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단기여행 팁(단기 까미노)

까미노 데 산티아고, 정말 사소하지만 궁금했던 것들

by 임주리

안녕하세요. 다들 추석 잘 보내고 계신지요. 저는 이제 막 까미노(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를 마치고 피니스테레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지금까지 제 매거진에 올린 글들과는 약간 성격이 다른 글을 올립니다. 늘 여행 에세이를 쓰고 뒤에 팁을 붙였는데, 이번 팁은 좀 길어서 따로 작성했습니다. 엄청난 팁은 아니지만 제가 품었던 궁금증을 분명 누군가는 품고 있을 거라 믿기에 글을 남깁니다.

저는 9월 13일부터 24일까지 12일 동안 아스토르가부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걸었습니다. 단기 까미노인 거죠. 제가 낼 수 있는 최장기 휴가였고, 직장인 분들께 "이만큼만 걸어도 괜찮아. 좋은 여행이었어"라고 응원을 드리고 싶어요. 자, 이제 사소한 팁 들어갑니다. 장기보다는 단기로 가실 분들에게 더 맞춤일 듯 합니다.

1. 까미노, 여자 혼자 가기 위험하지 않을까요?
어떤 여행이든 여자 혼자 가는 거라면 늘 조심해야겠죠. 최근 까미노에서 사고도 있었구요. 저도 정말 고민이 많았습니다. 막 심장이 벌렁벌렁했죠.
일단 너무 일찍 혼자 출발하지 마세요. 저는 준비를 다 마치고 알베르게 로비에서 누군가 출발하기를 기다렸다가 따라 나갔습니다. 꼭 말 섞고 악수해야만 동행이 아닙니다. 걷는 중간중간 앞과 뒤를 늘 살피세요. 다른 순례자가 있는지 확인하세요.
비가 오던 어느 날, 혼자 산길을 걸으며 무서움에 벌벌 떨었습니다. 너무 무섭더군요. 걸음 속도가 맞는 동행을 찾아 같이 걸으시길 바랍니다. 호신용 스프레이, 호루라기 꼭 챙기세요. 일단 뭐라도 손에 있어야 조금은 안심이 됩니다.

2. 저는 진짜 체력이 약한데 어쩌지요.
저, 저질체력입니다. 제가 인정, 친구가 인정, 부모님이 인정, 서울이 인정합니다. 특별히 어디 아픈 곳이 있는 게 아니라 조금만 무리해도 쉽게 아픈 타입의 사람인 거죠.
그런 분들은 일단 배낭 무게를 줄이세요. 등산스틱 꼭 준비하세요. 스틱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가 확연합니다. 스틱을 써도 일주일이 지나면 무릎이 겁나 아픕니다. 등산스틱 쓰실 때는 장갑 필수! 나는 오늘 하루 내 손바닥의 감각에만 오롯이 집중하고 싶다는 분은 맨손도 오케이. 불타오르듯 쓰린 감각에 하루종일 집중하실 수 있습니다.
더 중요한 건 페이스 조절입니다. 사실, 아스토르가에서 산티아고까지 남들은 열흘이면 걷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틀 더 걸었죠. 체력이 약하다면 그런 지혜가 필요합니다(어머 나 지혜로운 여자...)

3. 베드버그 무서워서 까미노 자체가 고민돼요.
제가 딱 그랬습니다. 베드버그 때문에 항공권 바꿀까 수십차례 고민했죠. 까미노에서 몇몇 순례자가 베드버그로 고생하신 것도 봤습니다. 복불복이라지만 최대한 노력해야죠.
저는 우선 침낭과 가방 구석구석에 나프탈렌을 넣어뒀습니다. 그리고 비오킬을 준비하세요. 여기까진 다 아시죠?
그런데 스프레이 뿌리는 방법을 아무도 안 가르쳐주더란 말입니다 으흑. 그래서 제가 고안한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걸으실 때는 절대 길바닥에 배낭 내려놓지 마세요. 숙소 도착하자마자 배낭 놓을 자리에 비오킬부터 잔뜩 뿌리세요. 거기에 배낭을 내려놓습니다. 제가 볼 땐 이게 중요해요. 그 다음엔 침대 가장자리를 둘러가며 비오킬을 또 잔뜩 뿌리세요. 그리고 알베르게에서 주는 일회용시트를 깝니다. 그리고 또 그 위에 가장자리로만 비오킬을 뿌리세요. 그 위에 침낭을 펼칩니다. 저는 이래놓고도 불안해서 자기 전에 한 번 더 뿌렸습니다. (이쯤되면 제가 살충제에 중독될 정도...) 담요만 가져오신 여자분도 봤는데, 침낭은 필수입니다.

4. 발에 물집 안 잡히는 방법 없을까요?
저는 걷는 동안 물집 한 번도 안 잡혔습니다. 그럼 제가 평소에 많이 걷느냐 하면, 오 그럴리가요. 모든 등산장비를 열흘 전에 다 새로 산 완전 초보입니다. 많은 분들이 바셀린 얘기를 하시는데, 저는 끈적거리는 느낌이 싫어서 베이비파우더를 택했습니다. 먼저 파우더를 발에 잔뜩 바릅니다. 그리고 발가락양말을 신습니다. 저는 인진지 양말을 샀는데, 그냥 마트에서 싼 거 사서 신어도 될 것 같아요. 그 위에 또 얇은 면양말을 신습니다. 등산화는 길들일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가죽이 아닌, 최대한 신축성 있는 것으로 준비했어요. 무지외반증 있는 분! 튀어나온 곳에 물집패드 꼭 붙이세요. 3000원이면 삽니다. (약사 아님)
이렇게 한 후 제일 중요한 것은 중간중간 쉴 때 양말까지 다 벗고 쉬는 겁니다. 카페 안에서 그러지 마시고요, 밖에 앉아서 살짝 양말 벗고 쉬세요. 그래야 발도 숨을 쉽니다. 전 그 덕에 물집고생 안 했습니다.

5. 걷기만 하는 건가요. 하루종일 뭘 하나요.
스페인은 가을에도 햇볕이 뜨겁습니다. 그래서 보통 6-8시 사이에 대부분 순례자가 걷기를 시작하죠. 걸음이 빠른 분들은 오후 1시 이전에 도착하시던데, 저는 늘 2-3시께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숙소를 잡은 후 씻고 빨래하고 빨래 널고 잠깐 누워서 쉽니다. 그럼 저녁 먹을 때가 오죠. 밖에 나가서 밥 먹고 동네 구경하고 일찍 들어와 잡니다.
그리고 요리 못하는 분들, 걱정마세요. 스페인 음식은 우리 입맛에 꽤 잘 맞는 편입니다. (저 엄청 까다로움) 어느 마을에나 있는 순례자메뉴는 정말 푸짐합니다. 곁들여 나오는 와인이라는 게 막 한 병... 이럽니다. 꺄오! 특히 갈리시아에 들어서면 이 지방의 스프인 '깔도 가예고'를 꼭 드세요. 느끼했던 속이 풀립니다. 강추.

6. 숙소 선택, 대체 어떻게 하나요.
알베르게는 크게 두 종류입니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무니시팔-욕 아님) 그리고 사설. 저렴하고 사람 많은 곳이 좋다면 무니시팔로 가세요.
그런데 저는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합니다. 그리고 제 기준으론, 사설이 4-5유로 비싼 대신 아주 쬐끔 더 쾌적하더군요. (큰 차이는 없음) 그래서 사설로 다녔습니다. 알베르게 정보는 관련 카페 게시글과 가이드북을 참고했고요.
라바날의 라 센다, 캄포나라야의 나라야 알베르게, 팔라스 데 레이의 카사 크루스 등을 추천합니다.
단, 절대 가지 말아야 할 곳은 아르수아의 '데 카미노(de camino)'란 곳입니다. 자영업자들의 고충을 알기에 단 한 번도 인터넷에 혹평이란 걸 써본 적이 없는데, 이곳에 한국분들이 돈 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주인이 불친절한 정도가 아닙니다. 사사건건 감시하는 눈빛 굉장히 불쾌합니다. 절대 가지 마시길. 아르수아 들어서서 알베르게 돈키호테를 지나 조금만 가면 있는 작고 어두침침한 곳입니다.


7. 사리아 지방부터는 사람이 많아 알베르게 예약을 해야한다던데, 정말 그런가요.
저는 9월이라 그랬는지 몰라도 예약 한 번도 안 했는데 숙소 잘 구했습니다. 심지어 한 방을 저 혼자 쓴 적도 있어요. 다만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만큼은 꼭 예약하세요. 저는 예약을 안 했는데... 울트라슈퍼개고생. 목적지인 이곳에는 늘 사람이 많아 조금만 늦게 가면 자리가 없습니다.

8. 스페인어 못해서 걱정 돼요.
저는 부족하지만, 스페인어 할 줄 압니다. 그런데 '화장실 어디죠' '여기 주방 있나요'를 꼭 스페인어로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 알아듣고 다 해결됩니다. 또, 친구 사귐의 문제는 결국 마음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걱정 뚝.
정말 먹고 싶은 스페인 음식 메뉴 외워가는 것은 추천.

9. 쑥스럽지만 ... 저는 꼭 화장을 하고 싶은데요, 그런 분위기가 아닌가요?
일단 저로 말하자면, 흐트러진 모습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엠티 가면 제일 먼저 일어나 머리 감고 화장하고 곱게 앉아있어서 재수없을라고 할 때 설거지를 함으로써 이를 모면하는 캐릭터랄까.

하지만 여기 오니 예쁜 것보다 내 몸 아프지 않은 게 더 중요하더군요. 웬만하면 색조화장은 포기하시길 바랍니다. 랑콤 립스틱, 샤넬 파레트 모두 쓰레기통에 들어간다에 만 원. 제가 본 폴란드 스무살 여대생은 배낭 무게가 11kg이라는 겁니다. 가만 보니 아침에 풀메이크업을 하더군요. 결국 그 친구, 무릎 다쳐서 버스 타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남들이 다 아니라고 해도 스스로에게 중요하면 중요한 겁니다. 나는 마스카라 안 하면 사람들과 대화를 못하겠다, 하시는 분은 당연히 마스카라 챙겨야지요. (저는, 드라이기 꼭 챙겨 들고 다녔어요.)

10. 화장실은 찾기가 수월한 편인가요?
아아, 제가 이걸 어디에 물어보지도 못하고 얼마나 고민했던가요. 결론은 걱정마시란 것! 2-3시간 간격으로 마을이 있습니다. 작은 카페가 있고 그곳엔 우리의 소중한 화장실이 있습니다. 역시 걱정 뚝. 물 많이 드세요.

11. 생장부터 시작하는 사람들이 부러워요. 단기 순례도 의미가 있을까요?
그럼요 그럼요 오브 콜스! 생장부터 시작한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지만 모든 사람이 학생이 아니며, 모든 사람이 사표를 쓸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나의 밥벌이는 소중한 것이지요. 일정이 어찌됐든 자기가 얼마나 이 여행을 소중히 여기느냐가 중요한 것 아니겠어요? 부르고스, 레온, 아스토르가, 사리아부터 시작하는 분들 정말 많이 봤습니다.
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오세브레이로가 정말 좋았기 때문에 순례자 분들이 여기는 꼭 가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열흘은 잡으셔야할 듯 합니다. 물론 이건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조금이라도 도움 되셨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리고 저의 여행기는 계속됩니다.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 다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