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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주리 May 20. 2021

해가 떠오르는 그 장면이 너무도 찬란하게 아름다워서

문득, 아이가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그 날

“조용하고 작은 마을을 뒤로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뒤에서 떠오르는 해가 정말 장관이었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아름답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눈물이 났다. 문득, 아이가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뜬금없지만 그랬다.” (2015년 9월의 일기)


그 가을. 나는 내 덩치만 한 백팩을 메고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서 있었다. 몸과 마음을 갉아먹는 일에서 벗어나 그저 걷고 먹고 자는 생활을 반복하며 그 길에 흠뻑 젖어든 어느 날, 해가 뜨는 장면을 넋을 놓고 바라보며 태어나 처음으로 ‘아이가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처음이었다. 곧바로 ‘어머 나 왜 이래’하며 얼굴이 달아올랐다.


바쁜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아주 가끔, 그 순간이 떠올랐다. 하지만 여전히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왜 나는 그토록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들을 떠올리는 대신 새로운 존재, 아니 존재하지도 않던 존재를 떠올렸을까.


친구들에게 그 이야기를 했을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이거였다.

“인간의 본능이야. 자기 유전자를 남기고 싶은 거지.”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내 유전자지만 그의 의도나 목적을 나는 알 수 없다. 나 하나 챙기기도 벅찬 세상 아닌가. 게다가 아이들은 너무 자주 울고, 시끄럽고, 너무 자주 울고, 시끄럽고, 너무 자주 울고... 그런데 참 이상하지. 왜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걸까. 인간은 왜 아이를 낳는 걸까.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어.




지난해 여름 결혼을 했다. 적지 않은 나이였다.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더 이상 겪고 싶지 않아졌을 때 남편을 만났다. 이 사람이라면 결혼해도 좋을 것 같았다. 둘이 살림을 합치고 함께 매일을 보내는 일은 즐거웠다.


우리는 아이 얘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가까운 사람들도 나에게 먼저 물어보는 일이 없었다. 육아는 함께 하는 것이지만 임신과 출산의 고통은 대신 겪어줄 수 없기에 조심스러웠던 남편의 배려였고, 가족계획을 묻는 일이 실례라고 여긴 지인들의 배려였다.


그렇다고 딩크족으로 살자고 마음을 먹은 것도 아니었다. 아이를 가지고 싶은 마음 반, 그냥 이대로도 좋다는 마음 반이었다. 가을이 지나고 집에 크리스마스트리가 반짝이기 시작할 무렵 우리는 아이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내 뜻을 존중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들만 보면 예뻐서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숨기지는 못했다.


그럴 때면 연애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아이나 동물을 보면 일부러 차가운 표정을 짓곤 했다. 위악적인 태도였다. 아이나 동물을 예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나라는 인간을 좀 더 따뜻하게 포장하는 데 도움이 됐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의 다른 면을 봐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손바닥만 한 강아지만 봐도 화들짝 놀라 도망가는 주제에 그런 연기를 할 형편이 못 되기도 했지만.


아이에 대해서는 양가적인 감정이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막냇동생을 본 덕에 나는 갓 태어나 젖내 나는 존재가 얼마나 황홀하게 사랑스러운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뭐랄까, 남자친구에게 어떤 ‘기대감’을 심어주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어떤 삶을 택할지 내가 먼저 결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많은 이야기를 한 끝에 우리는, 마침내, 아이를 가지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진짜 걱정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결심을 하기까지가 어려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실컷 이야기를 나눈 후 얼마 되지 않아 동네 스타벅스를 갔을 때였다. 어느 부부가 아이 둘을 데리고 들어왔다. 아이들은 아아와 프라푸치노 사이에서 고민 중이던 나를 밀치고 케이크 진열대에 코를 박았다. 그때 부부의 다정한 말이 들려왔다.

“뭐 먹을래? 주스? 케이크? 천천히 골라.”


아아.. 아아!!! 아아를 고른 것은 아니고 아아... 진짜 너무 심란했다.

‘난 정성을 다해 내 커피를 고르고 싶은데, 아이를 낳으면 아이 케이크 먼저 골라줘야겠지?’ 심란한 마음으로 카라멜 프라푸치노를 사서 들고 나오는데 인도로 오토바이가 지나갔다. 아아... 더욱 심란해졌다. ‘인도로 오토바이가 지나가면 아이들이 위험하잖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며 손소독제를 바르다가는 울 뻔했다. ‘손소독제 때문에 지문이 닳아 없어질 것 같은데 아이가 태어나면 애도 이렇게 소독을 시켜야 하나? 바이러스며 환경호르몬이며 이걸 다 어떡하냐고!’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는데 말이 끝나지를 않았다. 한국의 망할 교육 시스템과 경제 양극화와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기와 세계적인 기후 위기에 이르기까지, 영원히 끝나지 않을 끝말잇기를 하는 것 같았다. 남편은 조용히 손을 씻었다. 본인의 세균이라도 덜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리고 며칠 후.


나는 임신 5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전히 나는 내가 왜 아이를 가지기로 결심했는지에 대해 명확히 설명하기 힘들다. 인간이 아이를 낳는 이유에 대해 단순히 ‘본능’이라는 말보다 더 실한 답을 내놓고 싶지만 아직 내 능력으론 부족하다.


확실하게 알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은 내가 지금 내 안에 품은 아기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한 번도 보지 못한 인간을 이토록 사랑할 수 있다니!

온라인 데이트 사기 말고도 가능한 일이었다.


영화 '소울'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영혼들이 지구로 오기 위해 준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영혼들은 각자 자신만의 불꽃을 찾아야 지구로 갈 수 있는데 그것은 삶의 목표, 의미, 소명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영화의 결말에서 우리는 알게 된다. 그 불꽃은 삶의 목표, 의미, 소명이 아니라는 것을. 목표나 소명 따위 없어도 된다. 흩날리는 꽃잎 하나가 아름다워서, 입에 문 피자 한 조각이 맛있어서 ‘이 지구에서 한 번 살아볼까’ 하는 마음, 그 마음이면 된다. 그게 불꽃이다.


그러니 누군가 내게 왜 아이를 가지기로 했느냐고 재차 묻는다면, 나는 그 가을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적었던 일기를 보여줘야 할 것 같다.


해가 떠오르는 그 장면이 너무도 찬란하게 아름다워서 이 지구에 새로운 존재를 초대하고 싶었다고.


“정말 아름답지 아가야? 내가 이걸 혼자 보기 얼마나 아까웠는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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