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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아호를 좋아하세요?

SAARIAHO: NOCTURNE FOR SOLO VIOLIN

by 유진


감상을 위해 특별한 지식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음색, 리듬 등 각 요소에 치중된 작품이기 때문에, 느끼는 바가 사람마다 다를 텐데, 그저 그대로 받아들이면 좋을 것 같다. - 임동민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받아들였는가? 사실 이 곡은 레파토리를 예습하면서 가장 직관적으로 강렬하고, 특색 있다고 느꼈던 곡이었다. 전형성에서 벗어나, 그 흐름이 존재할 수 있는 근원적인 소리에 집중한 클래식? 그게 또 녹턴? (제목도 알고, 딱 들으면 모두가 다 아는 그 곡인가 싶겠지만 아니다.)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구누구의 녹턴이다라고 명명하는 것만으로도 흥미롭지 않은가?


그렇다면 (내가 아는) 임동민 바이올리니스트의 첫 번째 녹턴은 무엇일까? 아, 무려 사리아호다.

(정말! 내가 못 살겠다!) 그의 연주나 해석을 특정 지을 수 없게, 어떤 스타일이라도 확정적인 편향된 생각을 가질 수 없게, 소리의 근원을 탐구하는 쪽을 택하셨다. 난 또 미지의 세계에 던져졌다. (;;;)

핀란드 작곡가 카이야 사리아호의 '녹턴'(1994)은 가장 현대 음악으로 꼽히는 곡이다.

오히려 좋다. 해석할 여지도, 판단할 필요도 없이 그저 정말 듣기만 하면 된다. 이게 바로 진정한 녹턴이 아닐까. 깊기도 하다. 녹턴의 뜻이 무엇인가? 밤에 어울리는 야행성의 곡이다. 우리의 밤이 모두가 아는 '그' 녹턴처럼 부드럽고 잔잔했는가? 아니다. 오히려 그 무섭도록 가득한 침묵 안에서, 우리는 찢어버리고 싶을 만큼 시끄럽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뒤섞인 번뇌와 고민이 우리를 휘감고, 잡념들이 잠들기를 거부한다. 그 잡념을 잔잔한 선율에 맡기기엔 너무 날것이고 지나치게 신경질적이라 쉽게 잡히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근원을 냉정할 만큼 도려내야 한다. 내 생각보다 더 무섭고 차가운 것으로 찢어내버려야 한다. 그 역할을 이 곡이 해낸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무서운, 더 잔인한 소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시키며, 내가 하는 모든 것의 무형성을 일깨운다. 그저 소리의 존재 여부를 확인시켜주는 행위로서, 나는 이 곡이 '녹턴'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너의 잡념이 얼마나 가치 없는지, 너는 그저 인간답게 잠에 들라는 일침을 가하는 이 곡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야상곡이 아닐까. 이 흐름에 따라 내 숨이 내찢겨 지다보면, 어느새 아침이 올 것이다.




작은 들이쉼과 뻗어오는 직선, 하지만 야나체크와는 다르다. 야나체크가 조금 더 밀도 있고 분명한 아랫선이었다면, 이 선은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며 뻗어나가다가 다시 자취를 감춘다. 잠깐의 울렁이는 공기의 박동, 불규칙적인 파동이 삐걱거리며 공기를 두드린다. 익숙하지 않다. 또 다른 기울어진 소리, 옆으로 파고드는 넓게 펼쳐지는 영역, 또 사라졌다. 이번엔 마구 파고들어 귀를 찢어내고, 날카롭게 소멸하며, 그 파동들이 하나로 엮여 나를 찔러온다.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알 수 없는 혼란스러운 침잠하는 기분. 조용히 치솟다가 나만 두고 사라지는 흐느끼는 파동의 소리. 사정없이 복잡한 마음이 결로 나를 파고들어오는 둥근 선이 계속해서 움직이고 진동하며 물들여온다. 멀어지는 듯 물러났다. 서서히 얇아지는 소리. 퉁. 두드렸다. 더, 더 멀어졌다. 또 다시 두드려 나를 건드린다. 서서히 소멸하는 듯 마지막 여운의 두드림과 함께 찢어지는 공기의 흐름, 그 찢겨진 것의 흩날림과 이별. 아, 또 나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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