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스노우맨>_문예지 '악스트' 3호
1.
혼자 제주에 간 건 5년 만이었다. 2010년 이후 거의 매년 제주도에 갔지만 출장이거나 친구들과 함께였다. 5년 전에는 혼자 올레 길을 걸었지만, 전화로 “꺄아아아 ” 소리 질러도 받아줄 남자친구가 있었다. 그러니까, 정말 혼자였던 건 처음이었다. 뜨거운 여름. 바닷가 버거 집에서 버거를 먹고 싶었는데 2인분만 주문 가능했다. 나는 조용히 나왔다. 그러나 당당하게 걸었다. 비키니를 입은 상태였으므로.
가닿은 곳은 바다가 보이는 카페였다. 사람들의 몸에서 비늘처럼 떨어진 모래가 서걱대고, 짭조름한 냄새가 커피 향과 섞이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오로지 셀카를 찍기 위해 제주에 온 것 같았다. 그들의 배경화면이 되고 싶지 않아 몸을 움츠렸다. 찰칵찰칵, 한 무리가 나가고 한참을 멍하게 앉아있은 후에야 서울에서 챙겨 온 단 한 권의 책을 펼쳐 들었다.
2.
홀로 어디론가 떠날 때는 언제나 책이 있었다. 첫 유럽여행 길에 내가 고심해서 고른 책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었다. 사람이 지긋지긋했고 누구보다 나 자신을 참을 수 없던 때였다. 이후로도 나는 자주 홀로 떠났다.
10년이 흘렀고 목록은 길어졌다. 특별한 기준은 없었다. 그때 그때의 근심과 걱정에 맞춤한 책을 품었다. 욕심이야 고전을 향했지만 서점에 쫙 깔린 베스트셀러일 때도 많았다. 파스칼의 『팡세』나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트렁크에 자주 넣어뒀던 책이다. 최근에는 오에 겐자부로가 『읽는 인간』에서 고백한 글귀를 보고 마음이 동해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들고 갔다.
그러나 ‘장르소설’로 분류되는 쪽은(굳이 분류해야 하나 싶지만) 목록에 없었는데 그것은, 여행에 두는 모순된 내 마음 때문이었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쉬겠다고 작정하고 떠나서도 늘 ‘여행지에서의 치유’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한 손에는 미련 한 움큼, 다른 한 손에는 처방받은 약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 미련에 걸맞은 책 한 권을 쥐어야 마음이 놓였다. 읽는다는 것, 그 자체의 희열에만 봉사할 책은 목록의 마지막 줄에 있어야 했다.
다른 질감의 책이 목록의 첫 줄에 오르게 된 것은 지난해 가을 부산영화제 취재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서였다. 부산의 습기와 영화제의 알싸한 분위기에 취해 노곤했던 나는 역내 서점에 서 있었다. 나 자신에 대한 생각만 아니라면 뭐든 좋았다. 독일 작가 넬레 노이하우스의 소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에 꽂힌 건 그래서였다.
기차에 앉아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괜히 KTX를 탔어, 무궁화호를 탈 걸.
나는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백설공주의 죽음만을 좇을 뿐이었다. 오랜만의 몰입이었다. 스릴러 소설에 늦된 애정을 키우는 동안 겨울은 지나갔다. 그리하여 뜨거운 제주, 2인분 버거를 먹지 못해 침울해진 내가 비키니를 입고 펼쳐든 책은 한여름의 『스노우맨』이었다.
3.
한 여자가 사라진다. 형사 해리 홀레는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 받은 의문의 편지 때문에 정신이 혼란한 처지다. 수사를 하는 사이 이번엔 두 번째 여자가 실종, 살해된 채로 발견된다. 해리는 이것이 연쇄살인임을 확신한다. 눈이 오는 날 여자가 죽는다. 살인 현장에는 어김없이 눈사람이 있다. 그는 ‘스노우맨’의 흔적을 밟기 시작한다.
묘사는 군더더기 없고 이야기는 치밀하다. 많은 소설이 매혹적인 캐릭터를 만드는 데 치우쳐 흥미진진했던 사건을 대충 뭉개버리고, 또 다른 많은 이야기가 사건 전개에만 공을 들이느라 주인공을 ‘하우 알 유? 아임 파인’ 식의 진부함으로 찍어내는 걸 떠올려보면 확실히 『스노우맨』이 지닌 균형감각은 영리하다.
무엇보다 작가가 주인공에게 쏟는 애정이 상당한데, 그 마음이 고스란히 독자에게 전해진다. 스노우맨의 정체도 정체지만 해리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해리는 동료들에게 “오슬로경찰청에서 최고 ”라는 상찬과 “망신스러운 인물”이란 혹평을 동시에 듣는 이다. “자신이 맡은 사건이 결론에 도달하거나, 해결되거나, 종결됐을 때 기쁨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 ”고 “날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 ” 때문에 불행하다고 느끼는 남자다. 경찰로서의 능력도 완벽하고, 적당한 연민을 끌어낼 인간으로서의 결함도 완벽하달까.
이 남자에 대한 작가의 자신감은 ‘실종’ ‘좋은 소식’ ‘데드라인’ 하는 식으로 구분 지은 각 장이 주로 해리의 외로움과 두려움, 절망을 묘사하는 장면으로 끝난다는 데서 읽힌다. 잠시 한눈을 팔고 싶을 때조차도 옆구리를 찔리는 것이다. 이봐. 이 남자를 보라구. 이런 남자의 이야기를 계속 듣지 않을 도리가 있어? 현실 속에선 더 이상 “날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 ” 때문에 불행하단 남자를 만나지 않겠지만 그래, 소설이니까 한 번쯤은 등을 토닥여 줄 수밖에.
그리고 오슬로. 눈 내리는 노르웨이의 도시 오슬로가 있다. 해리를 발리에 던져놓는다면 그는 절대로 매력적일 수 없다. 그 또한 그것을 알기에 말한다. “이 도시가 좋아서 미칠 지경 ”이라고. 살인 현장에 눈사람을 만들어놓고 사라지는 살인마 ‘스노우맨’은 또 어떤가. 그는 오슬로가 아닌 곳에선 아예 성립할 수 없는 인물이다. 눈 내리는 첫 장부터 시작된 서늘하고 황량한 기운이 팔 안쪽을 가득 조여오면 인정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이토록 서늘한 도시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노르웨이 작가 요 네스뵈의 솜씨를 보고 있자면 저널리스트, 뮤지션, 경제학자를 종횡무진 한다는 프로필은 사족이다. 그저 뭉텅뭉텅 무심하게 고깃덩어리를 잘라내는 주방장이 떠오른다. 방금 담배를 태우고 돌아와 심드렁하게 칼질을 하는 것 같아도, 각각의 고깃덩이를 저울에 올려 보면 무게가 같고 모양도 일정한 것이다. 별것 아닌 듯 던져놓지만 사실은 세심하게 이야기를 조직하고 있다. 거침없는 것 같지만 놓치는 것은 없다. 읽는 것 그 자체의 희열은 그렇게 탄생한다.
4.
제주 여행은 좋았다.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길을 걸었고 위잉위잉 서핑을 했다. 섹시하게 파도를 타고 싶었지만 나는 자꾸 물을 먹었다. 한참 어린 검은 근육의 강사 앞에서 부끄러웠을 뿐, 나쁘지 않았다. 연애에 절어있던 내 20대를 생각했고, 그 연애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지금을 바라봤다. 조금은 외로웠지만 모래사장은 밤에도 아름다웠다.
홀로 떠나는 길, 외로운 밤. 나는 한 움큼의 미련을 버리고 목록을 거꾸로 뒤집는다. 요 네스뵈를 넬레 노이하우스를 길리언 플린을 읽는다. 무궁화호를 탐하게 하는 이야기로 가득한 책들. 아무것도 적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게 하는 나의 책들. 낡은 책장에는 이런 종류의 책들이 한참 꽂혀있다. 가끔 뒷목이 서늘해지긴 해도 괜찮다. 아직, 이 이상의 처방전을 발급받지 못했다.
*이 글은 격월간 문예지 '악스트(Axt)' 3호(11-12월)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