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메가필드뮤직페스티벌 2025
1. 당신이 페스티벌에 가는 이유 - 그 여자 케이팝, 그 여자 클래식
"어, 당장 신청해!" 메가필드 페스티벌 공지가 뜨자마자 머릿속에 떠오른 문장이다. 원래 이 축제를 알고 있었냐고? 아니, 유감스럽게도 그럴 기회는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예술인들은 대부분 순수예술 쪽에 있었고, 즐겨 듣는 가요가 있긴 했지만 실제 공연을 찾아갈 정도는 아니었다.
내 인스타그램도 예술의전당이나 롯데콘서트홀, 각종 독주회 소식을 알려줄 뿐이지 이런 페스티벌은 한 번도 내 피드 위로 띄워준 적이 없다. 그러니, 이 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보자마자, 라인업을 목격하자마자 나는 말벌 아저씨처럼 달려들 수밖에 없었다.
가끔 끊임없이 무언가를 좋아하는 내 성향이 집안 누구에게서 물려온 걸까 궁금한 적이 있었다. 모계일까, 부계일까? 아니면 더 윗대 조상님 중 누군가에게서 대대손손 내려온 ‘덕질’의 유전자일까? 내 추측으로는 가장 유력한 후보가 단연 ‘엄마’다.
물론 부모님 모두 음악을 좋아하시긴 했지만, 매일같이 듣는 정도는 아니고 때에 따라 즐기셨다. 다만 엄마는 유달리 편파적인 취향을 가진 나보다 훨씬 다채롭게 음악 장르를 넘나들며 감상하시곤 했다. 그래서 가끔은 케이팝이나 유명 아이돌 소식을 먼저 접하기도 하고, 내가 모르는 가수를 이미 꿰고 계실 때도 있었다. 클래식의 즐거움도, 케이팝의 환호도 비슷한 농도로 누릴 줄 아는 분이셨다.
일전에 엄마와 산책을 나갔다가 대형 경기장 근처를 지나간 적이 있는데, 그때 딱 싸이가 흠뻑쇼를 하고 있었다. 밤 9시가 넘어서니 공연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려는 듯 노래와 함께 성대한 불꽃이 하늘 위를 수놓았다. 엄마가 그걸 보자마자 방방 뛰며 "나도 갈래!" 이러셔서 심히 당황했다.
체육 시간에 뜀틀도 제대로 못 넘는 몸치이자, 노래방에서 노래 한 곡 부르지 않는 희한한 방향의 내향형 딸내미에게, 그런 대단한 체력을 요하는 축제라니! 그때는 못 들은 척 얼버무렸지만, 불꽃이 터질 때마다 꺄르륵 웃는 모습을 보며 ‘아, 언젠가 한 번은 가게 되겠구나’ 하는 예감이 들었다.
그런데 하필 딸내미가 클래식을 좋아하는 바람에, 엄마는 예술의전당에 몇 번이나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집에서 한참이나 가야 하는 남부터미널까지 동행해주길래, 아, 화려한 곡이면 괜찮은 건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나랑 같이 있고 싶어서가 이유의 80% 이상을 차지한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아차’ 싶었다.
그래, 몇 번이나 데려간 친구도 결국 이 장르에 안착하지 못했는데. 신나는 라이브 공연을 좋아하는 그녀에게 클래식이 나만큼 즐거울 리 없다는 걸 받아들였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엄마와 클래식 공연을 함께한 게 다섯 번은 되었다. 한 번쯤은 받은 만큼 은혜를 갚아야 하지 않겠나 싶어 늘 계기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었는데, 마침 실내에서 열리는 이 뮤직 페스티벌이 내 곁에 찾아와 주었다.
이 여름에 실내에서 하는 축제라니! 그것도 엄마가 알 법한 가수들이 줄줄이 포진되어 있으니 모든 게 완벽하다. 은혜 갚는 호랑이가 될 시간이다.
사실 전전날까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어느 좌석에서 주로 관람할 것인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가 아무 생각 없이 안내 공지 포스터를 살펴봤는데, 스탠딩부터 시팅, 피크닉존까지 너무 다양했다. 거기다 식음료존도 따로 있고, 구역별로 반입 불가능한 물품이나 좌석에 따라 방석이나 돗자리가 필요할 수도 있다는 걸 뒤늦게 알고 페스티벌에 익숙한 친구들에게 엄청난 자문을 구했다.
몇 시에 킨텍스에 도착할지, 뭘 챙겨 갈지, 어떻게 즐길지… 클래식 공연에만 익숙한 나를 너무 잘 아는 친구들은 “체력 화이팅…” 하며 조언을 건네줬고, 덕분에 각오를 다질 수 있었다.
부모님과 동행하는 축제니까, 피크닉존에서 편하게 누워 맛있는 것도 먹으며 여유롭게 관람하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어딜? 나와 가장 닮은 여성께서는 ‘무대’에 집중하길 바란다는 선택지를 택하셨다.
무대를 집중한다는 것? 그것은 바로 스탠딩석에 있겠다는 것이다! 사실 방문 전까지만 해도 ‘설마 우리가 서서 보겠어?’ 했는데 우리는 거의 오픈런으로 들어가 스탠딩석에서 거의 5시간을 서 있었다. 그만큼 나의 그녀는 공연에 진심이었다.
생각보다 인파가 숨 막힐 정도는 아니었고, 무대 옆 펜스를 잡을 수 있는 위치였으며, 사람들도 꽤 배려 있는 관람 태도로 자리를 지켜주었기 때문에 꽤 괜찮은 스탠딩 환경이었다. 무릎 걱정 없이 편하게 관람하자며 피크닉이나 시팅존으로 무조건 안내해버렸다면 아쉬울 뻔했다. 어느 좌석이든 좋은 자리였지만 가장 현장감을 가져가며 가수들과 소통할 수 있는 건 메인 스탠딩 아니겠는가?
나이가 있든 없든, 그건 아무 의미가 없다. 오늘의 음악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몇 시간의 머뭄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2. 처음, 처음, 처음 - GTX, 킨텍스, 뮤직페스티벌
여러모로, 30일의 메가필드는 내게 여러 가지 처음을 많이도 선사해주었다. 무엇보다 킨텍스역이 있는 GTX를 처음 타봤다! 너무 신기했다. 일산을 이렇게 편하게 올 수 있다니?
일전에 친구로부터 이 열차 덕분에 서울역에 편하게 올 수 있다고 말만 들어봤지, 실제로 타보니까 확 체감이 되었다. 아직 생긴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내부가 아주 하얗고, 에어컨은 빵빵하고, 문은 KTX처럼 한쪽으로 지잉- 열린다.
이 열차 말고도 킨텍스는 물론, 메가필드도 처음 아니던가? 라인업에 인기 많은 뮤지션들이 가득하기에 게이트 오픈 시간 전부터 사람이 많겠거니 싶었는데 역시나 내부가 이미 북적북적 대고 있었다.
아무래도 수백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는 환경이다 보니 티켓 수령 동선에 따라 경호 인력이 배치되어 있었다. 다들 무서운 표정을 짓고 계셨지만, 질서를 위한 것이었고 꽤 댄디한 태도로 통제해주셔서 막 무섭지는 않았다.
우리는 모든 공연을 즐겨보겠다는 결심을 했으니 당연히 오픈런을 했다(!). 10시 40분이 넘어 전시장 안으로 들어오니 스탠딩 구역엔 사람들이 꽤 많이 서 있었고, 피크닉존엔 돗자리를 깐 사람들도 많았다.
오늘 하루 종일 무언가를 먹을 시간은 없을 거라는 걸 둘 다 예견이라도 한 듯, 공연 시작 전 식음료 코너에서 맥주와 새우강정을 샀다. 티켓은 내가 쐈으니 맛있는 건 엄마가 사주겠다고 멋지게 말해주셔서 즐겁게 얻어먹었다. (얌얌, 레몬크림 새우 맛있었다)
우리가 마지막 강정을 입에 넣고 정리하는 타이밍에 전광판이 번쩍였다. 바로 시작하는가 싶었는데, 맥주 광고 영상이었다. 뮤지션들이 등장하기 전에 꼭 저 광고가 나오는 바람에, 끝쯤엔 멘트를 외울 뻔했다.
나의 첫 페스티벌 무대를 연 첫 번째 뮤지션, ‘공원’이 등장했다. 이름부터 특이해서 어떤 음악을 할지 궁금했는데, 매력적인 보이스를 가진 분이었다. 음악도 이번 무대로 처음 접했는데, 따뜻하고 사포질된 듯한 로즈빛 음색이 밴드 사운드와 만나니 상당히 좋았다.
30일의 기억을 되짚어보는 지금 생각해보면, 나에게 가장 음악적으로 강한 호기심을 준 가수였다. ‘문’의 가사도 직관적이었다. “내 모든 것을 모두에게, 모든 것을 모두에게…”
요즘 아침저녁으로 클래식을 듣지 않을 때 들을 노래가 필요했는데, 딱 좋은 플레이리스트가 되어줄 것 같았다. 공원의 무대가 끝나고 나서야, 오늘의 페스티벌이 생각보다 꽤 괜찮겠다는 예감이 슬쩍 스며들기 시작했다.
3. 스탠딩, 그것도 펜스
왼쪽 어깨뼈에서 오른쪽 어깨뼈까지
음원으로만 듣다가 눈앞에서 기타와 베이스, 드럼의 리듬 위에 보컬의 목소리와 노래의 가사가 얹히는 장면을 길게 마주하니, 비트의 ‘생동감’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재미가 상당했다.
밴드의 압도적 사운드와 귀로 내려꽂히는 음성이 어디에 꽂혔더라? 태양이 햇볕을 내리쬐듯, 소리가 왼쪽 어깨뼈에서 시작해 명치 아래로 쭉 내려갔다가 다시 오른쪽 어깨뼈 중앙으로 도달한다. 그 좁은 영역을 중심으로 쿵—쿵—쿵—, 방망이질하듯 두드린다.
그 쿵—쿵 거림이 내 갈비뼈까지 깊게 박혔다. 바닥은 발바닥을 타고 올라와 드럼이 가진 위력을 실감하게 했다. 이래서 내 친구들이 밴드 음악에 빠질 수밖에 없었구나, 확실히 느꼈다.
여태껏 내가 만난 클래식은 대부분 한 줄기 소리가 내 안으로 스며들거나, 조용히 끌고 가거나, 멀어져 사라지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밴드의 사운드와 보컬의 힘은 달랐다. 침투하는 게 아니라 전면 공격. 얇게 스며드는 게 아니라 압도해버린다.
발라드도 마찬가지였다. 클래식이 내 안으로 스며드는 길이었다면, 오늘의 소리는 나를 앞으로 밀어낸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화려하고 큰 즐거움들이 가득했다. 스피커는 너무 일을 잘하고, 가수들의 발성은 너무 짱짱해서 귀가 얼얼할 정도의 쾌감을 불러온다. 거기다 무대 조명은 또 얼마나 화려했던가.
곡의 무드에 따라 일렬로 놓인 둥근 조명들이 눈이 아찔해질 만큼 다양한 색감으로 관객석을 비추며 분위기를 바꿨다. 후반부엔 타이밍에 맞춰 버블 같은 것들이 날아와 눈이 내리는 듯한 풍경까지 더해졌다. 손으로 톡— 건드리면 연기가 되어 스르륵 사라져버리는 걸 보고 나도 터트려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내 자리까지는 닿지 않았다.
분위기를 달군다는 것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건 가수들의 역량이었다. 30~40분, 혹은 60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더도 덜도 말고, 필요한 만큼 분위기를 확! 뒤집어야 했다.
자신을 아낌없이 내놓아야만 관객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는 게 보였다. 사실 내가 보던 유튜브 영상은 대부분 3~4분짜리 한 곡뿐이었으니,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무대를 이끄는 공연을 목격한 건 처음이었다.
관객석은 강한 에어컨 덕분에 모여 있어도 시원했지만, 무대 위 사람들은 한 곡만 지나가도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화면으로 보는 그들과 눈앞에서 마주한 실제 퍼포먼스의 질감은 전혀 달랐다.
나랑 체격이나 맵시는 전혀 다를지언정, 같은 인간이 저런 고음과 저런 음색, 저런 춤을 다 해낸다고? 내가 갖지 못한 걸 저렇게 완벽히 해내는 걸 눈앞에서 지켜보는 맛이 있었다. (다시 태어난대도 저렇게 상체와 하체를 따로 못 움직일 거다)
줄기와 온통의 차이
클래식 연주자들도 온몸으로 연주하지만, 아무래도 정적 속에서 음을 피워내야 하고, 공연장 전체의 무드는 ‘축제’라기보다 ‘소리’와 ‘곡’에 집중하는 편이다.
그런데 전신으로 춤을 추고, 호흡을 나누며, 댄서들과 함께 분위기를 ‘달궈내는’ 퍼포먼스는 전혀 다르다. 진짜 온몸이 땀에 젖는다. 보는 나까지 흥이 오를 정도로 무대를 이리저리 누비며 뛰어오르고, 숨가쁘게 노래하는데, 그 장면이 정말 신기했다.
클래식은 소리를 내면 깊숙한 곳에서, 손끝에서 끝까지 끌어올려야 하는 길 아니던가. 보다 높은 소리를 기대하는 관객에게 보답하기 위해, 다수가 연주자를 위해 약속한 아주 고요한 침묵 속에서 작곡가의 의도와 자신의 해석을 전달해야 한다. 그러니 누구보다 집중하고, 그 순간에 몰입해내야 한다.
심장에 박힐 것인가, 머리에 각인될 것인가?
페스티벌의 뮤지션은 어떤가. 자신의 존재를 그날의 관중에게 각인시키면서도, 동시에 그들이 보내는 환호성과 기대감에 충분히 응해내야 한다. 그런 역량을 갖춘 사람임을 무대 위에서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침묵과 환호, 형태는 다르지만 그 안에 담긴 기대감의 밀도는 분명 비슷하다. 다만 음악이 온전히 전달되었을 때, 몸에 새겨지는 자리는 조금 다르다. 하나는 심장에 정통으로 박혀버리고, 또 하나는 머릿속에 길게 각인되어 그 쿵—쿵—거림을 잊을 수 없게 만든다. 아, 이게 바로 ‘즐거움’일까?
4. 빼닮은 얼굴
높게 떠오른 반딧불이
음악이 아니더라도 나의 시선 안에는 즐거움이 차고 넘쳤다. 무엇보다 뮤지션마다 무대에 오를 때마다 높이 떠오르는 응원봉들이 생각난다. 분홍빛도 있었던 것 같고, 하늘색은 분명히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가 등장하면 사람들은 손을 높이 들어 올려, 무대가 끝날 때까지 그 팔을 내려놓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연주자가 공연할 때 보낼 수 있는 건 오직 긴 시선과 마음뿐인데, 여기서는 소리도 지르고, 이름도 외치고, 보석처럼 반짝이는 응원봉을 흔들어 그 사람의 시야에 담길 수 있었다. 이 점이 꽤 부러웠다.
관중석에 레이저 조명이 가득 스며들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어둠이 내려앉은 가운데 동그란 응원봉들이 몇 개씩 위로 떠올랐다. 얼마나 예쁜 반딧불이던지. 동그란 빛들이 한꺼번에 피어오르자, 객석 위로 작은 별무리가 생겼다. 같은 색의 박동을 함께 나누는 시간. 그 장면을 한참이나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사랑스러운 입꼬리
반딧불이 말고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또 하나 있다. 가수 홍이삭이 기다란 목소리로 노래하던 순간이었다. 나는 그때 반쯤 죽어 있었다. 다리도 아팠고, 사람도 점점 많아져서 ‘어떻게 버티지…’ 하고 있는데, 반대편 펜스 너머로 한 여성분이 보였다.
한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시선은 무대를 향한 채 맑게 웃으며 노래를 따라 부르고 계셨다. 입술은 자신의 가수가 써내려간 가사를 조용히 음미하고 있었다.
그 표정이 너무 밝고 예뻐서, 엄마도 공연을 보다가 내 귓가에 툭툭, “너도 너 최애 볼 때 저렇게 보지?” 하고 물으셨다. 깔깔 웃으며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 너머로 이삭 씨의 영문 이름이 적힌 검정 슬로건을 든 사람들도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 홍이삭 씨는 정말 깊은 사랑을 받고 계시는구나,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름을 부르는 소리와 흔들리는 조명빛이 겹쳤다. 사랑은 문장보다 먼저, 표정으로 형체를 가지는구나.
‘브라보’의 여러 형태
클래식 공연장에서 최고의 환호성은 무엇일까. 끝없이 이어지는 ‘브라보’와 긴 박수가 있겠다. 발레는 또 어떤가. 무용수들이 기가 막힌 기교와 무드를 보여주면 환호성과 함께 짧고 강렬한 박수가 터져 나온다.
일전에 봤던 창작뮤지컬은 또 달랐다. 관객들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긴 여운을 함께하는 듯한 박수를 보냈다.
이번 페스티벌은? 그냥 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방방 뛰고, 손을 들고, 환호성도 마음껏 내지른다. 침묵 속의 브라보와 함성 속의 브라보는 모양만 다를 뿐, 결국 같은 자리에 닿는다. 어떤 형태든 상관없다. 가득하기만 하면 된다!
나도 좀 더 적극적으로 오늘 공연의 완성도를 표현해야 할까 싶지만, 했다간 분명 이불킥을 면치 못할 테니… 오두방정 떨고 싶은 마음은 그냥 여기 글에나 담아두겠다. (하하)
5. 함께라는 것
가족, 친구, 나, 연인, 우리
사실 가장 놀랐던 건, 이 축제 관람객들의 다양성이었다. 내가 상상 속으로 그렸던 축제 구성원은 ‘친구’들이나 ‘동일 연령대 모임’ 정도였는데, 아니었다.
친구는 물론, 가족, 혼자 온 사람, 연인까지 다양했다. 조그만 꼬마 아기들이 엄마 아빠 손을 꼭 붙잡고 게이트를 지나가는 모습을 보며, ‘아, 이건 진짜 모두가 함께 즐기는 축제였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실내에서 진행된 덕분에 참여가 더 수월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날만 해도 밖은 30도가 훌쩍 넘는 날씨 아니던가. 물론 야외에서 즐기는 맛도 있지만, 불쾌지수를 낮추고 애초에 불화의 싹을 틔우지 않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시원한 데서, 탄산 가득한 맥주를 마시며 무대를 구경하는 재미. 그걸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
가장 사랑의 순간, 아야!
압도적인 팬덤을 자랑했던 건 단연 마지막, god(지오디)의 무대였다. 헤드라이너였던 그들의 공연이 시작되기 전, 10분 남짓 쉬는 시간이 있었는데 밴드가 사운드 체크를 하자마자 팬들이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어찌나 다들 가사가 정확하고, 음정까지 완벽한지. 팬들 사이에 껴 있던 엄마와 나는 덩달아 웃음을 터뜨렸다.
곧, god의 등장을 알리는 NEXT 전광판이 번쩍 뜨자 열화와 같은 환호성이 쏟아졌다. 무대에 헤드라이너가 등장하는 순간, 공연장은 단숨에 끓어올랐다. 수많은 응원봉들이 하늘 높이 들어 올려지는 장관이었다.
손호영 씨가 “다 일어나세요!” 하고 외치자, 앉아 있던 시팅존의 팬들까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를 즐기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분위기에 순간 당황했는지, 반대편에서 멍한 얼굴로 앉아 있던 꼬마아이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 모습이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같은 색의 응원봉을 들고, 해사한 얼굴로, 마음으로, 눈으로, 높이 들어 올린 응원봉으로 사랑을 보내는 모습. 그 장면이 너무 예뻤다. 너무 예뻐.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최애’라는 단어, 정확히 무슨 뜻일까? 궁금해져 검색해봤다. 뜻은 의외로 단순했다. 담백하고 분명하다. ‘가장 사랑함.’
그래, 결국 가장 사랑하는 것이다.
너와, 우리와, 이 순간을!
아야!
갑자기 무슨 ‘아야’냐고? 무릎이 너무 아팠던 우리 모녀는 일어서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뒤에 서 계시던 팬분의 응원봉에 머리를 한 대 맞았다. (고의성은 없고, 누가 봐도 실수였다)
순간 아파서 맞은 곳을 부여잡았지만, 웃음이 났다. 내 잘못 아니던가? 애초에 일어났으면 맞을 일도 없었을 텐데. 덕분에 한 번 웃고, 기분 좋게 공연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6. 모듬순대도 하나!
밤 11시의 대소동 - 아직도 얼굴이 무거운 오후 3시
오전 11시에 새우강정을 나눠 먹고, 늦은 저녁으로 뭘 먹을지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순댓국집으로 향했다. 웃기게도 식사는 두 명이 안 했는데, 입이 심심한 나머지까지 합세해 오랜만에 밤 11시의 야식 대소동이 벌어졌다.
오랜만에 가족 외식이 이런 야밤이라니! 다 같이 건강 관리한다고 야식을 끊은 지 꽤 됐는데, 찹쌀순대까지 야무지게 추가해 먹었다.
먹고 나서 동네 한 바퀴를 돌긴 했지만, 늦잠을 잔 다음 날 아침 8시에 눈 위에 명란이 하나씩 얹혀 있었다. 오랜만에 이런 붓기는 참… 이 글을 쓰고 있는 오후 3시까지 얼굴이 무겁다.
원래 잘 먹은 다음 날은 더 잘 먹지 않던가? 먹고 싶었던 과자도 있겠다. 오랜만에 집에 있으니 맛있는 걸 해주겠다는 엄마의 회유에 넘어가 마트에 다녀와 간식도 사고, 밥도 양껏 먹었다.
무릎 상태는 어떤가? 생각보다 괜찮다. 아, 그래도 스탠딩은 정말 쉽지 않은 것 같다. 한자리에 서 있으려면 무대 끝에 내 최애가 있어야 버틸 것 같다... 클래식에서 스탠딩존 생기면, 나랑 꼬마아이 몇 명만 서 있는 거 아니야? (깔깔—)
결론, 어디든 좋겠다
꽤 즐겁고 생각보다 다리도 덜 아팠던 윤택한 토요일이었다. 나를 가장 닮은 얼굴의 엄마와 내가 근래 가장 많이 지었던 표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의 기쁨을 오래오래 바라볼 수 있어 좋았다.
스탠딩이든 시팅이든, 클래식이든 페스티벌이든 — 결국 누군가를 ‘가장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 아니겠나. 그러니 다들 열띤 응원을 하실 때는, 빼지 말고 함께하는 게 중요하다. 왜냐고? 나처럼 낮은 위치에 있다가 머리를 맞기 싫으면! (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