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게 보내는 편지
돌아보면 그렇다.
나는 긴— 편지지가 필요했다.
내가 왜 브런치를 시작했더라. 지금이야 다수의 수신자에게 글을 발송하는 일이 익숙해졌지만,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된 주 목적은 나를 위한 ‘편지’ 한 장 때문이었다. 결국 글을 쓴다는 건 ‘타인’의 인정보다 이 글을 담아내는 나 자신을 가장 크게 위로할 문장을 스스로 써내려가기 위함이 아닐까.
언젠가부터 글을 통해 누군가에게 ‘선물’이 되고 싶었다. 클래식을 좋아하게 되면서 알았다. 내가 본 시야 그대로를 이 하얀 페이지 안에 에세이 형태로 따닥-따닥- 남겨두면, 누군가의 마음을 환-하게 밝힐 수 있음을. 아, 글을 쓴다는 건 나를 위하기도, 너를 위하기도 하는구나. 그 모든 마음의 시작을 ‘브런치’에서 건져냈다.
가만히 키보드 위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니, 당신께서 내 삶을 바꾼 것들이 끝없이 많다. 나는 브런치를 통해 문화예술 전문 홈페이지의 정식 에디터가 되었다. 나를 칭할 수 있는 이름을 하나 더 얻은 것이다.
그 이름은 재미난 역할을 수반했는데, 내가 보고 싶은 공연에서 ‘봐야만 하는 공연’을 만들어냈다. 공연을 하나 보면 리뷰를 쓰겠다는 나 혼자만의 약속이 타자와의 약속으로 확장되며, 내 삶의 쳇바퀴가 새롭게 리뉴얼된 것이다. 무엇보다, 내 글을 기다리는 사람이 생겼다. — 적어도 한 사람은!
글을 통해 작가와 에디터라는 직함까지 얻게 되면서 신기한 말들을 많이도 들었다.
“잘 읽었어요.” “간간히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해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길게 써요?” “너무 어려워서 못 읽겠어요.”
쓰지 않았다면 절대 만나지 못했을 단어들과, 그 단어를 건네주는 사람들과 많이도 인사를 나눴다.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한 발자국씩 가까워졌다. 이곳이 아니었다면 어찌 이뤄냈을까?
깨달은 것도 지독히 많다. 마음을 담는 수단으로 그림이 전부가 아님을 알았다. 마감 기한의 위대함을 체험했다. 글쓰기가 나를 탈진시키는 일이자 동시에 살아 있게 하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글을 쓴다는 게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냥 쓰다 보면 쓰이는 것임을 알았다.
그리고 여전히 알지 못하는 게 너무 많다. 글은 써도-써도- 어렵다. 매번 시작은 두렵고, 수정은 성가시며, 오타는 끝없이 이어진다. 그럼에도 내가 무엇을 쓰게 될지 기대되는 ‘내일’을 갖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반드시 써야만 하는 사람이 되었다.
문득, 브런치 작가에 합격해놓고 오랫동안 방치했던 시간이 생각난다. 앱은 삭제하지 않고 길게 남겨두었는데, 시기별로 끊임없이 알림을 보내며 “작가님~ 글 쓰세요~” 하던 게 떠오른다. 참 웃겼다.
그렇게 쓰지 않는 개인들을 포기하지 않으니, 이곳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기 보따리를 풀어놓는 것 아닐까. 나도 그렇다. 이 공간이 아니었다면 내가 이렇게 말이 많은 사람인지 절대 몰랐을 거다. 이 공간이 나를 잊지 않았기에, 나 역시 이 곳을 잊을 수 없었다.
어디, 마지막으로 가장 큰 자랑 하나 해볼까. 나는 내가 쓴 글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세상에 알렸다. 클래식이라는 이 한정되고 매니악한 분야에서,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직접 다가가 먼저 손을 건넸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내 시선 안에서 풀어냈다.
그들의 연주와 이야기는 이 온라인이라는 세상에 영원-히 추억되었다. 그것도 내 마음 안의 것들로! 얼마나 기쁜 일인지 아시는가? 누군가의 무의식 속에 피어난 마음을 내가 고이 모셔다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내려놓았다. 글을 쓰며, 클래식을 들으며, 이 세상의 것들에 손가락을 톡톡- 두드리며 나는 가장 중요한 기쁨을 알았다. 뭘까?
타인을 비추어 나를 빛내는 즐거움. 그래, 바로 이 것이다. 엇, 그렇다면 나는 누가 비추어주었던가? 멀리 갈 필요 없다. 여기 있지 않은가? 브런치라는 온온한 등대가.
나는 오늘도 이 품 안에서 길게도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클래식이라는 좁은 세계에서 세상을 두드리는 글을 쓰고 싶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