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괜찮은 '가오'에 대하여
1.
외할머니는 내가 스무 살 때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늦은 나이에 얻은 막내딸인 우리 엄마에게 많이 의지하셨고, 우리집에서 종종 머물곤 하셨다. 고등학교 1학년 가을이었나.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할머니가 소파에 홀로 앉아 볕 드는 창을 조용히 내다보고 계셨다. 따뜻한 가을볕에 모든 것이 아삭아삭 익어가는 것 같던, 그 순간. 모든 것이 멈춘 것만 같았다.
불현듯.
우리 할머니가 언제라도 돌아가실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달려가 와락 안겼다. 할머니의 손을 오래오래 쓰다듬었다. “할머니 오래오래 살아야 돼. 사랑해. 알지?” 그날 나는 다짐했다. 할머니를 볼 때마다 시시때때로 지겹도록 이 말을 해야겠다고. 그래야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
‘언젠가 돌아가실 거야’라는 건 당연하면서도 불경한 생각이어서 입 밖에 꺼내놓진 못했다. 그래도 나는 그 약속을 정말 열심히 지켰다. 할머니를 만날 때마다 손을 부여잡고 하염없이 말했다. “할머니 오래 살아, 할머니 사랑해. 할머니 나 예뻐 죽겠지?” 나는 어여쁜 손녀였을 것이다.
몇 해가 흐른 겨울.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외할머니와 나의 우정은 깊었고 나는 참담하게 슬펐다. 그러나 큰 후회 같은 건 없었다. 오히려 ‘아마 우리 할머니는 손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은 할머니일 거야. 그러니까 울지 말자’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보고 싶다는 말, 사랑한다는 표현에는 지나침이 없다는 걸 나는 그때 알았던 것 같다.
2.
고 김근태 의원이 쓴 <남영동>이라는 수필이 있다. 영화 ‘남영동 1985’의 토대가 된 기록인데, 민주화운동을 하던 그가 남영동 치안본부에 끌려가 모진 고초를 겪은 일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읽다 보면 엄청난 분노가 솟아오르는데, 떠올리기도 싫을 그 일을 꼼꼼히 기록한 고인에게는 분노보다 더 뜨거운 존경이 생긴다.
이 얘기를 꺼낸 것은 책의 말미에 실린 짧은 에세이(부인에게 보낸 편지) 때문이다. 제목은 ‘권위주의에 대해’. 이런 대목이 있다.
“ …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도 예외가 아니오. 한 댓살 위 정도까지는 맞먹고 싶고, 그러면서도 한두 해 후배가 배짱 좋게 트고 나올 때는 아주 불쾌해지고 비위장이 상한 적이 여러 번 있었소. (중략) 그런데 내 속에서 살그머니 속삭이는 소리는 후배들이 나에게 그러는 것은 은연중 막고, 나만 선배들과 트고 지내고자 하는 것이지. 여러 가지 논리로 위장하지만 나는 그것을 알아볼 수는 있지. 이기적인 이런 마음 때문에 혼자 창피해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오. 그런데 문제는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주위 대부분의 사람이 마찬가지라는 사실이오. … ”
사실 이 글은 ‘말투와 말씨의 배경에 깔린 상호 간의 권력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나는 저 대목에 반하여 이 글을 내 멋대로, 인간관계에 대한 어떤 지침으로 삼고 말았다. 본인은 대접받고 싶으면서 상대에게는 최대한 ‘가오’ 세우고 싶은 인간의 마음을, 또렷하고 겸허하게 적어내려 간 이 글이 그저 좋았다.
친한 선배에게는 오히려 깍듯이, 후배에게는 먼저 다정하게 대하자는 원칙도 이 글 덕분에 세웠다. 친한 선배와 밥을 먹는 날에는 ‘잘 먹었다’는 말을 두세 번은 더 하고, 후배만 먼저 연락하란 법은 없으니 내가 먼저 나설 때도 많다. 매번 잘 지킨다고 할 수는 없지만 모쪼록 그러려고 한다. (그러나 일을 할 때는 ... 예상외로 혹독하여 어디서 돌이 날아오는 것 같군.)
3.
사람들은 은연중에 자기한테 잘해주는 사람은 쉽게 본다. 외려 무심하고 시크하게 대하는 이를 동경하고 더 친해지고 싶어 한다. 자신에게는 없는 뭔가가 있을 것 같다는 기대일까.
내가 볼 땐 무심한 이들은 그냥 태생적으로 관계 자체에 무심한 사람이거나(이것도 별로 믿지 않음), 사실은 관계에 지독히 연연하면서도 가오를 잡는 것이거나, 싸가지가 없거나. 뭐 그런 것들이겠지만. (아주 간혹, 지독한 쑥스러움을 타고난 사람도 있긴 했다. 우리 아빠.)
나로 말하자면 꽤 친절한 편이다. 덩달아 리액션도 좋다. 가끔은 시크하게 표현하고 싶으나 “우와~~~”가 한 발짝 먼저 나가는 바람에 어김없이 망한다. 물론, 마음이 돌아서면 정말 ‘저 개싸가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싸늘하다. 그래서 내게 포커페이스는 영원한 동경의 자락이면서, 동시에 조금은 비겁하다 여겨지는 상태다.
어쨌든. 관계의 온도 변화에 기민한 건 그래서일 거다. 나는 많은 경우 친절하기 때문에 대개, 상대보다 더 많이 표현하는 것이다. 거의 모든 관계에서.
그러니 마음 상할 일이 꽤 있다. 친절한 문자에 답이 없는 것, ‘보고 싶다’는 말에 ‘ㅋㅋㅋ’로 대응하는 것, 애정이 담뿍 담긴 긴 메시지에 ‘응 나도’라는 극도의 미니멀리즘으로 답하는 것. 나의 힘듦을 토로할 때 스마트폰 따위를 쳐다보는 것.
이 나이가 되어도, 아무래도, 언제까지라도 싫은 것이다.
4.
그럼에도 마음을 자꾸 추스르는 걸 보면, 어떤 글이 한 사람에게 주는 영향은 꽤 큰 것 같다. 사람은 지가 받고 싶은 대로 남한테도 해야 한다는, 아주 기본적인 인생의 룰. 그게 잘 안 되긴 하지만 그래도 좀 어떻게든 노력하자는 것이 나의 오독이어도 좋다. 여전히 마음 상할 일은 많지만 그래도 한 번만 더 친절해 보자, 생각하다 보면 제법 내가 괜찮은 인간이 된 것 같으니까.
어쩌면 할머니를 보내드릴 때 내가 받았던 위안, 거기서 배운 것일까.
사랑한다거나 보고 싶다고 말하고 표현하는 건,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 나는 그렇게 믿는다. 갑자기 어느 날 깜짝 이벤트보다는 언제고 여력이 닿는 데까지 마음을 표현하는 일이, 더 괜찮은 ‘가오’같다고.
인생이 끝날 때 우리가 끝끝내 후회할 것은
아… 시크하지 못했어, 일 리가 없다.
사랑한다 말하지 못했다는 것.끝끝내 그것일 것이다.
p.s 이 글은 여행과 관련이 없지만 그냥 올려봅니다. 인생은 어차피 여행... 이런 진부한 비유를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흠흠, 그래도 올릴게요. ^^