보고, 마스터클래스를 구경한 게 전부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정신없이 바빴던 기분이다.
진짜 인생은 알다가도 모른다. 작년의 내가 이렇게 다양한 것들에 궁금증을 품고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신기한 일이다. 역시 사람은 자신이 계획한 대로, 선택한 대로 인생이 흘러간다. 만약 내가 클래식이 아니라 재즈나 다른 분야로 손을 뻗었다면, 과연 무엇을 좋아했을지 궁금하다.
올해는 유독 빠르게 지나가는 느낌이다. 하루하루 글을 손안에 붙잡아 두며 시간의 흐름을 조금이라도 늦춰보려 했지만, 어느새 7월이 코앞이다. 역시 하고 싶은 건 그때그때 해야 한다.
물론 그 덕에 집에 맨날 늦게 들어가서 “집이 싫으냐”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도 한밤의 사치를 부리는 중이니까. 이 야심한 시간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다. 커피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내 몸을 통과하는 그 순간만큼은 확실히 나를 각성시켜 주는 게 좋다. (체력이 안 좋은 건 맞다.)
그렇다면 오늘은 주로 어떤 곡을 들었더라? 곧 줄라이 페스티벌도 시작되니 다른 곡들도 예습해야 하는데, 자꾸 듣던 곡만 반복하게 된다. 나쁜 버릇이 또 도진다. 이러다 며칠 전처럼 벼락치기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최애 연주자의 레퍼토리와는 어느 정도 친해졌지만(한 곡 빼고), 나머지 곡들과는 아직 눈 맞춤이 부족하다. 그래도 쌓여가는 숙제들이 부담스럽진 않다. 어차피 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들이니까. 지금은 저 위에 틀어둔 피아노 소나타를 들으며 글을 쓰고 있다. 물방울이 통, 통, 튀어 오르는 듯한 베토벤의 음악은 늘 적당한 거리에서 사람을 유쾌하게 만든다. 아마 그 곡의 매력을 실연으로 경험해 봤기 때문에, 더 곧장 마음에 닿는 걸지도 모른다.
클래식의 진짜 매력을 알게 되는 전제조건은 의외로 단순하다. 무대 위의 사람, 소리, 그리고 이 자리에 없는 작곡가에게 ‘호감’을 가져보는 것. ‘얼마나 교양 있는 장르인가’ 하며 팔짱 끼고 평가하려는 자세보다, 또는 연주자가 나를 설득해 주길 기다리는 태도보다, 내가 먼저 고개를 들이밀고 손을 뻗을 때 비로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장면을 마주하고, 예상 밖의 나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클래식은 가사가 없는 음악이다. 그렇기에 나는 늘 작사가다. 가사를 붙여주지 않으면, 돌아오는 답가도 없다. 무대 아래에서 내가 충분히 서술하고 사유해 주어야만, 소리가 꽃이 되고 기쁨이 되어 피어난다.
능동적으로 해야만 얻는 게 있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결국 ‘여운’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은 관객이다. 연주자는 무아지경 속에서 활을 그으며 손을 들어내는 순간, 그 여운을 객석에 맡긴다.
공연을 순수한 미소로 바라볼 수 있는 관객만의 특권을 놓치지 않는다면, 분명히 얻는 것이 있을 것이다. 나도 내가 이렇게 하루마다 말을 차곡차곡 쌓아 올릴 수 있는 사람일 줄은 몰랐다. 인생이란, 역시…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 재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