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포기할 수 있을지도 몰라

산티아고 순례길, 거기 사람이 있어서

by 임주리

아무도 없는 산길이 그렇게 무서운 것인 줄, 서울촌년은 정말로 몰랐다. 포도나무가 지평선 너머까지 펼쳐져 있었지만, 주인은 농사를 대자연에 맡긴 것 같았다. 앞을 바라봐도, 뒤를 돌아보며 한참을 서있어도 사람이 없었다. 까마득한 산속이었고 비가 세차게 몰아쳤다. 비인지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얼굴로 흘러내렸다. 나는 완벽하게 혼자였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를 알게 된 건 2005년이었다. 스페인 세비야 여행길에 우연히 만난 학교 선배 언니가 거길 다녀왔다고 했다. 그땐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렸다. 재미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길 따위를 끝없이 걷는다는 거야. 나는 코웃음을 쳤다.

2015년 가을. 그 길 위에,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을 메고, 비인지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그것을 연신 손으로 닦아가며 홀로 서 있는 여자는, 응. 나였다.

나는 그 이름도 생소한 마을 '카카벨로스'에서 '비야프랑카'라는 곳으로 가는 중이었다. 비가 내렸지만 시골길이 너무 예뻐 탄성을 지르며 걸었다. 그러나 한 시간쯤 지나 비바람이 몰아쳐 주변이 어두워지고 망망대산 속에 나 혼자라는 걸 알았을 땐, 제발 누군가 나타나주길 바라며 울먹이고 있었다. 호신용 스프레이를 손에 꼭 쥐고 있었지만 소용없을 게 분명했다. 뿌리고 도망간다해도 도와줄 사람이 없는데 어쩌자는 건가. 당황해서 스프레이를 내 쪽으로 발사한다면, 아주 공포에 코미디까지 끝내주겠구만.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빨리 걸어야만 했다.

한참을 걷고 걷고 또 걸었다. 드디어. 마을 입구에서 한 무리의 폴란드 순례자들을 만났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인간이란 존재가 그렇게 반갑기도 쉽지 않았다. 바짝 붙어 쫓아가기 시작했다. 아저씨들은 길을 좀 헤매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열심히 따라갔다. 마침내 그 마을을 벗어났을 때 아차, 나는 무릎을 쳤다.
그 마을에서 보고싶었던 아름다운 성당, '용서의 문'으로 불리는 훌륭한 유적. 너무나 보고싶었던 그것들을 코빼기도 못 보고 지나쳤다는 것을.

그들은 마을 밖에 있는 카페로 들어갔다. 나도 구석에 자리를 잡고 그들을 하염없이 노려봤다. 비바람을 뚫고 마을로 돌아갈 자신은 없었다. 길을 제대로 못 찾은 이들이 원망스러웠다. 한참 동안 속으로 구시렁대다 커피 한 잔을 마시니 정신이 들었다.
얼마나 반가웠던가. 얼마나 그리웠던가 사람이. 무서움에 벌벌 떨 때 구세주처럼 나타난 사람들인데, '용서의 문' 따위 뭐 대수라고.

이렇게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이었다.
비야프랑카. 나는 이곳에서 봐야 한다는 것을 하나도 보지 못했다. 괜찮아 그래도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는 음악을 하고 싶지만 부모 때문에 억지 의대생이 된 빙그레(바로)가 등장한다. 괴로워하던 빙그레는 결국 휴학계를 낸다.
여기까지 봤을 때 결말이 대강 그려졌다. 빙그레는 부모의 반대를 딛고 마침내 가수로서 성공할 것이다, 결국 부모는 무대에 선 아들을 끌어안겠지. 드라마라면 영화라면 그래야 했다.
그런데 드라마는 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방황하던 빙그레는, 의대생 아들이 너무나 자랑스러워서 뼈가 삭도록 고생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동생을 통해 듣는다. 그리고 돌아간다. 의대로, 제 꿈이 아닌 부모의 꿈으로. (사실은 제 재능에 대한 확신도 부족했겠지만.) 그 에피소드를 보면서 나는 엉엉 눈물을 한 바가지 쏟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다, 내가 불행하고 희생해가며 주는 것은 주는 게 아니다. 미쳤냐. 식당 메뉴 고르기 같은 사소한 일에서부터 중요한 일의 결정까지. 부드럽고 친절하게 그러나 분명히 내 욕망을 표현하려고 노력해왔다. 어쩔 수 없이 사람 때문에 포기해야 할 것들이 생기면 당연히 원망의 감정이 생겼다. 그러다 빙그레의 이야기를 보며 울었던 건 내가 포기했던 것들이 아까워서가 아니었다.


네게 소중한 사람 때문에 포기한 것이라면, 그럴 수도 있는 거야 괜찮아, 라는 잔잔한 위로. 그 때문이었다.


언젠가 또 사람 때문에 포기해야 할 것들이 생기면, 그러면, 나는 그래도 그 사람 덕분에 괜찮았던 시간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달랠 수 있을까. 빙그레가 괜찮은 의사가 된 것처럼, 내가 순례길의 유적을 포기했던 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