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가식이 좋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무례한 솔직함보다 가식이 좋다. 가식이란 한자어 그대로 ‘거짓으로 꾸미다.’라는 뜻이다. 내 식대로 해석하자면 가식은 그렇지 않은 것을 그렇다고 말하는 것인데, 그 자체가 에너지를 써야 하는 소모적인 일이다. 그 수고로움을 상대방을 위해 애써 해 준다는 것만으로 나는 고마움을 느낀다. 이 팍팍한 세상을 함께 헤쳐 나가는 동지애까지 느껴진달까. 어쩐지 마음에도 없는 소리 잘하는 ‘사회화가 잘된 인간’을 볼 때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그에 반해 솔직함을 핑계로 무례한 사람들을 보면 피가 거꾸로 솟는 걸 느낀다. 지금이야 마주칠 일이 없지만, 예전에 잠깐 일했던 곳의 카페 사장이 딱 그랬다. 50을 훌쩍 넘은 아줌마였는데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아이와 말싸움을 하는 것을 봤을 때 진작 도망쳤어야 했다. 어쨌든 그 사장과 기억나는 대화가 몇 있는데 대충 이렇다.
친구들과 여행을 간다고 해서 “조심히 잘 다녀오세요- 사진도 많이 찍어오시구요.” 라고 했더니 “나는 사진 같은 거 안 찍는다.” 라던가 주변에 새로운 빵집이 생겼다 해서 다른 직원이 “여기 앞에 빵집이 새로 생긴대요.”라고 말을 걸면 “나도 안다.”라는 식으로 상대방을 무안하게 만드는 화법을 썼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의 솔직함을 자랑삼으며 뒤끝 없는 자기 성격을 자랑스러워하는데 어쩐지 공격적이고 적대적인 그들의 말투를 들으면 말의 진위를 떠나 그냥 그 사람에 대한 정이 뚝떨어진다. 사람들이 대화를 통해 기대하는 건 팩트 체크가 아니라 소통이기도 하다는 걸 전혀 모르는 것 같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보려 ‘제 이름이 좀 촌스럽죠?’라 말했는데 거기에 대고 ‘네’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세상을 살아온 걸까?
그 이름이 설령 김삼순이든, 삼식이든 ‘정말 유니크하고 귀한 이름네요’ 라며 센스 있게 받아치진 못해도 ‘아니에요^^;’ 정도의 답은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았으면 한다.
가식인지 아닌지 구분할 능력이 내겐 없지만 설령 그게 거짓이라 하더라도 나는 아무렇지 않다.
사실 나도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중학교 때 엄청나게 쫓아다녔던 그룹 ‘신화 오빠들’이 사실은 담배를 피우는 흡연 집단이란 걸 알았을 때 우리 팬들을 속이고 기만했다며 엄청 실망하기도 했었으니까. 이제 와서 생각하면 이십 대 중반의 청년들이 담배를 피우는 게 왜 실망할 일이었을까 싶기는 한데, 그래도 나름 신화 오빠들이 어린 소녀팬들의 로망을 깨지 않으려 끝까지 담배를 피우지 않는 척 가식을 떨었던 그들의 노고가 이제는 고맙게 느껴진다.
나를 아는 사람이 이 글을 읽는다면, '나 요즘 살쪘지?'라는 말에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은 한번 더 꾹 참고 ‘살찐 데가 어딨어? 아니야 예뻐.’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