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턴'
영화 ‘인턴’. 잘나가는 인터넷쇼핑몰 CEO이자 워킹맘인 30대 여성 줄스(앤 해서웨이)가 70세 시니어 인턴인 벤(로버트 드 니로)과 함께 일하게 된다. 줄스와 벤 사이에는 갈등이 없다. 벤이 다 맞춰주니까. 그저 지켜보고 필요한 것을 해줄 뿐이니까. 밥도 못 먹고 일하느라 ‘나 왜 이러고 사나’ 싶을 때 따뜻한 치킨수프를 사다주고, 진짜 엉망진창인 날이어서 엉엉 울 때 말없이 손수건을 내어주는 그런 것들. 기대했던 것보다는 심심한 영화였지만 따뜻한. 좋았다.
계속 떠오르는 건 손수건보다도 벤이 직장동료들과 어울리는 장면들이다. 벤은, 젊은 직원들이 신나는 음악을 틀고 일하는 이 회사에 첫날부터 잘 녹아든다. 그 누구도 그를 피하거나 어려워하지 않는다. 아이패드로 뉴스를 보는 젊은 직원들 앞에서 종이신문을 보고 낡은 가방을 고집하는 벤은 어렵다면 어렵지, 쉽게 다가가 연애 상담을 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닌데도. 그런데 다들 편하게 여기더란 말이다. 개인의 매력이 헐크처럼 폭발한다 해도 70세 할아버지인데. 한국에서라면, 그럴 수 있을까.
나는 비록 CEO와 겁나 먼 자리에 앉은 직원일 뿐이지만, 내 밑에 시니어 인턴이 들어온다고 상상해 본다. 글쎄, 상상조차 안 된다. 같이 일 못할 것 같다. 너무 어려워서. 내 말을 듣는 대신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느라 정신 없으실 것도, 눈에 보인다. (몇 년 전에 어느 드라마 제작발표회에 취재를 갔다가 내가 무척 좋아하는 노배우의 옆에 앉을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그 분이 앉자마자 “요즘 젊은 배우들은”이라는 말을 시작했다. 그렇게 멋있는 그 분도!!! 물론 지금도 좋아함.)
어쨌든 왜 한국에선 상상조차 안 되는 걸까. 벤이 그렇게 멋진 ‘시니어’가 된 건 역시 미국에서 자라서일까. 영화에서 올해 70세이니 1945년생이라고 치자. 미국의 1945년. 세계는 전쟁중이긴 했지만 미국 땅에서 벌어진 전쟁은 아니었다. 그리고 벤이 한창 예민했을 10대 시절은 미국의 1960년대. 정말 오마이갓이지 않나. 나는 미국의 많은 아름다운 가능성들이 1960년대에 태어났다고 믿는다. 우드스탁 페스티벌, 히피, 마틴 루터 킹, 반전 운동. 그 모든 것들. 벤은 그런 10대를 보낸 후 20대에 취업해 40년 넘게 한 직장에서 일했다. 그게 가능한 시대였고, 그게 가능한 미국이었다.
한국의 1945년생. 영화 ‘국제시장’의 덕수보다 조금 어릴 테지만 편의상 덕수라고 치자. 그냥 ‘1945’라는 숫자만 들어도 마음이 아프다. 어린아이가 눈 앞에서 보았을 한국 전쟁, 지독한 가난. 덕수가 10대 시절을 보냈을 한국의 1960년대. 여전한 가난, 서슬 퍼런 군사정권. 언뜻 ‘쎄씨봉’이란 낭만도 떠오르긴 하지만 당시의 수많은 덕수들이 보편적으로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었을 거다. 대학에서 공부한다는 것은 소수에게 허락된 일이었고, 많은 덕수들은 악착같이 살아야 했다. 벤의 삶 또한 만만치 않았겠지만, 분명히 그랬겠지만. 적어도 개인 운신의 폭은, 벤 쪽이 나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지하철 1호선 덕수들의 무례한 행태나, 잘나갔던 덕수들의 어이없는 꼰대질을 용납하겠다는 건 아니다. ‘한국에서 벤 같은 존재가 잘 상상 안 되는 이유’가 덕수들 탓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게 슬펐다. (사실 미국에도 별로 없을 것 같지만) 한국에 벤과 같은 노인이, 인생 선배가 별로 없다는 것은 늘 아쉬웠지만, 조금은 이해가 된다는 얘기를 이렇게 길게 써버림. 여유와 품격과 열린 귀를 갖추기에 너무 빡셌다. 누군들 뭐 멋있고 여유롭게 살고 싶지 않았을까. 덕수들도 벤이 되고 싶었을 것이며, 지금도 벤이 되고 싶을 것이다.
물론 70대를 ‘70대’란 카테고리 하나만으로 묶는다는 것은 무리가 있기 때문에. 개인의 문제로 꼰대가 된 사람들이 ‘가난했던 한국’ 운운하며 핏대 세우지 않길 바란다. 세대보단 계급이다. 참으로 잡스런 영화관람기가 이토록 길어지고 말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