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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loura Jan 09. 2023

조카가 눈에 밟힌다

잠든 조카 옆에 앉아 조용히 작별 인사를 건넸다. 곧 만날 걸 알면서도 지금 당장 떠나려니 애틋한 마음에 조카에게서 눈길이 떨어지질 않았다. 도톰한 발바닥에 몇 번씩이나 코를 박고서 꼬순내를 맡아본다. 기저귀 때문에 바스락거리는 작은 엉덩이를 몇 번이나 더 토닥거려 본다. ‘나도 정말 유난이다’라는 생각에 머쓱해질 때쯤 조카의 볼에 살짝 입을 맞추면서도 마른침 꼴깍 삼키며 찔끔 눈물이 나려는 걸 겨우 참아본다.     


눈을 꼭 감은 채 오물거리는 입이며, 목을 가누지 못해 불안하게 흔들리는 고개가 갓 태어난 강아지와 다를 바 없던 아기가 어느새 벌써 19개월이다. 이제는 제법 ‘임모-’ 소리를 하며 나를 보면 반가워할 줄도 안다. 조카가 태어날 때부터 언니네 집에서 지내며 아기가 크는 과정을 함께 지켜보았기 때문일까. 쌍둥이 언니를 닮은, 그러니까 당연히 나와도 닮은 모습 때문일까. 미혼 이모인 내게 조카는 자식과 같다. 


새벽 분유 당번 날마다 조카 발밑에 누워 꼬물거리는 발가락을 쳐다보고 있으면 어느새 동이 트곤 했다. 잘못 눕히는 바람에 분수토를 하던 날 너무 짠하고 미안해서 곁에 제대로 가지도 못했다. 조카가 쪽쪽이를 처음 물던 날, 나는 대구 집으로 내려왔다. ‘눈에 밟힌다’는 표현을 평생 살면서 그때 처음 느꼈다. 집으로 내려오면서도 먹먹한 마음에 조카앓이를 하며 사진첩만 며칠 내도록 뒤적거렸다. 


매년 봄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벚꽃들을 보면 늘 아기와 같다고 생각했다. 벚꽃은 두 눈 가득 아무리 실컷 보아도 늘 아쉬운 마음이 든다. 고작해야 일주일, 운이 좋아 봄비가 늦으면 이주일. 만개한 벚꽃을 오늘이 아니면 못 볼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보고 있으면서도 늘 아쉬워서 나도 모르게 발을 동동 구르게 되는 것이다. 벚꽃처럼 이번이 아니면 또 언제 볼까 싶은 마음. 하루가 다르게 부쩍부쩍 자라는 조카를 보면 기특하면서도 괜히 아쉽다. 꼭 끌어안고 놓아주고 싶지 않은데 요즘은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바쁜 조카를 오래 품에 안는 것도 쉽지 않다.     


어딘가 억울해 보이는 처진 눈이지만 눈동자가 크고 똘망똘망하다. 펭수 입을 닮아 톡 튀어나온 윗입술을 보면 귀여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 아직 혀를 제대로 쓸 줄 몰라서 혓바닥은 강아지처럼 밖으로 내밀줄만 안다. 기다란 목과 목덜미 중간에 깊이 잘 뻗은 라인. 콧대가 없어 짤막하긴 해도 항상 반짝이는 콧방울. 그리고 연두부처럼 하얗게 탱글거리는 볼살은 생각만 해도 미소가 절로 나온다.     


돌잔치 때만 해도 엄마와 이모를 헷갈려서 엄마를 섭섭하게 하더니 이제는 누가 엄마인지 물으면 장난기 가득한 눈빛으로 요리조리 살펴보고는 입가에 띄는 미소를 꾹 참으며 일부러 이모인 나를 가리킨다. 강아지 같던 아기는 어디 가고 이젠 태명을 부르면 어색할 정도로 사람다운 모습을 하고 있는지, 잘 먹고 잘 크고 있는 조카가 기특하고 대견하다. 


나의 조카 사랑을 아는 지인들의 반응은 딱 두 가지다. ‘조카가 초등학교 입학하는 순간 이모를 거들떠보기는커녕 귀찮다고 할 거다.’ 그리고 ‘내가 결혼하고 자식이 생기면 당연히 자기 자식을 훨씬 더 사랑하게 되는 법이다.’ 특히 첫 번째는 경험담이 너무 많아 오히려 마음을 비웠다. 원래 조카 사랑은 이모들의 지독한 짝사랑이라고 하지 않던가. 사랑받기를 기대하고 조카를 사랑하는 건 아니니까 괜찮다. 그래도 막상 그날이 오면 슬퍼서 밤에 잠이 오지 않겠지. 두 번째는 글쎄, 솔직한 지금 심정으로는 그래도 조카를 더 사랑하지 않을까 싶다. 너무 사랑해서 이보다 더 사랑하는 감정이 생길 리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글을 남자 친구가 보고 있다면 뒷목을 잡겠지만, 그래도 내리사랑은 또 다른 이야기이니까.     


하루 종일 졸린 눈 부릅뜨고 낮잠을 안 자고 버텨도 예쁘다. 영하의 날씨에 장갑도 안 끼고 밖에 나가자고 떼를 써도 귀엽다. 손에 쥔 색연필로 눈을 찔러도(이땐 조금 욱했지만) 그 작은 손으로 이모 머리카락을 야무지게 쥐어 뜯어도 좋다. 우리 예쁜 서진이가 앞으로도 지금처럼 많이 웃고 건강하게 잘 자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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