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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주리 Feb 16. 2016

그러니 스스로를 향한 창의적인 위로를 계속,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명리>

 내가 나를 위로하는 일이 잘 된 적은 별로 없다.

 ‘사는 게 누구나 그래.’ ‘괜찮아, 더 힘든 일도 있었잖아.’ 여러 버전의 위로를 내게 쏟아붓지만 효과는 대개 미미하다. 스스로를 향한 창의적인 위로를 찾는 일. 그것이 인간이 죽는 날까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의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지난해 블로그에 글을 쓴 것도 오로지 나를 위해서였다. 외로울수록 내가 괜찮은 인간이라는 걸 믿자, 는 위로가 꽤 유용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꾹꾹 눌러 적은 글들도 제법 오래갔다. 코앞에 닥친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산티아고더라, 내가 져야할 것이 있다면 그냥 지고 가자. 뭐 그런 것들.

 약발은 연말에 떨어졌다. 1월은 바빴다. 문화부에 복귀했다. 봐야할 것은 많았고, 써야할 것도 많았다. 누군가를 만날 시간도 마음도 없었다. 생일에 친구들의 전화를 받아 오랜만에 서로 안부를 나누다가 나는, 문득 내가 외롭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밤은 조금. 우울했다. 여진은 일요일까지 지속됐다. 흔들 흔들. 내 마음은 날림건물처럼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마음을 해체하면 단단한 철근과 벽돌 대신, 울음이 찰랑대는 생수통이나 자책이 가득한 스티로폼 박스가 발견되겠지.


 월요일 아침이었다. 화장실에 쪼그려 앉아 이런 생각을 했다. 지구는 45억 년 된 별이고 앞으로 50억 년 후에는 소멸하겠지. 인간이 출현한 지 250만 년 됐는데, 앞으로도 꽤 갈 것 같아. 그 긴긴 시간 속에서 나는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유일한 사람이다. 다른 존재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그저, 유일하다고. 오직 하나뿐인 내가 찰나의 시간을 살아가면서 이왕이면 조금 더 많이 웃는 편이 낫지 않을까. 오직 지금 존재할 뿐인 나는 45억 년 동안 존재하지 않았고, 앞으로 50억 년이 흘러 지구가 사라질 때까지도 없을 테니까.

 나는 월요일이 좋았다.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지금껏 읽은 과학교양서 중 가장 재미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서문이 너무나, 너무나 아름답다. 이런 말이 나온다.

 “당신이 아주 오래전부터 적절한 진화의 길을 따라오게 된 것도 행운이었지만, 당신의 가정에서 태어날 수 있었던 것도 역시 기적이었다. 지구에 산이나 강이나 바다가 생기기도 훨씬 전이었던 28억 년 전부터, 당신의 친가와 외가의 선조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짝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이었고, 자손을 낳을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었던 운명과 환경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당신의 조상 중에서 어느 누구도 싸움이나 병으로 일찍 죽지도 않았고, 물에 빠지거나 굶거나 길을 잃고 헤매다가 죽어버리지도 않았으며, 방탕에 빠지거나 부상을 당하지도 않았고,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짝에게 아주 적은 양의 유전 물질을 전해주어서 결국은 놀랍게도 아주 짧은 순간이기는 하지만 당신을 존재하도록 해주는 유일한 유전 조합을 만드는 일까지도 외면하지 않았다.”

 오래전에 읽었기에 대체 어느 페이지에 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도 이 책에는 이런 말도 있을 것이다. “당신 앞의 초파리조차 지금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다시 볼 수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다.”  


 얼마 전 <명리>를 쓴 음악평론가 강헌 선생님을 인터뷰했다. 사주팔자, 명리학을 다룬 책인데 ‘혹세무민의 잡술’로 치부되는 이 학문을 양지로 끌어올리고 싶다고 했다. 그가 가장 강조한 말은 이것이었다.

 “좋은 사주, 나쁜 사주란 없다. 우주는 가치에 우열을 두지 않는다. 다만 다를 뿐이다.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든 자신이 얼마나 대체 불가능한, 존엄한 존재인지 깨닫게 해주는 것이 제대로 된 명리학이다.”


 현대 과학이 설명하는 우주와 지구와 생명의 기원을 다룬 책, 동양학이 바라보는 우주의 기운과 사람의 기운을 다룬 책. 두 저자는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결국은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엄청나게 거대하고 신기하며 감히 알 수 없는 우주와 시간 속에서 단 하나 확실한 건, 당신이 대체 불가능한 존재라는 것. 그것이라고.


 그러니 스스로를 향한 창의적인 위로와 위무를 계속, 해나가야 한다. 나는 어디에도 없는 유일한 존재다. 물론 당신도. 당분간은 이것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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