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뭉클하면 안 되나요?>와 '오페라마 토크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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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기분이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유쾌하진 않고 자칫하면 개우울의 수렁에 빠질 게 분명한 때를 대비하여, 몇 권의 에세이를 책상 위에 쌓아둔다. 얼마 전에는 마스다 미리의 <뭉클하면 안 되나요?>를 손에 들었다. 일상 속 ‘뭉클’이 가득한 가운데 최고 귀여운 에피소드는 “한 입 드실래요?”에 뭉클했다는 이야기다.
일로 만난 남자와 커피숍에 갔는데 그가 “이거 정말 맛있는데 한 입 드실래요?”하며 마스다 미리에게 빨대를 쭉 내민다. 마스다는 그 순간을 이렇게 기록한다.
“나는 괜찮아요, 괜찮아요 하고 웃으며 사양했지만, 설레었다. 내가 마셔도 돼요…? 마흔 넘어도…? 당신의 빨대로? 빨대란 음료수가 역류할 가능성이 있는데, 그래도 괜찮아요?”
나 이 언니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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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장 뭉클했던 일은 ‘오페라마 토크 콘서트’에서 있었다. 이날의 주제는 슈베르트의 음악과 첫사랑. 관객의 첫사랑 사연도 소개됐다. 공연이 무르익을 때쯤, 사회자가 익명의 메시지를 읽었다.
“나에게 첫사랑이란 ‘마왕’에게서 지키고 싶은 내 전부다. 이 분 누구시죠?”
난 좀 웃었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앞으로 나오셨다. 파르르 떨리는 손, 발그레한 얼굴, 낡은 면바지. 아주머니는 “저에겐 남편이 첫사랑이거든요”라고 운을 뗐다. 사람들은 웃었다. 그는 또박또박 말을 이어나갔다.
“저랑 남편은 서로에게 첫사랑이에요. 슈베르트의 ‘마왕’은 괴테의 시 ‘마왕’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거잖아요. 마왕이 아버지에게서 아들을 빼앗아 가는 이야기인데, 제가 남편을 얼마 전에 잃었어요. 마왕에게서 지키고 싶은 내 전부는, 남편이에요.”
그녀의 눈에는 살짝 눈물이 고여 있었다.
목이 잔뜩 부어오르는 느낌이었다. 공연은 성악가 정경 교수가 슈베르트의 ‘마왕’을 부르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녀가 내게 건넨 뜨거움과 노래의 웅장함이 뒤섞여 조금, 울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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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 아버지가 아이를 안고 숲길을 달리는데 아이가 자꾸 아빠에게 마왕이 보인다고 징징댄다. 아빠, 마왕이 보여요. 마왕의 목소리가 들린다니까요. 아버지는 아이를 달랜다. 아니야 저것은 안개란다, 바람소리야. 오래된 나무라니까. 집에 도착해보니 아이는 품에서 죽어있다. 괴테의 시 ‘마왕’은 이런 얘기다.
아주머니의 이야기 덕분에 다시 읽은 시는 절절하게 아팠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가만 보니 이 시에는 ‘죄책감’이 스며 있었다. 아이는 계속 마왕이 보인다고 했는데도 자신은 보지 못했다는 책망, 그것도 모르고 엉뚱한 위로만 던졌다는 자책. 마왕을 보지 못한 것은 아버지 그의 잘못이 아니고, ‘헛소리하지 말고 쳐자, 이 자식아’ 해버리고 싶은 걸 참고 최선을 다해 아이를 달랬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제 잘못이라며 가슴을 쳤겠지. 그랬을 것이다.
그녀가 ‘내 모든 것을 내걸고 지키고 싶은 것’이란 표현 대신 굳이 ‘마왕에게서 지키고 싶다’고 말한 이유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내가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그녀는 분명 그 사랑에 최선을 다했을 테지만, 그럼에도 죄책감이 밀려오는 걸 어쩌지 못했을 거란 생각에 한없이 가슴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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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최선은 상대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 때가 더 많고, 나의 노력이 상대에겐 오히려 방해가 될 때도 꽤 많다. 적확한 맞춤형 최선을 다해도 원하는 걸 갖기 힘든 세상인데, 잔뜩 오해한 최선을 다한 후 “왜 몰라줘?”하며 서운해 한다. 그러다 또 뒤돌아보면 미안함이 한가득이다.
그러나 사람마다 생각하는 예의와 베풂의 기준이 다르고 마음의 깊이도 다르니 서운함과 죄책감을 오가며 살아가야 하는 것은 인간의 숙명일지 모르겠다. 그것이 어떤 종류든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라면 ‘하나도’ 서운하지 않을 길도, ‘조금의’ 미안함을 느끼지 않을 도리도 없다는 생각을 이제야 한다.
서운해 하지 않아도 될 일에 서운해 하고, 작은 일에 분노를 토로하며 살아가는 나는, 앞으로 그렇게 살지 않으리라 장담할 자신이 없다.
대신 고마워하지 않아도 될 일에 고마워하면 되지 않을까. 그러면 우리의 서운함과 미안함은 조금씩 흐려질 테고, 온갖 일이 조금씩은 뭉클해지겠지. 그렇게 별 쓰잘머리 없는 일에 뭉클해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되게 좋을 것 같다. 굳이 앞에 앉은 남자가 빨대를 들이밀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런, 뭉클한 겨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